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야 카라알리오루 공원에서
지중해 해안 휴양지 안탈야(Antalya)는 이번 여행에 우리가 다닌 가장 남쪽 도시였다. 베르가몬 왕국의 아타루스 2세가 이 도시를 세웠다는 데서 ‘아탈로스의 도시’라는 뜻으로 아탈레이아라고 했던 것이 오늘날 안탈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석회붕과 히에라폴리스 유적을 본 파묵칼레에서 동남 방향 약 3백 킬로, 4시간 반 소요되는 거리인데 오후 4시경 도착하여 하드리아누스 문 앞에 내렸다.
하드리아누스 문은 130년대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이 도시를 통치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건축양식이 이오니아식인지 도리아식인지 또는 코린트식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아름답게 꾸며놓았다. 똑같은 크기의 아치가 3개 있어 3개의 문이란 뜻으로 ‘위츠 카프라르’라 부르기도 한단다. 이 문 안으로 들어서면 구시가지가 길게 뻗어있다. 규모와 생김은 동네 골목길인데 시가지 사이사이에서 특별한 눈길을 끄는 것은 기본구조는 같으나 시대의 변천을 대변하듯 소재와 생김이 다른 전통가옥들이다. 낡은 목조(木造)에서부터 현대 건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전승되는 양식은 2층 이상에서 베란다 부분이 불쑥 튀어나오게 지은 것이었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건물 대부분이 이러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사의 주류가 무엇이었나에 따라 애초 신전으로 지어졌다가 한때 교회로 쓰였고, 다시 사원으로 바뀌었다는 가이드의 미나레 설명을 들었다. 입구 안쪽 공간을 빼곡히 터키서나 볼 수 있는 특산물 또는 골동품으로 장식한 여인숙 내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웃거리기도 했다. 골목길에 새롭게 보도블록을 깔고 있는 인부들과 짧은 눈 맞춤과 그윽한 미소도 교환하며 확 트인 곳으로 빠져나오니 안탈야 만(灣) 코발트빛 앞바다가 우리를 반갑게 맞고 있었다. 넓게 펼쳐진 바다에는 원근에 철선(鐵船)이 서너댓 떠 있고 건너편에는 첩첩한 산의 연봉이 수묵담채(水墨淡彩)로 선과 면을 형성하고 있었다. 마치 꿈결에 보는 것 같다. 맨 뒤쪽 정상부근에 흰 눈으로 덮인 봉우리 모습이 구름 속에 가렸다 나타났다 하며 이 풍경을 더욱 돋보이는 아름다움으로 꾸미고 있었다. (나중에 지도를 찾아보니 이 일대가 '베이마운틴 올림포스 국립공원'으로 나타나 있다.)
애초에는 목선을 타고 해안을 둘러보는 선택 관광 계획이었으나 조금은 늦은 시간에 일행의 호응이 적극적이지 못한 데다 물결도 순조롭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취소되었다. 대신 해안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카라알리오루 공원(Karaalioglu Parki)을 거닐어보며 주어진 자유시간을 때우기로 하였다.
아마 여기서 우리 일행 누구에게나 맨 처음 눈에 번쩍 띈 사람은 아이스크림 장수였을 것이다. 흰옷 위에 빨간 조끼의 민속 복장을 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밀가루 반죽 모양의 아이스크림 덩어리를 공중에 띄웠다가 받아내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 과장된 몸짓이 행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다지는 과정을 거치므로 해서 아이스크림에는 쫀득쫀득한 맛이 더해질 것이다.
공원 중간쯤 숲 속 너른 공간에 시민들의 휴식 놀이터가 마련되었는데 마침 노동절 휴일(5월 1일)을 맞아 많은 사람이 몰려나와 하루를 여한 없이 즐기고 있었다. 자리를 깔고 가족끼리 모여 앉아 싸 온 음식을 나눠 먹는 모습이나, 무리를 이뤄 벌리고 있는 갖가지 놀이가 어쩌면 우리하고 똑같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편 나눠 줄다리기, 둥그렇게 둘러앉아 수건돌리기, 앞사람의 어깨를 줄줄이 잡고 여러 사람이 기차처럼 길게 늘어서 상대편 꼬리잡기 등. 시시덕거리며 노는 광경이 바로 우리 이웃 동네 사람들 같아 여간 친근감이 가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중앙에 힘찬 근로자 상(像)이 있는 광장에서 축구공 놀이하며 뛰노는 아이들과 그 너머 어스름 속으로 빠져드는 무념(無念)의 바다가 보이는 야외 카페에 자리 잡았다. 착한 인상의 대머리 아저씨가 즉석에서 끓여주는 차를 몇 번이고 우려 마시며, 여행의 중간을 넘는 시점에서 그동안 인상 깊게 본 것들과 느낌을 서로 이야기하며 여분의 시간을 보냈다.
거리에 개나 고양이들이 사람 사이에 섞여 돌아다니는 것은 우리 인간이 사는 곳 어디서나 흔히 보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 나라는 곳곳에서 유난히 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는 느낌이었다. 이스탄불 히포드럼 광장에서도, 맨발로 들어가는 파묵칼레 석회붕 물 가운데나 히에라폴리스 길가에도 어슬렁거리거나 사지를 쭉 뻗고 세상없이 편한 자세로 드러누워 있는, 별나지 않은 개들이 한둘씩은 으레 걸리고는 했다. 이들은 대부분 주인 없이 부랑자처럼 떠도는 것으로 정부에서는 어느 날 일제히 잡아다가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히고는 다시 풀어놓는다고 했다.
하드리아누스 문 부근에서부터 순해 보이는 잡견(雜犬) 한 마리가 우리 뒤를 소리 없이 밟아오고 있었다. 구시가지를 거쳐 공원까지 꽤 먼 거리를 꾸준히 따르는가 싶더니 우리가 뿔뿔이 흩어질 때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었다. 그런데 다시 모여 버스에 오를 때였다. 뒤를 따르던 바로 그 녀석이 어느새 나타났는지 부근 한편에 멀뚱히 서서 떠나는 우리를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