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흘러도, 장사는 계속된다
나라는 여전히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며 치고받고 싸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막내와 성곤은 싸움만 벌어지는 나라 꼴을 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상 위엔 신문들이 널려 있었고, 둘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들려온 비보.
김구 선생님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성곤은 술상을 그대로 엎어버렸다.
“아주 잘한다, 잘해!!
공산당인지 자유당인지 그걸로 나눠 싸우는 건 모자라서
이젠 이 나라의 큰 별까지 암살을 해버려?!!”
막내도 이를 갈며 소리쳤다.
“차라리 똘똘 뭉쳐서 일본 놈이랑 싸우는 게 더 낫겠어요!!
한 지붕 아래서 형제끼리 칼 들고 싸우는 거랑 다를 바 없잖아요, 선생님!!”
그러나 이들의 속 타는 마음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이 왔다.
새벽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총성이 울렸고,
성곤은 급히 짐을 싸며 말했다.
“안 그래도 나라가 어지러운데 결국 전쟁까지 나다니!!
또 외세를 끌어들여 같은 민족끼리 피를 보다니!!
일단 부산까지 쭉 피하자!!
이 전쟁은 반드시 미국이 개입할 거고!!
전쟁은 길어질 거다!!”
막내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남아서 싸우겠습니다!!
저는 사상이 뭐고 공산당이 뭔지는 모르지만!!
제 고향이 소중한 건 잘 압니다!!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막내는 성곤에게 큰절을 올렸다.
성곤은 손으로 막내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아!! 너 같은 청년이 살아야 해!!
살아야 역사를 쓰지!! 싸우면 죽는다!!”
그러나 막내는 이미 결심한 얼굴이었다.
고향을 지키기 위해 그는 뛰어 나갔다.
성곤은 결국 막내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한편, 부산.
우덕은 이미 전쟁을 대비해
식자재와 전쟁 필수품을 싹 다 사재기해 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전쟁이 터지자, 물가가 치솟았다.
우덕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전쟁통이라도 돈은 돈이지...”
그가 세는 돈의 소리 뒤로
부산항은 피난민들이 울부짖으며 몰려들고 있었다.
성곤의 예상대로 전선은 점점 뒤로 밀렸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이 개입했다.
전쟁은 더 커졌고, 피난민은 끝도 없이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그 혼란 한복판에서
우덕은 더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고 있었다.
식자재는 순식간에 동났다.
그는 이 틈을 타, 아예 근사한 카바레 클럽 하나까지 인수해 버렸다.
우덕은 새로 산 클럽 무대를 둘러보며 껄껄 웃었다.
“힘들 때에도!! 마실 놈은 마시고 춤출 놈은 춤을 추지!!
이 나라는 이제 막 시작이고!!
썩은 놈들도 많아서 이 상황에도 잘될 게 뻔하거든!!
그나저나... 일본으로 간 형준이 이놈은 잘하고 있나?”
형준 역시 떼돈을 벌고 있었다.
미국은 엄청난 달러를 일본에 밀어 넣었고,
형준의 창고는 매일같이 비어 갔다.
물건이 ‘있어서 파는 게’ 아니라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었다.
규만은 일본에서 하던 식당을 정리하고
형준과 함께 군수물자 사업을 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형준은 서아의 볼에 뽀뽀하며 말했다.
“역시!! 마누라 하나 잘 두면 온 집안이 평화로워진다는 말이 딱 맞아!!
진짜 내 인생의 황금 복덩이야!!”
규만도 방 한가득 쌓인 달러를 헤아리며 말했다.
“진짜 제수씨 덕에 이게 웬 횡재입니까!!
형준!! 한국에 있는 우덕이랑 연계해서
한·일 합동 장사 작전을 짜보자!!”
서아는 눈을 감고 녹차를 한 모금 마시며 천천히 말했다.
“현재 생활이 풍족하다면 그다음 ‘미래’를 봐야 해요.
지금 당장에 만족하지 말라고요.”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이어 말했다.
“자, 전쟁이 끝나면 한국에선 독재가 일어날 거예요.
이승만은... 김구와는 많이 다른 사람이거든요.”
형준은 손을 비비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승만 쪽에 줄을 대서 이번엔 정치로 진출해 볼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아는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탁’ 하고 쳤다.
“아니야!! 절대로 안 되지!!
오빠는 계속 미국이랑 붙어 있어야 해!!
독재는 반드시 무너지게 돼 있어!!
오빠가 정치에 발 들이면 오빠도 우리 집도 다 끝나는 거야!!”
서아는 형준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 전쟁에 미국이 끼어들었잖아?
그러면 계속 미국의 힘이 엄청 크게 작용할 거야.
전쟁이 끝난 직후엔 더 크게 작용할 거고.
한국이 전쟁으로 무너졌지만 미국이 다시 살려줄 거야.
공산주의를 막아야 하는 미국은
반드시 한국을 지키고 키워야 하거든!!
지금 일본처럼!!
그때는 미국 편에 서서 한국 가서 장사해!!
정치 같은 이야기는 입에도 담지 마!!!”
형준은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는 돈이 넘쳐났지만,
그들의 눈은 이미 전쟁 이후를 계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