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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 가까운 산(37)

by 김헌삼


지리 종주일기


5월 15일

아들을 동반하여 지리산 종주를 한번 하자는 말이 나온 지는 벌써 1년 가까이 되는 듯하다. 4년 전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동료들과 거뜬히 이뤘던 경험이 밑받침되었다.

다음 달에 있을 막내의 제대를 앞두고 기분도 새롭게 할 뿐 아니라, 만만찮게 힘든 일을 극복해 봄으로써 곧 시작될 새로운 생활에의 적응력을 기르고 우리 민족 기상의 발원지라 표방하는 정상 천왕봉에 우뚝 서봄으로써 앞으로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역경과 위기를 당하여도 뚜렷한 목적의식과 자신감으로 대처할 수 있는 훈련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하려는 속셈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떠나려니 아들 녀석도 시큰둥한 기색이고 내 몸 상태도 썩 좋지는 않다. 새로운 도전에 녀석이 어느 정도는 흥분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맞기를 기대했으나 그런 내색이 없고 나는 나대로 한 달 전부터 원인 모를 기침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태여서 힘을 써서 오히려 건강에 이상을 초래하지 않을까 떨떠름하다. 이래저래 걱정이 앞서고 신명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밤차로 떠나기로 하였으니 짐을 꾸린다. 각자에게 필요한 옷가지와 먹을 것들은 자기 배낭에 집어넣고 코펠이나 버너와 같은 공용의 취사도구는 적당히 나누되 아무래도 젊은 아들의 배낭에 무게가 더해진다. 장시간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묵묵히 걸어야 하는 점을 고려하여 짐의 무게를 가능한 최소화 하되 꼭 필요한 것들은 또한 빠뜨리지 말고 챙겨야 한다.

사흘간 먹고 자며 생활할 용구들을 갖추다 보니 아무리 기본적인 것만 추린다고 했어도 배낭은 어느 때보다 부피가 불어나고 묵직하다. 짊어지고 시험 삼아 몇 걸음씩 띄어보니 견딜 만하나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피로가 누적되어 참을 수 없는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마무리 짓는다.

시간 여유를 넉넉히 하여 집을 나섰더니 역시 너무 일찍 수원역 대합실에 도착했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그다지 지루한 줄 모르게 흘러간다. 주말을 기하여 멀리 갔던 사람들의 돌아오는 모습이 줄을 잇는다. 그런데 우리는 역(逆)으로 떠나려는 것이다.

5월 16일

혹시 가수 상태일망정 잠결에 하차할 곳을 그냥 지나칠까 염려되어 아들은 핸드폰에 알람을 설정해 놨지만, 우리가 구례구역에 내리게 되어있는 03시 20분경은 평소 내가 자려해도 으레 깨어지는 시각이니 그 점은 그다지 신경 안 써도 될 듯하다.

주말을 다 보내고 새로이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새벽, 예상외로 승객이 많아 거의 만석(滿席)이다. 15명 정도의 등산차림이 우리와 함께 내렸다. 대부분 지리산행을 계획하고 이 캄캄한 오밤중에 움직이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처럼 부자 사이같이 한 세대의 나이 차로 보이는 남자 둘, 부부처럼 보이는 중년 초입의 남녀도 끼어있다. 앞으로 이들과는 몇 번이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지. 벽소령이나 장터목대피소에서 숙식을 함께할 특별한 인연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삶은 우연히 만났다가 또 어느 순간 홀연히 헤어지는 것이기도 한 것이니까.

구례터미널을 빠져나온 버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속을 얼마나 오래 굴러다녔으면 그리 익숙한지 거칠 것 없이 구불구불 구곡양장 오름길을 주저 없이 잘도 달린다. 어느 정도 올라서니 거대한 산의 윤곽이 시야에 잡히기 시작하고 저 멀리 불빛이 환하게 비치고 있는 곳이 우리가 산행기점으로 목표하는 성삼재휴게소일 것이다.

아직도 새벽 04시 50분. 사물은 희끄무레하게 보여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지리산 줄기를 훑는 대장정의 첫발을 힘차게 내딛는다. 어둠의 장막을 걷어 올리기 직전 전주(前奏)를 조율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의 여러 악기에서 제각각으로 무질서하게 쏟아져 나오는 소리처럼 각가지 새들의 부산한 지저귐이 요란하다.

노고단 너머 돼지령 부근쯤 이르렀을까? 진달래와 철쭉의 옹골찬 관목들이 빽빽하게 어우러져 있다. 길섶으로는 새롭게 돋아난 여린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이 갓 피어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빛난다. 길은 때로는 음습한 숲으로 인도되기도 하고 툭 터진 개활지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개활지에서는 대체로 전망이 좋아 끝없이 뻗어 내린 산줄기와 깊은 골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아들은 펼쳐있는 웅장한 산세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는 듯하다.

