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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들은 다 어디에(5)

by 김헌삼


추억의 별다른 고기 맛 세 점


하나. 참새

인천에 살던 시절 내가 일고여덟 살이었거나 그보다 더 어렸을 때의 일이다. 매년 봄이 되면 제비 한 쌍이 날아들어 대청마루 대들보 중앙쯤에 집을 짓고 새끼 낳아 기르며 부산하게 드나들다가 선선해지며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다. 그러면 세 들어 살던 일가(一家)가 나간 뒤나 되는 것처럼 집안은 적막했다.

그 후 가을도 지나가고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을 무렵이었다. 어둑어둑해지면 참새 한 마리가 우리 집 툇마루 위 서까래에 깃들어 자고 가고는 했다. 야음을 타 살그머니 잠입했다가 새벽에 기척 없이 사라지니 무엇이 날아들었는지 알 턱이 없을 터였다. 그런데 밤을 지내면서 마룻바닥에 배설물이 치우면 떨어지고 닦아내면 또 비슷한 자리에 놓여 있고 하는 바람에 결국 서까래 위를 잠자리로 정해놓고 매일 밤 드나드는 이놈의 정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한동안은 내버려 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주먹도 안 되는 몸뚱이에서 나오는 참새의 오물이라 바닥에 흔적이나 남는 정도로 양도 미미하고, 그렇다고 맡기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것도 아니어서 참을 수 없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정갈해야 할 마룻바닥이 더러워지는 것은 사실이었고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치우며 뒤치다꺼리하는 것은 성가신 일이었다. 아마도 할머니가 삼촌보고 저놈의 참새 좀 잡던지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깊이 잠들어 있을 한밤중을 기다렸다가 나보다 12살 많은 삼촌이 플래시를 비추고 기습, 작은 새는 얼떨결에 생포되고 말았다.

그것을 그날 밤으로 털 뜯고 소금 뿌려 구워 몇몇 식구들이 나눠 먹었다. 참 가엾기 짝이 없는 그것을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날려 보내는데 누구누구 동참했는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모두 해야 한 점밖에 안 되는 것을 여러 식구가 거들었으니 나한테 얼마나 차례가 왔을까만 그래서 더욱 그런지 그때의 그 맛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참새가 소 등에 앉아 네 고기 열 점이 내 고기 한 점을 당하지 못할 걸 하고 방자하게 군다더니 그때까지 먹어본 어떤 고기보다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추억의 맛이 되었다. 아마도 참새고기 한 점에는 여러 부위의 독특한 맛들이 복합되어 있음에 비하여 소고기는 열 점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희석되어 있는 부위별 단순한 맛에 지나지 않아서겠지, 하는 추측을 해본다.

요즈음 그때 그 일을 되돌아보면 정말로 몹쓸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종일 밖으로 돌며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단함에 지친 몸을 잠시 의탁하러 들어왔을 터인데, 그것을 잡아 몇몇 식구가 먹고 입맛을 다셨으니 창피하고 죄스러운 느낌이다.

덤불숲이고 하늘을 무리 지어 우르르 몰려다니는 참새 떼들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지. 남다른 짝이나 새끼 어미의 관계는 아닌지. 그렇다면 잠자리에 깃들 때도 함께 할 수도 있을 터인데, 우리 집 서까래 위를 홀로 찾아드는 이놈은 천애(天涯)의 외톨이었단 말인가.

사로잡은 참새를 떼써서 손아귀에 쥐어봤을 때 할딱이는 작고 따스한 가슴이 얼마나 큰 두근거림으로 느껴졌던가.

내가 성장한 뒤로 포장마차에서 소주 안주로 참새구이를 파는 게 자주 눈에 띄어 추억의 그 맛을 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병아리를 참새라 해서 판다는 풍문도 있고 당시에는 술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탓으로 퇴근길에 소주 한잔 같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참새구이를 찾아 먹어보겠다는 특별한 욕구도 일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어렸을 때의, 딱히 무엇이라 설명할 만한 구체적인 맛이 떠오르지는 않으나 입안에 감돌던 참새고기의 감칠맛이 그대로 간직되어 떠돌고 있음을 고백한다.


-둘. 꿩

어렸을 때 썩 오래된 옛날이라는 뜻으로 '옛날 고리짝'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리짝이 아니고 고려 적을 잘못 발음했거나 제대로 듣지 못했거나 둘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어쨌든 우리 조상은 고려 말경부터 보령 땅에 터 잡고 대대로 살아왔다. 그런 고향이지만, 나로서는 6.25가 발발하면서 피란으로 처음 찾은 생소한 땅으로서 조부를 따라가 머물며 그곳에서 초등학교의 남은 학년을 채우고 있었다.

