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은 경이로운 풍경들
파묵칼레 언덕 비스듬히 펼쳐있는 석회붕과 카파도키아에서 목격한 요정의 굴뚝이나 버섯 모양의 바위 등은 자연이 빚은 경이로운 걸작들이었다. 이들은 관광포스터나 책자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간판 메뉴이기도 하다.
파묵칼레라는 지명은 목화성(木花城)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높은 지대에서 분출한 온천물이 경사진 아래로 흘러내리는 사이 그 물에 함유된 다량의 석회질이 침전되며 엉겨 붙어 비탈진 곳의 계단식 다랑논처럼 크고 작은 층을 만들었다. 그것이 지표면을 목화 피어놓은 것같이, 두껍게 쌓인 눈처럼, 또는 소금으로 범벅을 해놓은 것인 양 눈부신 하얀 색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수천 년 동안 계속되면서 이와 같은 땅이 넓게 퍼져 그 일대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것을 석회붕 또는 석회층이라 부른다.
층층의 움푹 들어간 곳에 온천수가 고이며 빛에 반사되어 연두색 또는 에메랄드빛을 띤 모습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아래쪽에 관광호텔들이 속속 들어서며 너도나도 온천수를 끌어 쓰게 되어 이 물들이 전처럼 층층에 한가롭게 머물러있을 여유가 없어졌다. 극히 한정된 지역에만 고여 있을 뿐인데 여기서는 관광객들 누구나 맨발로 들어가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석회층 위쪽으로는 폐허가 된 히에라폴리스 유적들이 넓은 지역에 흩어 있다. 한때는 인구가 8만 명에 이르는 큰 도시이었다고 한다. 오래전 잦은 지진과 전쟁 등으로 파괴되고 묻혀 있다가 19세기에 시작된 본격적인 발굴 작업으로 부분부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 말았지만 2세기경에 건축된 1만 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은 보존상태가 다른 것들과 비교하여 양호한 것으로 되어있다. 나로서는 로마유적 하면 목욕탕이나 원형극장 또는 반원형극장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이와 유사한 극장들이 여러 곳에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비롯하여 이번 여행에서만도 에페스의 대극장이 있었고, 보드룸의 큰길가에서도 잠깐 내려서 반원형 극장을 바라볼 기회가 있었다. 그 밖에 가보지 않은 여러 곳에도 원형이든 반원형이든 대소규모의 극장들이 있었음을 책자 등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극장에서의 행사가 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 터키를 대표할만한 두 곳을 꼽아보라 한다면 망설임 없이 인간이 만든 세계도시 이스탄불과 자연이 무수한 세월에 걸쳐 빚어놓은 카파도키아를 택할 것이다. 카파도키아 곳곳의 생김은 동화 속 요정의 나라나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별다른 세계에 발을 들인 것 같은 느낌에 젖게 한다.
거대한 버섯 모양이기도 하지만 다른 눈으로 보면 잘 까진 남성의 상징 같기도 한 바위들. 어느 것은 통통한 몸통으로 하여, 훌쩍 큰 펭귄무리가 고깔모자를 쓰고 배를 쑥 내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통째인 바위가 하나의 산을 이루고 이 바위산에 수많은 동굴이 뻥뻥 뚫린 모양은 음험하고 요괴스럽기조차 하다. 어느 곳은 마치 동치미 무를 가지런히 쌓아놓은 것 같이 동글동글하게 굴곡진 바위 언덕 모양으로 있고, 어떤 바위는 마치 사막의 구릉 위를 우수에 잠겨 외롭게 걸어가는 듯한 낙타 모습을 빼닮았다.
모두 자연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놀랍고 경외의 염(念)마저 든다. 이러한 지형은 태초에 무수히 반복되는 지각변동과 화산폭발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약 6천만 년 전 인근 하산산과 에르제스산에서의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화산재와 마그마가 쌓이고 여러 차례 뒤섞이며 굳어진 응회암(凝灰岩)과 용암(熔岩)들이, 오랜 세월 풍상을 겪으며 연약한 부분이 깎이고 쓸려나가면서 이런 경이로운 모습으로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카파도키아에서 우리는 집중적으로 여러 가지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을 둘러보는 괴레메 파노라마와 야외박물관의 30개가 넘는다는 암굴 교회 중 몇몇 바위 속 교회에 들어가 벽과 천정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도 보았다. 그리고 프레스코라는 것은 회칠한 벽면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수채화를 그리는 벽화기술이다.
카파도키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하나는 개미집처럼 상하종횡으로 뻗쳐있는 지하도시이다. 우리는 그중 데린쿠유(Derinkuyu)를 둘러보았는데 땅속으로 20여 층이나 되며 이곳에 예배당, 학교 교실, 침실, 주방, 식료품 창고 등을 갖추고 대규모의 공동생활을 영위하였다.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입구를 막으면 밖에서는 도저히 열 수 없는 ‘둥근 돌’문까지 있었다.
지상으로 솟은 산 같은 것이든 땅속에 깊숙이 묻혀 있는 것이든 카파도키아의 바위들은 굴을 파내기 좋을 만큼 부드럽지만,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 만큼 단단한 양면성의 석질(石質)이다.
그래서 기이한 모양이 자연스레 형성되고 사람들은 그곳을 파내어 은신처를 마련하고 살아가는 동안 새로운 문화를 심고 꽃피운, 말하자면 신과 인간이 동시에 사랑한 땅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