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지어보기
입춘이라 하니 혹독한 추위는 다시 없을 것이다. 또한 봄도 멀지 않았으리라. 농촌 사람들이 서서히 논밭일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된 듯하여 불현듯 농사 지어본 일을 떠올려본다.
농사를 짓는다고 말할 정도가 되려면 적어도 농촌에 상주하며 농사를 생업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는 주식(主食)만큼은 자급자족할 정도가 되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내 소유의 경작지도 없으면서 손바닥만큼의 땅을 빌려 이것도 심어보고 저것도 갈아본 정도로는 지었다는 말을 쓰기가 송구스러워 '농사를 지어본 것'이라고 해야 대충 맞을까 싶다.
구애받지 않고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복된 처지가 되다 보니 가장 해봄직한 것이 농사 지어보기이었다. '농사짓기'를 본격적으로 하기는 땡볕에 노출되어, 손발에 흙을 묻혀가며 허리가 뻐근하도록 힘써 일해도 소득은 신통치 않은 그야말로 3D업종이라 할 만큼 어렵다. 그러나 농작물이라는 것은 씨를 뿌리면 자연섭리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대부분 싹이 트고 정성을 들이면 들인 만큼 잘 자라주는 것이 신통하다. 손수 가꾼 것은 이상하게도 사먹는 것보다 훨씬 맛도 좋고 기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농사일이란 과하지 않게 적당히 조절하면 운동효과도 있고 머리가 맑아져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니 심심풀이로는 제격이다.
집안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증조부대까지는 농촌에서 생활했다. 증조부는 동네 아이들을 모아 훈장 노릇을 하셨다 하며, 얼마 되지 않는 농사처로 근근이 살아가는 살림 형편이었던 듯하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조부는 미성(未成)의 자식들과 함께 식솔들을 이끌고 인천으로 이주, 도시생활을 개척하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부친은 평범한 봉급생활자의 한계를 절감하고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고향 땅에 먹고 살만한 농토를 마련하여 귀향을 결행한 것이 내 중학 때 일이다. 주된 농사는 상일꾼을 두고, 소소한 일들은 거들며 40대 이후의 여생을 비교적 편안하게 보내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집과 떨어져 도시에 살았지만 방학 때만이라도 농사를 짓던 당시의 시골생활에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따라서 농사일이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니어서 전문성은 떨어지더라도 대강의 분위기 파악과 기초적인 감각은 잡혀있었던 셈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농사기술도 많이 개량되어 간단한 기구를 사용하여 짓던 소규모 손 농사가 좀더 규모가 큰 기계농사로 바뀌는 등 눈에 띄는 발전이 있었을 것이지만 농사의 기본원리야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농사의 기본 몇 가지를 꼽는다면 파종 전에 땅을 깊이 갈아주는 것, 싹을 틔우고 어린 싹이 제대로 자라도록 충분한 수분을 공급해야하고, 무 고구마 감자 등 뿌리를 수확하는 작물은 될 수 있으면 크게 북돋아 주는 게 좋으며, 화학비료 등 금비(金肥)보다는 짚·풀 따위를 썩혀서 만든 퇴비(堆肥)를 쓰는 땅이 보다 기름지다는 것 등이다.
이와 같은 기초지식에 농기구래야 호미 한 자루 달랑 가지고 농사를 지어보겠다는 생각이 가상해서였을까. 신도시에 살다보니 그런 대로 농토로 대용되던 유휴지가 여기저기 많이 널려 있어서인지 아주 조그마한 땅이지만 지어보라고 빌려주는 분이 있어서 그야말로 내 손으로 농사 비슷한 것을 지어 보게 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구매하는 것보다는 지어먹는 것이 비용 면에서 가성비가 떨어진다. 자체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니 씨앗이나, 땅을 걸게 하기 위한 퇴비는 사 써야 하는 단계이고 그나마의 경작지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서 차를 이용해야 하니 유류비나 교통비도 들게 마련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할인매점이나 직거래장터를 찾아다니며 더 싱싱하고 잘 자란 것을 사다먹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나 사람 사는 것이 꼭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니 그 틀대로 하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직접 가꿔보며 식물들의 쉽사리 굴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터득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할 때 어떻게 감응하나를 직접 느껴보는 즐거움의 가치를 어떻게 몇 백 원이나 1, 2천 원으로 따질 것인가. 식물들도 바흐를 좋아해서 성장과정에 음악을 들려주면 발육이 잘된다지 않던가.
농사의 가장 초기 단계는 상추 쑥갓 아욱처럼 연한 잎이나 줄기를 취하는 채소류를 키우는 것이겠다. 싹이 트고 자라며 솎듯이 조금씩 뜯어다 먹으면 되니까. 그러나 뿌리를 키우고 열매를 실하게 하려고만 해도 다른 차원의 기술과 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하물며 비용을 최소화하며 양질의 수확을 많이 거두려는 영농사업의 단계에 이르러는 꾸준한 연구 노력과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할 일 없으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겠다고 잠꼬대처럼 하는 소리는 먹고살기 힘들 때 진담으로 할 소리는 아닌 것이다. 살만하지만 심심풀이가 필요할 때 한 열 평 내외로 취미 삼아 시작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농사일을 하다 보면 양면(兩面)의 전쟁에 직면한다. 그 하나는 잡초와의 부단한 싸움이다. 흙 속에는 얼마나 많은 잡초의 씨앗들이 들어있어서 뽑고 또 뽑아내도 1.4후퇴 때 중공군 밀려오듯 계속하여 솟아나온다. 한여름에는 잡초제거에 그야말로 굵은 땀을 무수히 흘려야한다.
또 하나는 작물이 여물기도 전에 망쳐놓는 다른 동물들과의 전쟁 아닌 전쟁이다. 도심 부근에서는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큰 짐승은 볼 수 없지만 콩류를 좋아하는 까치나 비둘기는 심어놓은 콩 팥 등을 헤집어 빼먹기 일쑤이고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를 축내는 것은 아마도 들쥐의 소행일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은 일종의 취미이니 자연과 나눔을 실천한다고 여기면 그만이지 그렇다고 크게 속상해할 일은 아니리라.
씨 뿌리고 난 뒤 가녀린 떡잎이 나와 자라기 시작하는 것을 보는 신비스런 맛, 마른 땅에 물을 주고 잡초 뽑으며 호미로 시원하게 긁어주면 우쑥우쑥 뻗어 가는 것을 들여다보는 재미, 풍성하게 잘 자라고 결실을 가져다주는 것이 왜 그렇게 흐뭇하고 신기한지.
농사 지어보는 재미를 누리기 위한 가장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은 드나들며 자주 마주치고 사랑을 줄 수 있도록 거주지 부근에 텃밭을 갖춰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용이하지 않으니 문제다. 그래서 전원으로 돌아가기를 꿈꾸고 그리워해보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