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 발교산
발교산(髮校山 998m)은 강원도 횡성군 첩첩산중에 숨은 듯 자리하고 있었다.
서석이라는 곳으로 향하는 포장도로를, 청일면 춘당초교 앞에서 서북쪽으로 갈라져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만한 길을 휘돌아 갈 때는 반대편에서 나오는 차와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우려가 곧 현실로 나타났다. 하루에 두 번밖에 안 다닌다는 일반 버스가 하필 이 시간에 산모퉁이를 돌아 우리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건너편 버스 기사가 상당한 거리를 주저 없이 후진하여 길을 틔워줄 뿐 아니라 기분 좋은 얼굴로 싱글싱글 웃어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로서는 고맙고 미안한 생각과 함께 후덕한 강원도 인심을 새삼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발교산은 도대체 얼마나 깊숙이 들어앉아 있기에, 마치 양파껍질을 벗기고 또 벗겨내듯이 헤집고 들어가도 좀처럼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인가. 마침내 찻길의 막바지 안구접이라는 마을에 도착하여 그 앞마당에서 차를 돌려세우며 우리는 내렸다. 안구접이란 아홉 겹으로 둘러싸인 안동네란 뜻이라 한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여기 살고 있던 사람들은 6.25 사변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오지 중의 오지까지 파고 들어와 발자취를 남기려는 것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밭뙈기를 가로지르며 성큼 다가선 산자락은 지난 주말쯤에 내렸을 것 같은 눈이 아직도 하얗게 남아있었다. 눈길인 데다가 급경사여서 오르기가 몹시 힘겹다. 깊은 산골임에도 온화한 날씨 탓으로 눅눅해진 눈이 밟히는 대로 쭉쭉 미끄러지며 금방 온몸에 땀이 축축이 밴다. 더욱이 오래 신어 밑창이 밋밋해진 등산화로는 비탈진 눈길을 딛고 몸 가누기조차 쉽지 않다. 그나마 스틱을 지니지 않았더라면 등행(登行)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묘 1기가 누워있는 능선을 지나 산허리를 넘어가니 좁은 계곡 눈 덮인 바위 사이로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청아하고, 그 소리만으로도 냇물이 얼마나 청정한지 미뤄 짐작된다. 다른 곳들에 비하여 깨끗한 눈이 많은 것은 일조시간이 비교적 짧은 응달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개를 들어 위쪽 하늘을 보면 가득한 흰 구름 사이로 터진 겨울 하늘이 새파랗다. 그 밑으로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둘러있어 아직은 정상이 어디쯤 위치하는지 가늠할 수 없다.
관목으로서는 제법 키도 크고 가지 많은 매자나무에 다닥다닥 매달린 빨간 열매들은 산자락의 순백 바탕 때문에 선홍의 점들로 한층 돋보인다. 눈이 내리고 또 그 위에 덧쌓이는 철이 되면 산간의 짐승들이나 새들은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이런 곳에 이르러 개울물이나 하찮은 열매로 주린 배를 채우는 정도이리라.
계류를 건너 본격적으로 능선을 타고 오를 때 진달래 철쭉 싸리 그 밖의 떡갈나무 등 잡목들이 밀생하여 어디가 길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앞서간 일행들이 거쳐 간 방향이나 바르게 잡아 확실히 따라야 할 것이다. 이날 따라 나는 유난히 뒤처져 앞서간 사람들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래도 나는 확신한다, 바른 방향으로 줄곧 따라간다면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임을.
산세로 미뤄 앞에 닥친 봉우리는 높아 보이지만 아직 정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음 봉우리 부근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일행들의 두런거림이 간간이 이어지는 것으로 미뤄 곧 그들과 해후할 것을 기대하며 용기와 힘이 솟는다.
마을에서 시작하여 정상에 이르기까지는 2시간이 채 안 걸렸으며 꼭대기는 3,4평 정도로 우리가 모두 몰려있기에는 비좁은 공간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정상에 올라서기만 하면 다음부터 걱정되지 않는 것은 내려가기는 굴러서라도 못하겠나 하는 느긋해지는 마음의 여유 때문일 것이다. 눈 덮인 하산 길은 오르기보다 더 힘들고 까다롭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건조한 눈이 두텁게 덮여 있다면 앉아 뭉개며 쉽게 내리련만 오늘은 깔린 눈의 질도 안 좋거니와 경사마저 급하고 바로 옆은 낭떠러지여서 오직 스틱에만 의존하며 조심스럽게 옮겨 딛자니 또다시 뒤로 처지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런데 저 아래 안부에는 또 높다란 봉우리가 앞을 막고 있으니 저것도 올라야 한다면 어쩌나 겁이 잔뜩 났다. 안부는 망고개라는 곳으로서, 리더가 길목을 지키고 서서 앞 봉우리는 병무산이니 희망자만 다녀오고 바로 내려갈 사람은 왼쪽 길로 향하도록 정리하고 있었다. 남들이 하는 짓이라면 모두 따라 해보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면 나 또한 못할 바 뭐냐는 의욕과 호기는 오늘은 안 먹힌다. 요즈음에 와서는 굳이 무리할 게 뭐냐는 생각이 앞을 막아서고는 한다. 벌써 3시간을 걸었고 곧바로 내려간다 해도 1시간 이상 소요될 터이니 이만하면 되었지 하고 쉽사리 만족할 줄 아는 요령이 생긴 것이다.
고개에서 내려다보이는 훤히 트인 골짜기는 망골로서 2,30분 내려온 지점에 화전민의 버려진 밭과 외딴 농가가 있었다. 산골에 말벗할 이웃도, 먼빛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 구경할 절도 없이 외롭게 살아가는 이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또 무슨 낙으로 생존하는 것일까. 다만 신선한 공기와 맑은 물을 마시며 산천초목을 벗 삼아 밭곡식을 일구는 데서나 삶의 보람을 느끼는 단순하고 순박한 인생일 뿐인가. 우리도 이런 곳에 별장을 짓고 한번 살아봤으면 하고 막연한 환상에 젖을 때가 있지만 정작 터 잡고 살게 된다면 과연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최일남의 「서울 사람들」이라는 단편에는 찌든 도시 생활에 환멸을 느끼는 4명의 고향 친구가 옛날 살아가던 방식에 향수를 품고 어느 날 문득 3박 4일 예정으로 시골로 내려가 그대로 실시해 본다. 그러나 사흘을 견뎌내지 못하고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반대로 저 외딴 농가 사람을 갑자기 문명의 이기를 두루 갖춘 도시 호화주택으로 이주시켰을 때 하루인들 그것이 편하다고 느끼며 살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틀림없이 사람은 각각 제 놀던 울타리 안이 제일 편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한번 해보았으면 하는 바람, 그것을 가슴 속에 불씨처럼 꼭 묻어두고 생각 킬 때 가끔 찾아다니며 기분전환용으로 써먹는 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즐거움이 아닐까? 헤집고 들어왔던 길을 그대로 빠져나가면 많은 차량이 냅다 질주하는 대로가 나타날 것이고 불빛 현란한 도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은 아주 먼 꿈속의 고장에 머물렀던 것 같은 기분을 소중한 무엇처럼 간직할 것이다. (9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