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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 가까운 산(27)

by 김헌삼

산에는 꽃이 피네



산을 오르는 이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후덥지근하고 찌는 듯한 한여름이라도 엊그제 내린 큰비로 인해 힘차게 내리꽂는 계곡물의 우렁찬 소리를 들으며 걸으면 우리의 발길은 한결 경쾌하다. 시냇물 소리처럼 조잘조잘 이야기꽃을 피우며 앞서가는 젊은 여자들의 늘씬한 몸매가 시야에 꽉 들어오고 거기서 발산되는 시원한 몸짓을 뒤쫓다 보면 어느새 힘든 줄 모르고 목적한 곳에 도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조금만 더 오르면 은령(銀嶺)이 펼쳐지고 그곳에 서 있는 크고 작은 나무들에 하얀 설화가 만발해 있을 것이란 환상적인 눈 세계에 대한 기대감은 또한 어떤 어려움도 잊게 한다.

갖가지 들꽃들이 저마다의 미색을 한껏 뽐내며 피어있는 봄의 꽃길을 걷는 발걸음은 또한 날아갈 듯 가볍다. 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이 피고 지고 또 핀다. 갈 봄 여름 없이 계절에 맞는 꽃들이 한편으로는 피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들어 떨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특히 봄철에는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잠자고 있던 대지가 깨어나며 기다리고 있던 꽃눈들이 일시에 터져 나오는 점도 있겠지만 그것은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을 먼저 선보이는 초목이 많기 때문이리라.

겨울 동안 을씨년스럽고 음산하던 산자락에 분홍빛 진달래 물결이 남향받이부터 일렁이기 시작하여 점차 물들며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산골짝마다 물오른 나뭇가지에 돋아나기 시작하는 연두색 점점. 그 사이로 떠돌던 뭉게구름이 여기저기 내려앉듯 산벚꽃이 피어나면 화사한 먼 산 풍경이 마치 잔칫집처럼 들떠 보이게 마련이다.

환한 빛깔의 손짓에 이끌리듯 달콤한 향기에 취하듯 산속으로 따라 들어가 보면 길섶, 나무 밑 언저리, 풀숲에 보석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피어있는 앙증맞고 신기한 꽃들과 마주하게 된다. 대부분 작고 이름 모를 것들이다. 이름을 알 수 없기는 꽃뿐만이 아니고 주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나무들, 이리저리 옮겨 앉는 작은 산새들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나는 식물학자가 아니며 이 방면에 특별한 연구가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스치고 지나가는 자생식물들에 대하여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나무, 풀, 꽃이라는 정도 외에 부끄럽게도 구체적으로 안다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터이지만 그래도 흔히 보고 자주 마주치는 것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주지 못하는 심정은 참으로 암울하고 답답하다. 새들은 요리조리 날아다니며 모습을 감추니까 식별에 어려움이 많다 해도 항상 제자리를 지키는 식물들은 조그마한 성의나 열의만 있다면 그 이름을 차차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이름을 알고 대하면 감흥도 한층 새로워질 것이다.

최근 나는 야생화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이 있다. 신문이나 잡지가 야생화라든가 자생식물을 자주 다루어서 관심만 가지면 얼마든지 지식으로 변환시킬 수 있어서 상당히 고무적이다. 하지만 들꽃들의 종류가 워낙 많아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말하자면 총체적으로 종합해 놓은 도감의 도움 없이 어쩌다가 한두 개 얻어걸리는 수준으로는 게임이 안 되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산야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보라색의 작은 오랑캐꽃은 꽃 색깔이 나타내는 대로 바이올렛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제비꽃의 한 통속임을 알게 되었다. 제비꽃은 바이올렛 외에도 노랑제비꽃 등 그 종류가 세계적으로 수백 가지가 있다고 한다. 시정(市井)의 봄 화단을 맨 먼저 장식하는 팬지도 제비꽃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관심을 갖고 보아온 결과인 것이다.

