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고백했고, 누군가는 약속했다
“돈가스 곱빼기 두 개 주세요. 물은 셀프죠?”
우덕이 당당하게 외쳤다.
형준은 그가 쟁반 위에 돈가스를 두 접시나 올리는 걸 보고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다.
“야, 돈가스를 무슨 탑처럼 쌓아 먹냐…”
그러자 우덕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진짜 음식이지.
난 돈가스는 매일 먹어도 돼.
이건 완벽한 요리야.”
모두의 돈가스가 나오자
각자의 자리에서 식사가 시작됐다.
성곤은 칼을 들고 옆에 앉은 태연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내 거 먼저 좀 먹어. 너 거 내가 이따 잘라줄게.”
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형준은 아무 말없이 자신의 돈가스를 먼저 칼질로 다 썰어냈다.
그리고 정연의 덜 썰린 접시와 조용히 바꿔치기했다.
정연은 슬쩍 눈길만 주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우덕은 한 점 한 점 신중하게 먹었다.
소스를 찍고, 튀김의 두께를 확인하며 혼잣말로 중얼댔다.
“소스는 케첩 베이스, 튀김옷은 두툼하고… 음, 육즙 괜찮네. 합격.”
예린은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다 감탄하듯 말했다.
“우덕아, 너 진짜 전문가 같다?”
반면 규만은 말 없이 자기 몫만 열심히 잘라
혼자서 빠르게 먹고 또 먹었다.
그걸 본 민지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야! 성곤이랑 형준이 좀 봐!
파트너 먼저 챙기잖아!
너만 먹으면 다야? 매너는 어디다 버렸냐!”
규만은 화들짝 놀라 포크를 내려놓고
서둘러 민지의 접시를 잘라주기 시작했다.
형준은 그 모습을 보며 킥킥 웃으며 말했다.
“민지는 네 별이잖아? 별처럼 대하면 안 혼나.
이게 팁이야~”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우덕이 가방에서 일회용 필름카메라 여러 개를 꺼냈다.
“남는 건 사진이래. 다들 짝지어서 서봐.
이 순간, 꼭 남겨야지.”
먼저 성곤과 태연이 조심스럽게 나란히 섰다.
둘은 평소처럼 자연스러웠지만
사진기 앞에 서니 어딘지 조금 어색한 표정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우덕은 살짝 고개를 갸웃했지만 셔터를 눌렀다.
형준은 정연에게 다가가
슬쩍 뒤에서 팔을 두르고 껴안더니
조용히 뽀뽀하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정연은 말도 없이 정확히 그의 복부에 엘보를 꽂았다.
“끄흑…”
형준은 말없이 접고 물러났다.
규만은 아무 말 없이 민지 옆에 서서
살짝 손을 내밀었다.
민지는 그걸 알아채고도 별말 없이 손을 내버려 뒀다.
묘하게, 따뜻한 침묵이었다.
마지막은 예린과 우덕이었다.
예린이 갑자기 팔짱을 끼자 우덕은 순간 얼어붙은 표정이 되었다.
“어… 어… 오오오…”
셔터가 눌리는 찰칵 소리와 함께
그의 당황한 얼굴이 그대로 남겨졌다.
회전목마 앞에 도착한 아이들은
짝지어서 각자의 말 위에 올라탔다.
회전목마가 느릿하게 돌기 시작하자
아이들의 작은 대화가 시작되었다.
성곤은 회전목마 위에서 옆을 바라보다
태연에게 조용히 말했다.
“한 학기 동안 고생 많았어. 다음 학기도 잘해보자.”
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응, 너도. 근데… 제발 다음 학기엔 좀 조용했으면…”
둘은 나직한 웃음을 나눴다.
형준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정연을 등 뒤에서 안았다.
정연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3초 안에 안 놓으면 맞는다.”
형준은 가볍게 웃지 않았다.
이번엔 진지한 얼굴이었다.
“방학되면 너 못 보잖아.
그리고 다음 학기부턴 농구부 연습도 시작될 테고…
그럼 더 못 보겠지.”
정연은 때리려던 손을 내렸다.
대신 형준의 손을 잡았다.
“별을 가까이서 보려면, 너도 별이 돼야지.
네가 별이 되는 방법은… 운동밖에 없어.
같이 못 온 대용이도 지금 지수한테 똑같은 말 듣고 있을걸?
나도 더 빛나는 별이 될게.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 더 어울리는 남자친구가 되어줘.”
형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없었지만, 그 손은 오래도록 풀리지 않았다.
참고로,
지수는 “단체보다 단둘이 있는 게 좋다”며
서울랜드엔 오지 않고 대용과 따로 데이트를 하러 갔다는 후문이다.
규만은 회전목마 위에서 민지를 바라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이쯤 되면… 우리 사귀는 거지?”
민지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사귀자고 말도 안 하고, 고백도 없이?
진짜 너무하네.
‘이쯤 되면 되겠지’가 어딨어?
친구들이랑 막 이벤트 같은 거 준비하기 전에,
받아줘야지 내가…”
규만은 민지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팔을 번쩍 들고 외쳤다.
“사귀는 거 맞지!!! 와아아아!!!”
민지는 당황하며 그를 조용히 하라며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다.
한편, 예린은 회전목마 위에서 옆에 앉은 우덕을 보며 말했다.
“넌 언젠가 진짜 큰일 하나 칠 것 같아.
사업머리로 엄청 부자 될 것 같아.”
우덕은 살짝 웃더니 말했다.
“진짜 부자 되면… 너부터 챙겨줄게.”
예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해.”
둘은 조용히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말없이 웃으며, 그렇게 약속했다.
해가 기울고,
서울랜드의 하루가 끝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둘 모여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진짜 재밌었다.”
“사진 인화해서 나눠줄게.”
“아 진짜 많이 찍었다… 우덕이 오버했네.”
우덕은 카메라를 품에 안고 말했다.
“남는 건 사진이야. 그리고 기억.”
아이들은 웃으며 서로 인사하고
각자의 길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하루는
누군가에겐 고백의 날이었고,
누군가에겐 약속의 시작이었다.
모두의 여름이 그렇게, 깊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