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라산을 오르며
직원 몇 명과 함께 관음사코스를 따라 한라산을 오르기로 했다. 이로써 영실 어리목 성판악에 이어 한라산의 개방된 코스를 모두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오래 전의 한라산 안내도를 보면 등산로는 이밖에도 서귀포 쪽에서 오르는 돈내코 코스를 비롯하여 천왕사 남성대 등 두어 개가 더 있었던 듯하나 요즘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폐쇄되어 소개조차 안 하고 있다.
한라산이 제주도이고 제주도는 바로 한라산이라 할 정도로 높고 넓게 차지한 곳에 등산로가 고작 4개에 불과하다. 그중에도 영실 어리목 성판악 코스가 주로 이용되어 숱한 발길에 짓밟히다 보니 산은 날로 훼손돼 가고 있다. 그런 반면 관음사 코스는 탐라계곡을 끼고 삼각봉 왕관능 등 볼거리도 많아 성판악 쪽 보다 아기자기하고 덜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적어 한적하고 깨끗한 편이다.
똑같이 정상으로 통하는 길인데 관음사 방향보다 성판악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교통이 편리하다든지 일찍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라는 등의 까닭이 있겠지만 명확 치는 않다. 4개의 산행코스는 각각 특징이 있고 산세와 거리, 소요시간이 다르기는 하지만 워낙 큰 산이기 때문에 선뜻 나서기에는 항상 두려움이 따르는 것은 어느 길을 택하든 마찬가지이다.
한라산 개발이 가끔 논의되고 그럴 때마다 케이블카 설치문제가 들먹여지는 모양이다. 제주도민의 반응은 찬반이 비슷하게 엇갈리는 듯한데, 나로서는 설치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가설해 놓는 것 자체가 가공으로 산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크게 해치는 꼴이 우선 싫다. 물론 걸어서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는 많은 사람에게 쉽사리 가볼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는 취지라면 할 말이 없지만, 현재로서도 가장 많이 오염되고 훼손도가 높아 보기 싫은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 정상부근이어서 이곳으로의 진입을 통제해야 할 판에 오히려 수많은 사람을 실어 날라 정상에 들끓게 한다면 어찌 될까?
내 생각에 산을 개발한다 함은 산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찾는 사람들의 편의를 돕는 것이다. 산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기면 되는 것이지 꼭 그 산의 꼭대기에 올라 야호 소리를 외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개발의 일환으로 등산로를 몇 개 더 개설하고 정비하였으면 한다. 지금의 영실-윗세오름-어리목 코스처럼 정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간의 오름이나 대피소를 돌아 내려오는 샛길을 만들어 서너 개에 집중되는 발길을 여러 곳으로 분산하면 산의 오 훼손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수준만 유지되면 자연은 복원력이 강하여 곧 자기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또한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9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