할아버지 절친한 친구의 배려로 방 한 칸과 밭떼기 조금을 얻어 기껏해야 감자나 채소류를 갈았으니 그것만으로는 연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피란민에게 나눠주는 거칠게 간 수수 등 잡곡과 인근에 사는 대고모 할머니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친척들이 수확할 때마다 번갈아 갖다 주는 잡다한 식량과 할아버지가 한약을 지어 주고, 받는 대가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삼촌이 방학 때는 내려와 있었는데 잘 자리가 마땅찮아 조석(朝夕)만 함께 하고 20분 정도 걷는 거리의 산골 대고모댁에 기거하며 무슨 시험 준비를 하는지 광목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공부하고 있었다. 대고모댁은 소리골이라는 외딴 산자락에 나란히 자리 잡은 달랑 두 가구 중의 하나였다.

눈이 많이 내려 산천과 마을은 물론 길조차도 온통 새하얗게 뒤덮인 겨울이었다. 나는 가끔 연락할 일이 있으면 소리골로 심부름 다녔는데, 그날도 무엇인가를 전달하러 갔었을 것이다. 너무나 하얗게 빛나고 환한 세상에서 갑자기 들어서니 방안은 눈의 조리개가 맞지 않아 사물의 윤곽만 잡히는 정도로 컴컴했다. 어두운 곳에 모여 앉아 고모할머니는 물레를 돌리며 무명실을 잣고, 삼촌과 나보다 두 살 어렸지만 아저씨라 부르는 대고모의 막내아들은 조그마한 콩 한가운데에 조심스럽게 구멍을 뚫고 있었다. 꿩 잡을 미끼를 만드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구멍 속에 미량의 청산가리를 집어넣고 그 위에 양초를 녹여 막는다. 꿩에 있어서 콩은 우리에게 고기보다도 더 좋아하고 즐기는 먹이였다. 가을걷이도 끝난 지 오래되고 겨울의 한가운데 눈 덮인 대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먹음직한 콩을 보고 앞뒤 생각 없이 덥석 삼킬 것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면 맛을 미처 음미하기도 전에 독을 막고 있던 촛농은 따뜻한 장기 속에서 녹을 터이다. 어김없이 독 기운이 흘러나와 온몸으로 퍼지며 혼절 직전의 녀석은 마지막으로 한번 높이 솟구쳤다가 멀지 않은 곳에 곤두박질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꿩을 잡으려는 것이었다.

이른 아침 독이 든 콩알들을 산속 밭 가장자리나 꿩이 먹이를 찾아올 만한 곳에 왕겨를 조금씩 흩뿌리고 그 위에 한두 개씩 놓아둔다. 그리고는 저녁 무렵 어두워지기 전에 없어진 것이 있나 점검하며 일단 수거한다. 밤사이에 이슬이나 눈이 내리면 콩이 불어 터지기 때문에 그대로 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놓아둔 콩이 하나라도 없어진 것이 발견되면 틀림없이 꿩이 먹었다고 보고 우리 편으로서는 가슴이 설레게 마련이다. 노회 한 꿩들은 의심이 많아 쉽사리 먹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 톨이라도 없어지면 그것만으로도 흥분되어 콩이 놓여 있던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부근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꿩을 찾는 것이었다.

그 일을 시작한 지 2,3일쯤 되었을 때 까투리 한 마리가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피란 내려와 비로소 알게 된 것이지만 할아버지에게는 밑으로 쌍둥이 여동생 둘이 있었는데 언니 되는 이가 바로 소리골할머니였다. 꿩이 잡히면 우선 소리골할머니네나 할아버지가 계신 우리 차지일 수밖에 없었고, 오라버니 위하는 마음이 지극한 고모할머니가 양보하면 당연히 우리가 먼저 맛볼 것으로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여동생인 광천할머니가 우리가 사는 곳과 멀지 않은 딸네 집에 출타 중 병을 얻었다가 회복기에 있었지만 기동 하기에는 날씨도 춥고 힘이 들어 그대로 머무르고 계시다 했다. 그동안 몹시 탈진한 상태로 보양이 필요할 때여서 마침 잘되었다고 맨 먼저 잡은 것은 그곳으로 보낸다고 했다.

다행히 며칠 후 또 한 마리가 잡혔는데 이번에는 오색빛깔로 성장한 장끼였다. 독극물을 써서 취한 것이라 내장은 미련 없이 모두 버리고 남은 것으로 무를 썰어 넣고 국을 끓였다. 생전 처음 보는 꿩 국에는 노란 기름이 방울방울 뜨고 한없이 고소한 냄새를 풍겼다. 고기 건더기가 아니더라도 국물만으로도 부드러운 맛이 입으로 코로 느껴지고 목구멍을 타고 스르르 잘도 넘어갔다. 언제 다시 맛볼까 싶은 이 진귀한 맛을 오래도록 음미하기 위하여 천천히 삼키려고 얼마나 애썼던가.