걷는 발걸음이 이보다 더 경쾌해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가볍다. 이런 좋은 느낌일 때 많이 걸어 벌어두는 것 또한 방법이지만 초반에 페이스 조절을 잘못했다가 나중에 배 이상 힘들어질 수도 있으므로 초반에 속도를 내는 것은 금물이다. 흐르는 물에 두둥실 떠나가는 배처럼 유유자적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보법일 것이다.

산행길에 올라 2시간 반 만에 당도한 임걸령 샘터에서는 맑은 물이 줄기차게 뻗쳐 나온다. 한 모금 목을 축이니 시원하고 단맛이 혀끝에 전해온다. 점점 앞으로 다가오는 반야봉은 말 궁둥짝처럼 두리뭉실한 것이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어루만져주는 듯 부드럽고 무던한 인상이다.

삼도봉(1,550m)에 도달할 때까지는 오로지 전라남도 땅만 밟아왔으나 여기부터 명선봉 바로 다음 삼각고지까지의 길은 바로 도(道)를 가르는 경계선이니 불가피 왼발은 전라북도를, 오른발은 경상남도를 딛는 형국이다. 삼도봉을 벗어나며 그동안 조금씩 벌어 기껏 고지에 올라온 것을 한꺼번에 모두 까먹듯이 급전직하로 나무계단을 따라 한없이 내려간 저점에 화개재(1,315m)가 있다. 전북의 반선과 경남의 화개를 연결하며 넘나드는 고개로서 옛날에는 여기서 물물교환이 이뤄졌다고 하나 지금은 그 흔적이랄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요즈음은 보라색 얼레지와 연한 하늘빛 현호색의 전성기인 모양이다. 한창 피어나 산자락을 수놓는 싱싱한 꽃들의 퍼레이드가 끊임없이, 또는 없어졌다가도 잊을만하면 다시 나타나고는 한다. 식식거리며 올라선 토끼봉(1,534m) 일대, 여기도 진달래와 철쭉 관목이 넓게 차지하며 밀집해 있다. 진달래 철에는 말할 것도 없이 진달래가, 철쭉꽃 필 무렵이 되면 또한 철쭉꽃의 연이은 고원이 보는 사람을 환장하게 할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철도 아니어서 담담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진달래꽃은 이미 져버렸고 철쭉은 곧 터질 듯하나 아직은 봉오리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점심을 해결할 연하천산장은 샘물이 언제나 철철 넘쳐흘러 아무 문제가 없으나 하룻밤 묵으며 두 끼를 해결해야 할 벽소령은 물이 귀한 곳이어서 집을 떠나기 전부터 걱정했었으나 식수는 염려 안 해도 될 정도로 나오고 있었다. 다행이다.

5월 17일

엊저녁에는 피곤한 김에 쉽사리 눈을 붙이고 잠들 수 있었는데 이른 새벽녘부터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몸을 뒤채야 했다. 새벽 3시경부터 부스럭부스럭 일어나 짐을 꾸려 출발을 서두르는 사람들도 꽤 있다. 우리는 그럴 계획도 아니었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었으므로 늑장을 부리다 5시 15분쯤 기상하니 하늘은 조금은 찌푸린 듯하고 바람이 세게 불어온다. 어째 느낌이 심상치 않다. 어제 같았더라면 한참 지저귀어야 할 새들은 어디로 종적을 감추고 있는지 잠잠하고 주변 사람들도 갈 길을 바삐 서두르는 기색이다. 듣자 하니 태풍이 몰려올 것이라 하고 오후부터 100밀리의 비 소식이 있다.

대피소 게양대의 깃발이 몸부림치며 펄럭일 정도로 바람은 강하게 불어오고 있어도 하늘을 보면 설마 비가 오겠나 싶게 구름 낀 곳보다 트여있는 공간이 넓다. 그러나 불안한 느낌은 떨쳐 내지지 않는다. 목표했던 천왕봉을 포기하고 가까운 하산코스를 찾아, 또는 세석까지 가서 거기서 내려가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아들과 나는 당장 ‘불가(不可)한 상황’이 아닌 한 중도에서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다짐했다. 꼭 최고봉에 올라 민족의 정기를 은총처럼 받고 싶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치니 원래 계획보다 1시간 반 빠른 6시 반에 벽소령을 출발할 수가 있었다.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고 몇 끼 먹어치우면서 짐이 한결 가벼워지니 아들도 힘이 솟는다고 앞서 나간다.

