총칼로 지울 수 없는 기록
규만이 준비해 둔 안주가 상 위로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우덕은 젓가락조차 들지 않은 채, 말없이 술만 들이켰다.
형준이 참다못해 한마디 건넸다.
“야, 안주도 좀 먹어. 그렇게만 마시면 속 뒤집어져.”
그제야 우덕이 울분을 터트렸다.
“이런 중요한 날에… 보안 총책임을 맡았는데 폭탄 테러라니!
이거 잘 마무리해서 경부 승진, 그 기반으로 삼았어야 하는 건데…
카즈야 회장님한테 잘 보일 절호의 기회였는데, 이걸 놓치다니!
이 불량선인들!”
형준은 술잔을 들어 올리며 달랬다.
“뭐, 내가 좋은 기회 다시 만들어줄게. 회장님 화 좀 풀리면 다시 얘기하고…
어쨌든 다 놓친 건 아니잖아. 산 채로 못 잡은 건 아쉽긴 하지만.”
그때 성곤이 혀를 차며 말했다.
“둘 다 오늘 무슨 짓들을 한 거야? 평범한 사람들한테까지 총 쏘고, 칼 휘두르고…
권력이랑 돈에 미치면 아무것도 안 보이냐? 그런 짓을 하니 결과가 안 좋은 거야, 이 사람들아.”
그 말에 형준의 부하들이 벌떡 일어나 칼을 뽑으려 했다.
형준은 조용히 돈을 챙겨주며 말했다.
“가서 따로 마셔. 오늘은 그냥 넘어가.”
부하들이 물러나자, 규만이 성곤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형준이 덕에 벌써 30엔이나 벌었어. 가게 크게 확장할 수 있게 됐는데 너무 그러지 마.”
형준은 웃으며 규만의 어깨를 쳤다.
“내가 자릴 봐줄 테니 혼마찌에 크게 하나 차려보는 거 어때?”
규만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너무 좋지! 덴노 헤이카 반자이!”
쾅!
성곤이 주먹으로 상을 쳤다.
“규만, 너까지 그럴래? 우리 조선 사람이야!
길거리에서 좌판 벌이고, 그것마저 순사들한테 엎어지고 걷어차이는 게 현실인데…
제국주의 고위층 힘 빌려 혼마찌에 가게를 내면 그게 매국노지 뭐야!”
우덕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우리 성곤 기자님~ 오늘 열심히 사진 찍으시던데… 어차피 그거 못 찍어내는 거 알죠?
조선중앙일보처럼 문 닫는다~
그리고 그런 짓 하다 종로서로 끌려오면… 나 머리 아파~”
형준도 따라 웃었다.
“뭐, 우덕이가 다른 애들처럼 매달아 때리진 않겠지.
내가 그전에 적당히 빼내야지. 칼잡이긴 해도 모시는 분이 워낙 높으니까.”
성곤은 한숨을 쉬고, “어쨌든 적당히 마셔라” 한마디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날 밤.
불빛 하나 없는 골목 어귀, 허름한 인쇄소의 기계가 쉼 없이 돌아갔다.
종이 위엔 피를 흘리며 쓰러진 조선 상인들,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의열단원,
그리고 혀를 깨물고 쓰러진 마지막 사내의 얼굴이 생생하게 담겼다.
신문 제목은 ‘조선 독립의 밑거름’, ‘우리의 영웅 의열단’.
순사들이 그걸 보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제목이었다.
누가 썼는지도, 어느 신문사에서 찍어낸 지도 아무도 몰랐다.
다음 날 새벽, 조선 사람들은 그 신문을 조심스레 품속에 넣었다.
어린아이들은 그 사진 속 의열단을 보며 꿈꿨다.
언젠가, 자신도 독립군이 되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