오래전 얼레지라는 꽃 이름을 듣고 '엘레지'라는 말과 너무나 흡사하여서인지 이것이 외래어의 이름인가 하는 막연한 생각을 지닌 채 무엇이 그것을 표현하는지 모르고 지내왔었다. 지난해 봄 백운산 길을 걷고 있을 때 큰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산자락의 응달, 부엽(腐葉)이 새카맣게 걸은 땅 위에 20센티 정도 되는 작은 꽃줄기에 비하여 꽃송이가 크고 대여섯 개의 끝이 뾰족하고 긴 꽃잎이 붉은 자주색으로 피어나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이 맵시 있고 대단히 아름다워 특별한 관심이 쏠렸었다. 그 후에도 산에서 이 꽃이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다가 만나면 반갑게 여겼으나 그때까지 이름은 모르는 채였다.

꽃을 보고 ‘이게 무슨 꽃일까?’'하는 상투적 궁금증과 이름만 듣고 오래전부터 품어온 ‘얼레지란 꽃은 과연 어떻게 생겼나?’ 하는 발원(發源)을 달리하여 품어온 두 의문이 별개로 있다가 이들이 합치되며 모두 해결된 것은 얼마 전 꽃 사진과 함께 소개된 신문칼럼을 보고 난 뒤였다. 오래 묵혀둔 숙제가 풀린 것 같은 홀가분한 심정이었다.

괭이눈, 노루귀, 홀아비꽃대, 개불알꽃, 깽깽이풀, 며느리밥풀, 개쑥부쟁이, 부처꽃, 금새우란 등등. 하나하나가 모두 토속적이며 정감이 가는 야생화의 이름들이다. 그런데 이런 이름이 붙게 된 연유를 캐어 보면 더욱 흥미롭다. 괭이눈은 무심코 보면 꽃 같지도 않고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는 하찮은 풀꽃이다. 그러나 괭이눈이라는 고정된 명칭을 부여하고 들여다보면 어쩌면 그렇게 숨어있는 특징을 족집게처럼 집어내어 잘 어울리는 이름을 붙였을까 하는 감탄이 앞선다. 몹시 성난 고양이의 노랗게 확대되어 가는 눈동자의 번득임이 이 꽃에 서려 있다.

꽃에는 ‘순정’ ‘영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등의 길고 짧은 꽃말이 있고 그 꽃이 탄생하게 된 전설이 곁들이기도 하며 꽃 이름에 이러한 꽃말이나 전설이 연루되어 있기도 하다.

며느리밥풀이라는 꽃은 생긴 모습이 마치 빨간 입술에 밥풀 하나 물려있는 것 같은데 왜 며느리밥풀이라 하게 되었는가 하는 전설은 이러하다. 가난한 집에 갓 시집온 며느리가 밥을 하며 뜸이 들었나 보려고 밥풀 몇 개를 입에 물었는데 마침 그때 시어머니가 보고 몰래 밥에 손댔다고 주걱으로 때리며 떠다밀어 며느리는 쓰러지며 부딪쳐 밥풀을 입에 문 채 죽었는데, 그 며느리의 무덤에서 이 꽃이 피어났다는 한 서린 전설이 있다.

전설의 발단은 대부분 지어낸 것일 테지만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며 외롭게 피는 야생화에 특히 얽혀있는 이야기가 많은 것은, 잘은 모르지만 이러한 꽃들과 친숙해지려는 인간의 노력이 아닌가 한다.

봄 산 오솔길을 걸으며 서두를 필요는 없다. 햇볕은 따사롭고 새들은 즐겁게 노래해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하므로 꼭 정상을 오르지 못해도 좋으니 걸음을 늦추고 지나는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을 정감이 있는 눈길로 바라보고 때에 따라서는 상찬(賞讚)도 아끼지 말 일이다. 화무십일홍이라 하듯이 꽃이 피어있는 기간은 짧고 특히 개화의 절정에 맞춰보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때를 놓치면 어쩔 수 없이 또 한해를 부질없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꽃들도 정겨운 눈길로 들여다보면 신명이 나서 활짝 웃는 모습으로 다소곳이 반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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