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생긴 일
11월의 첫 일요일 집 아이를 12시에 데려오기로 하고 아침 8시까지 학원에 태워 주며 남는 4시간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원지동 청계산(淸溪山)을 다녀오면 맞춤하였다. 산 밑까지 가고 오는 시간을 1시간 반쯤 잡고, 산을 오르내리는 것은 2시간 반으로 적당하며 그렇게 하면 오늘의 운동량으로 미흡하지는 않을 터이다. 청계산은 이렇게 언제든지 갈 수 있는 만만한 산이다.
도심의 가로수들은 다퉈 잎을 떨어뜨려 벌거벗은 몸으로 차렷하고 서 있었다. 플라타너스의 넓은 잎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잎들이 지천으로 널려 늦가을의 스산함이 뒹굴고 있었다. 비라도 뿌리려는지 오늘따라 음산하고 마음 또한 무거운 느낌이었으나 그런 것들은 산속에서 임간(林間)을 꾸준히 걷다 보면 차차 저절로 풀려나갈 것이다.
날씨 탓인지, 9시 무렵이 일반인들에게는 이른 시각이라서인지 느티나무가 있는 동네 부근에 차를 세워두고 산길로 들어서니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쫄쫄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 곧장 오르는 큰길이 말하자면 청계산의 중앙통이어서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다. 나로서는 왼편으로 꺾어 오르는 오솔길을 즐겨 다니기 때문에 그곳으로 접어들 작정이다. 다만 초입에서 휘어 도는 길은 여러 번 해봤으므로 이번에는 중앙통으로 좀 더 들어간다. 개울물을 건너는 지점에서 산자락을 약간 후퇴하는 척하다가 능선을 향하여 오르는 길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전과는 달리 오늘따라 이 호젓하던 산길에 오히려 심심찮게 많은 사람이 눈에 띈다. 아직은 내 몸의 피로가 덜 풀린 탓인가. ‘가볍지 않은 컨디션의 참을 수 없음’으로 해서 그들은 하나 같이 나를 앞지르고 있었다. 나 홀로 이곳에 왔으며 아무런 걸릴 것도, 바삐 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필요하다면 아무 때 어디서나 중도에서 뒤돌아 나와도 무방한 상황이다. 다만 산속을 거니는 동안 맑고 신선한 공기를 흠뻑 호흡하며 땀을 발산하면 그것이 내 소임을 다한다는 생각이다. 이 얼마나 자유스러운가.
앞쪽에 부부로 보이는 중년 남녀가 또 같은 또래의 한 부인과 마주 서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지나치며 몇 마디를 주워들으니 내용은 확실치 않아도 자아내는 분위기가 직감적으로 산 위에서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한 양상이다. 그것은 은연중 암담한 기분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나치고 채 5분도 지나지 않아서 6,7명의 남자들이 덩어리 져서 촉박한 걸음으로 내려오고 있다. 가까이 보니 덧옷들을 벗어 급조한 들것에 사람을 실어 경황없이 내리는 중이었다.
들고 있는 사람들의 굳은 표정, 점퍼로 덮여 있는 들린 사람의 푹 박힌 얼굴 부분, 초종(初終)은 어림할 수 없으나 다만 앞쪽에 삐죽이 나온 발 크기와 모양으로 미뤄 어떤 남자가 갑자기 쓰러졌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아무리 극단의 생각만은 안 하려 애써도 그것은 억지인 것이 실린 사람의 안면을 덮은 것이었다. 머리가 어디에 부딪힌 것 같은 현기증을 감내해야 한다.
‘1 야영장’과 ‘2 야영장’을 넘나드는 고갯마루 쉼터에 흩어져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까 그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40대 초반으로 부인과 함께 산에 왔다가 갑자기 닥친 순간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여 귀중한 생명을 놓아 실려 내려가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원인을 캐보면 필연의 곡절이 있겠지만 불과 몇 시간 전 산에 가자 하고 두툼한 양말을 신고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생명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몸의 곳곳에 포진하여 활기 있게 작동하던 것이 문득 전깃불 나가듯이 쉽게 툭 끊어질 수 있는 것인가. 죽음의 순간 영혼은 몸을 떠나 어디론가 훌쩍 가버리는 것인가. 그 순간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그것도 저것도 아니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인가? 사람의 육신을 형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흡수와 배설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이합집산하며 그 모습을 끊임없이 바꿔나가는 것이라 한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과 내세의 윤회와 환생의 개념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일관된 줄거리도, 논리적 정연성도 없는 잡다한 생각들, 생각의 단편들이 무질서하게 떠올랐다가는 사라지며 머릿속을 휩싸고 있는 뿌연 안개가 좀체 걷히지 않는다. 그렇게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산길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이 산에서 있었던 사건 일부를 목격했거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착잡한 표정들인 것 같다.
생과의 결별. 그것은 늘 옆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그것은 ‘한평생’이 덧없이 끝나버리는 엄청난 것이기도 하다. 그런 예사롭지 않은 일이 한때의 소요로서 떠들썩할 뿐 내일이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을 되찾을 것이다. 아니 이르면 오늘 오후부터라도 아무 일 없었던 듯 태연해질지도 모른다. (9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