주 능선 주변에는 소나무는 별로 눈에 띄지 않고 대신 같은 소나무과의 구상나무가 흔하고 다른 수목들보다 진한 녹색으로 단연 돋보인다. 그밖에는 야광나무 부게꽃나무 사스레나무 나래회나무 백당나무 귀룽나무 등도 심심찮게 만난다. 사실 이들은 매달린 명찰 표시가 아니었으면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생소한 식물들이다. 특히 귀룽나무는 만개하여 아카시아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하얀 꽃송이들이 바라보는 속마음조차 시원하게 해 준다.

호젓한 길목에서 간혹 마주치는 사람들은 반가움이 커,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말 한마디라도 더 나누게 된다. 우리와 같은 방향인 두 젊은이는 앞섰다 뒤로 처졌다 하며 말을 트게 되었다. 그 둘 사이도 이 산에서 처음 만나 동행이 되었다는데 웃고 떠드는 품이 십년지기처럼 친숙해 보인다. 그중의 하나가 나와 아들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손자하고 왔냐 해서 웃었다. 천왕봉 방향에서 오고 있던 나와 비슷해 보이는 중로(中老)는 우연히 또래를 만난 반가운 마음에서인지 이것저것 계속 말을 걸어 우리의 갈 길이 꽤 지체됨을 의식할 정도였다. 칠선봉을 돌 무렵 부닥친 어떤 이는 오늘 새벽 3시경 성삼재를 출발 5시간여 만에 여기를 지나는 중이라 했다. 우리가 어제 11시간, 하룻밤 묵고 오늘 또 2시간, 합하여 13시간 걸려서 온 지점이다. 그는 천왕봉까지 갔다가 오늘 중으로 다시 출발지였던 성삼재로 돌아간다는데 14,5시간을 잡는다고 했다. 젊은이도 아닌 56살의 장년이다. 마라톤 하듯, 물불 안 가리듯 그렇게 달려 나가는 것이 부러운 바는 아니지만 대단한 사람임은 확실하다.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도 낮아지며 걸음을 부추긴 덕으로 우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11시 반경 장터목대피소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곳에 근무하는 관리공단 직원은 밤부터 내일 사이에 큰비가 닥칠 것을 기정사실처럼 말한다. 원래는 장터목에서 하루 묵으며 다음날 새벽에 정상에 올라 일출을 맞을 계획이었으나 비가 올 것이라면 해맞이는 틀린 일이고 천왕봉에 오르는 것만으로 애써서 여기 온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정상만 다녀온다면 더 이곳에 머무를 필요 없을 것이며 그렇다면 지금 곧바로 다녀서 바로 하산해도 되리라. 대피소에서 사발면을 매식하며 시간을 단축하면 더욱 여유가 있을 것이다.

장터목에서 끼니를 간단히 때우고 12시 정각 정상을 향한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정상 부근은 이제야 진달래가 만개하여 짙붉은 색채가 화려함을 넘어 환상이다. 풍속 20미터의 안개를 동반한 강풍이 불어 닥쳐 몸 가누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통천문(通天門)을 통과할 때만 해도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으나 정상 10여 미터를 남기고는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기듯 하지 않으면 순간에 날릴 것만 같다.

강풍에 밀리지 않고 기(氣)를 받기 위하여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는 정상표석(1,915.4m)을 부여안고 얼마나 안간힘을 했는지 모른다. 가누기 어려워 정상에 제대로 서보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내려올 때는 더욱 세찬 바람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드는 듯하다. 장터목에 다시 서서 하산을 준비할 때가 오후 2시가 안 된 시각이니 여기부터 백무동 버스정류장까지는 2시간 반, 늦춰 3시간을 잡아도 5시경에는 도착할 것이니 6시 출발 버스를 잡아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듯하다.

백무동 마을은 업소 대부분이 문을 닫고 퇴각한 것같이 고요한 가운데 바람만 종횡무진으로 뒤흔들고 있었다. 겨우 영업하는 한 곳을 찾아내 이틀 반 만에 제대로의 식사를 마치고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으니 이제야 모든 과업을 완수한 편안한 기분이다.

함양을 경유하여 35번 고속국도 어디쯤 이르렀을 때 꽤 많은 양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리산에도 60 또는 100밀리의 예보된 양을 채우려고 지금쯤은 세찬 비가 퍼붓고 있겠지 생각하니 우리는 얼마나 다행인가. 그 비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소기의 목적은 거의 달성하였으니, 또 하나의 새로운 꿈을 산뜻하게 이룬 느낌이다. (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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