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소감(2)

by 김헌삼


2. 섬의 섬으로


작은 섬에 가고 싶다. 그곳에 가서 잠시만이라도 머무르며 번잡으로부터 뚝 떨어져 있는 호젓함에 젖어보고 싶은 것이다.

지난 초봄부터 제주도에 와 생활하고 있지만, 말이 섬이지 중앙에 높이 솟은 한라산이 낮게 보일 정도로 넓은 지역이어서 여느 항구도시나 해안지대에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체류하고 있는 섬 같지 않은 섬 주변의 섬다운 섬에 가기를 간절히 원하는지도 모른다.

제주 바다에는 20여 개의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는데 그중 몇 개만이 사람들이 사는 섬이라 한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뱃길이 닿기만 한다면 유인도는 말할 것도 없고 무인도라도 하나하나 가보리라는 생각이었는데 이번 여름휴가에 서울에서 내려와 합류하게 된 가족들과 뜻이 잘 맞아 우선 제주도 동북단(東北端)에 위치한 우도(牛島)행이 성사된 것이다.

마침 태풍의 북상 소식이 있던 터여서 바다 물결이 곧 거칠어질 것이라 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일출과 낙조, 휘영청 달 밝은 밤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함께 맛보려던 처음 생각을 거둬야 했다. 가던 날 서둘러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사이 경험한 것이지만 섬 특유의 한적한 어촌 풍경과 오며 가며 맞닥뜨린 이곳 사람들의 순박함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동서 양안의 작은 모래사장들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특히 서빈백사(西濱白沙)라 하여 우도팔경(牛島八景)의 하나로 손꼽히는 산호모래 해수욕장은 멀리 성산 일출봉과 한라산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초록빛의 맑은 물이, 눈에 시리도록 하얗고 부드러운 모래밭에 밀려와 출렁거리는 모습을 뒤로하고 떠나오자니 발길이 무겁다.

세상에 태어났다가 어쩔 수 없이 소멸하고 마는 것과 마찬가지로 왔다가는 아쉽더라도 돌아가야 하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일은 수없이 반복될 것이다. 갈만한 곳 역시 많이 있으므로.

유인도로서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 마라도, 문주란의 자생지 토끼섬, 돌아올 길이 막혔다는 뜻을 갖지만 그래도 가면 돌아오기 마련인 차귀도(遮歸島), 날아가면 좋으련만 뱃길 밖에 없는 비양도(飛揚島), 제주도에 속해 있으면서 전라도 쪽으로도 가까운 추자도까지.

제주에 장기 체류하게 된 것을 이런 곳들을 두루두루 찾을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명 나에게 주어진 특혜이다.(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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