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며 보는 제주
제주에 와 살게 된 지 5개월 여가 지났다. 제주도는 잘 알다시피 국토남단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우리 섬이면서 사철 온화한 기후와 곳곳에 펼쳐진 이국적 풍물들 때문에 많은 타지방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관광명소가 되어있다.
마을이나 들, 밭 심지어 산기슭까지 여기저기 쌓여있는, 모양새는 엉성해 보여도 세찬 바람을 잘 견뎌내는 돌담과 그 너머로 화사하게 피어있는 노란 유채 꽃. 이겨 부어놓은 듯한 해안 가의 검은 암반들과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신록이 싱그럽게 무르익을 무렵 코끝을 스치는 바람결에 실려오는 다디단 밀감꽃 향기. 커다란 잎을 길게 늘어뜨리고 시원스럽게 서있는 아열대성 식물들. 철 따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치장을 바꾸는 한라산 등. 한 번의 구경만으로 접어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제주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미관(美觀)들을 담은 예술성 높은 그림이나 사진을 관광 관련 업소가 아니더라도 일반회사, 관공서 또는 음식점 등에서 쉽사리 만나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들이 대부분 그곳 직원이나 주인의 안목과 솜씨에 의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이다.
생활하며 자주 대하거나 원하면 언제라도 가볼 수 있는 여건에서는, 가슴에 부딪히는 감동과 머릿속에 새겨지는 인상이 처음 접했을 때처럼 신선하고 진하지는 못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피상적으로 한 번 둘러보고 말 것이 아니라 현지에 장기간 체류하는 이점을 충분히 살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근원을 더듬고 이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캐보는 방법으로 관심의 초점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다각적으로 조명된 제주 역사를 탐구하며 이곳에 오래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체험담이나 전승설화, 또는 제주 출신 작가들이 고향을 무대로 하여 겪고 느끼며 사색으로 일궈놓은 작품 속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감동을 새롭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도는 국내에서 가장 큰 섬이기는 해도 도로망이 편리하게 잘 뚫려있어서 도내 어디든지 생각나면 언제라도 갈 수 있다. 널리 알려진 관광지가 아닌 어느 후미진 곳이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선뜻 달려갈 수 있도록 이곳에 살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기고, 알고 싶은 구석구석을 찾아보며 제주 생활을 뜻깊게 하려 한다.(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