그 뒤로 암꿩 한 마리를 더 잡아 소리골 식구들도 그해 겨울에 꿩 맛을 함께 보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렇게 되도록 광천할머니가 마침 편찮으셨든지 여자 형제들에게는 암꿩이, 남자인 할아버지에게는 수꿩이 각각 차례 왔다.

그해 겨울 꿩 사냥의 추억은 고소한 냄새를 솔솔 풍기며 달콤했던 꿩 뭇국의 맛과 함께 잊히지 않는 일이다.


셋. 노루

어느 해 겨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이것저것 물정 모를 때였으니 조상들의 고향이며, 또한 살아가며 실질적인 내 고향으로 정착되어가고 있던 피란지 생활의 첫해였던 것 같다.

명절 때면 차례상은 인천에 머물고 계신 아버지가 차리기로 하고 할아버지와 나는 집집이 음복까지 끝났을 시간에 맞춰 정갈하게 차려입고 일찌거니 집을 나선다. 두루두루 일가 어른들도 찾아뵙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갈 때마다 들어도 누구의 것인지 헷갈리는 조상들의 묘소에 절을 하며 한 바퀴 돌고 오면 하루해가 끝난다. 이때 반드시 들르는 곳 중의 하나가 복병이 종가(宗家)였다. 배산임수의 명당자리에 인근에서 보기 드물게 수십 간이 넘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었다. 마당 가에 힘차게 뻗치고 선 팽나무나 느티나무 등 몇 그루의 고목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당당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오래전 누렸을 영화란 찾을 수 없고 기왓장 사이에 잡풀이 나는 등 이미 쇠락의 빛이 역력했다.

후손들이 종가라는 권위에만 집착하고 생산적인 활동을 등한히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먹을 것은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 명절이 아니면 들르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그날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설이 아직 멀었는데 어른 따라 그 집에 가게 되었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데다 따듯한 햇살이 있어서 화사하게 느껴지는 겨울날이었다. 지금 생각이지만 노루가 잡혀 이 별난 고기를 맛보러 오라는 특별초청이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노루가 포획된 것은 전문적인 포수에 의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집 머슴이나 장정들이 주변 야산 여기저기 산짐승들이 다닐만한 길목에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거나, 깊은 눈구덩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재수 좋게 발견하고 여럿이 몰아서였을 것이다.

무슨 잔칫날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했다. 방마다 많은 친척이 가득히 모여 앉아 담소하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별다른 것은 없이 삶은 노루고기 그릇이 들어오곤 하는, 말하자면 유별난 음식을 시식해 보는 자리였던 모양이다. 나는 어른들 사이에 드물게 끼인 손님 아이로서 행여나 반가(班家)의 체통을 훼손하는 행동을 할까 봐 데리고 간 어른이 계속 따가운 눈총을 주는 바람에 몇 점을 집어먹었을 뿐이다. 고기로서는 담백한데 누린내가 많이 나는 것이 흠이었다.

입으로 먹으면서 코로 느끼는 누린내는 무엇이며 왜 나는 것일까. 소 돼지 같은 가축에는 없는 이것은 결국 야성의 냄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산야는 몹시 황폐해 있었다. 이때만 해도 야생동물들이 꽤 남아있었던 것 같다. 젊은이들이 청솔가지에 불을 붙여 바위굴에 매운 연기를 계속 들이미는 가운데 다른 구멍으로 뛰쳐나온 여우가 마을을 가로질러 들판으로 치렁치렁한 꼬리가 빠지게 내닫는 것을 목격한 적도 있다. 낮은 산에서도 산토끼가 내려와 옭아맨 칡을 갉아먹으면 내리치는 벼락 덫을 놓아 잡기도 했다. 그래서 간혹 굶주린 뱃속에 기름진 고기 맛을 보여주었다. 외진 산모롱이에 웅크리고 있던 살쾡이와 조우(遭遇)하여, 그 살기 가득한 눈빛과 일 대 일로 맞부닥뜨렸을 때는 얼마나 간담이 서늘했던지.

이러한 야성들은 이제 옛이야기로나 하게 되었다. 자연은 본연의 자연과 멀어져 있다. 등산객의 빈번한 발길 때문인지, 극성스러운 밀렵꾼들의 남획으로인지 하늘을 가르는 작은 산새들이나 높은 나무 위를 휙휙 나는 듯이 건너뛰는 청설모를 빼놓고는 노루나 멧돼지는 물론 하다못해 산토끼 정도 되는 산짐승조차 먼빛으로라도 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가졌던 이들 야생의 맛은 이제 추억으로 간직하고 더 탐하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땅에서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되살려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는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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