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은 두려움을 남기고, 희망을 심다
형준이 칼을 뽑아 들자, 명월관의 분위기는 단숨에 바뀌었다.
총독부의 고위 관리들과 경무국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친다.
“제국 경찰은 어디 있느냐! 저놈을 막아라! 형준 군, 제발 저 자를 저지하라!!”
그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권력자들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태한이 피 묻은 칼끝을 형준에게 겨누며 외친다.
“네 손에 죽은 무고한 자들이 얼마냐! 그런데도 기생을 옆에 끼고 술에 취해 있었단 말이냐!”
형준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함쳤다.
“사무라이의 명예를 걸고, 이번엔 절대 지지 않는다!”
이태한은 비웃듯 고개를 젓는다.
“명예? 돈? 그게 네 무게의 전부다. 하지만 내 칼엔 삼천만 동포의 눈물과 분노가 실려 있다. 그래서 내 칼이 네 칼보다 무겁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뛰어오르며 공중에서 세 번 칼을 부딪혔다.
쇳소리가 명월관 천장을 울린 순간, 둘은 동시에 마당에 착지하며 본격적인 혈투를 시작했다.
칼끝이 부딪히고, 불꽃이 튀듯 강철의 울림이 터져 나왔다.
“오라버니! 힘내요! 이기면… 나, 진짜 시집갈게요!!”
서아의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순간 이태한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더니, 칼끝을 서아에게 돌렸다.
“너도 내 칼에 죽어야겠다! 수많은 조국의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꽃다운 나이에 군화에 짓밟히고 찢기는데, 매국노 뒤에 숨어 호위호식이라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형준은 분노로 눈이 충혈된 채 다시 뛰어들었다.
“상대는 나다! 이태한!!”
한편 소식을 들은 우덕은 경찰서를 지키고 있었다.
부관들이 “출동해야 합니다!”라 외치자 우덕은 이를 갈며 손을 들어 막았다.
“아니다… 너무 쉽다. 놈 뒤에 결사대나 의열단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함정일 수 있다… 형준을 믿어보자.”
그의 갈팡질팡은 경찰들을 더 초조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출동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형준과 이태한의 칼부림은 치열했지만 어느 쪽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형준은 이를 악물며 생각했다. 밤새 수련 또 수련을 한 건 오늘을 위해서다. 이번엔 절대 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태한은 웃었다.
“네가 아무리 수련하고, 네 곁의 그 여자를 지켜도 역사는 너를 용서하지 않는다. 몇백 년이 걸려도 너는 심판받는다!”
이태한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리고, 네가 정말 내가 혼자 올 거라 생각했느냐?”
형준이 놀라 고개를 돌린 순간,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의열단원들이 고위 관리들과 경무국장을 향해 폭탄을 던진 것이다.
“지켜라!!” 형준의 외침에 사무라이들이 뛰어들었고, 곧이어
콰아아 앙!!!
귀를 찢는 폭발음과 함께 명월관의 마당은 불빛과 연기로 휘감겼다.
폭탄의 굉음이 멎자 마당은 처참한 아수라장이 되었다.
형준은 귀가 먹먹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자 이미 이태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곁으로 달려온 서아가 “오라버니, 괜찮아?”라며 부축했지만, 형준은 그녀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곧장 총독부 관리들과 경찰청장 쪽으로 달려갔다.
세 명의 총독부 고위 관리가 현장에서 즉사했고, 두 명은 중상을 입었으며 경무국장마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형준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어서 병원으로 옮겨라! 당장!”
피로 얼룩진 마당 한가운데서 형준은 하늘을 향해 외쳤다.
“이태한!! 어디 있느냐!!”
그러나 돌아온 건 매캐한 연기와 민중들의 속삭임뿐이었다.
경찰서에서 상황을 보고 받은 우덕은 창백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끝났다… 이젠 난 죽었다… 그의 머릿속은 공포로 가득했다.
사건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고, 성곤은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뛰어왔다.
검은 연기와 시체들,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고위 관리들, 그리고 술병을 통째로 들이키는 형준의 모습까지 모두 그의 렌즈에 담겼다.
성곤의 손은 떨렸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형준은 피투성이가 된 채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곁에 다가온 서아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진짜 멋있었어요. 다들 두려워하잖아요.”
형준은 꿀밤을 콱 날리며 씁쓸히 대꾸했다.
“지금 멋있는 게 중요해? 멋있어 보여서 뭐가 달라지는데…”
다음 날 아침, 경성의 거리에 뿌려진 신문마다 **“명월관 폭탄 테러”**가 대서특필되었다.
그러나 기사들은 하나같이 다른 의미로 읽혔다.
매국 신문은 “극악무도한 의열단의 만행”을 강조했지만, 조선 사람들은 신문을 들고 웃었다.
“잘 됐다! 속이 다 시원하구먼!”
민중들의 낄낄거림은 거리마다 울려 퍼졌다.
우덕은 아침부터 경찰서장에게 뺨을 맞았다.
“너는 대체 하는 게 뭐냐! 폭탄이 터지는데 넌 뭐 했어!”
형준은 다나카에게서 모욕을 당했다.
“너는 이태한 하나 못 잡으면서 기생집에서 술만 마셨다지? 부끄럽지도 않냐?”
두 사람의 어깨는 무겁게 떨어졌다.
한쪽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성곤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한 독립 만세다, 이놈들아.”
그의 손엔 여전히 펜과 사진기가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