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봉산에서 안개바다 보다
먼 산을 찾아가는 데는 그럴만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설악산이나 지리산 한라산처럼, 또는 그보다는 못해도 지명도가 있어서 평소 한 번 가보기를 벼르고 있던 곳이라든지, 맛본 산의 숫자를 늘리기 위한 초행의 곳이라든지, 함께 하는 사람들과 산에 가는 것이 좋다든지 다양하다. 이 세 가지 조건이랄지 이유라 할지를 모두 충족할 수도, 그중 하나둘일 수도 있다.
이번 검봉산행은 단언컨대 첫 번째 사유는 아니다. 그다음 이유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같은 줄기를 형성하며 이웃해 있는 봉화산을 언젠가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 어디로 올라가서 어디로 내렸는지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으나 정상부근 눈 덮인 옛 봉화 터에서 몇 사람이 환한 웃음 띤 얼굴로 서 있던 일과 빙폭이 된 구곡폭포에 사람들이 엉겨 붙어있던 일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도 가까이 ‘검봉’이 있다는 것은 알았었다. 언제부터 ‘검봉산’이라 격을 높여 부르고 있는지 모르지만, 어엿한 별개의 산으로 기록하고 있으니 ‘올해 내가 새롭게 찾은 첫 번째 산’으로 치부하려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검봉산을 따라가기로 마음먹게 된 것은 지난 수년 동안 동행하며 우의를 다진 좋은 친구들, 최근 산행이 뜸해 오래 만나지 못한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이며 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하여 라 할 수 있다.
산행은 강촌에서 시작되었고, 대부분 이곳을 찾는 등산객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먹거리 집, 선물 가게 등이지만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강촌은 이제 강촌이라는 어휘가 풍기는 고유의 한적한 이미지는 떠올려보는 것조차 무색할 정도로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검봉 정상을 향하여 오르는 길은 대체로 강촌역에서 바로 강선사 입구를 통하여 주 능선을 길게 타는 코스와 구곡리계곡을 끼고 넓은 자동차 길로 들어가다가 칡국수집 앞에서 질러 오르는 코스가 있다. 뒤엣것은 산행이 1시간가량 덜 걸리는 것으로 우리는 이 길을 택했다.
칼을 세워놓은 것처럼 생겼다 해서 칼봉 또는 검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데 처음부터 닥친 급경사 길을 줄지어 오르며 우리가 정말 세워놓은 것 같은 칼의 등을 타고 오르는 개미 떼의 행렬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 조림한 백목(柏木) 단지인지 제법 우람하게 자란 잣나무들이 벌써 찾아오는가 싶은 봄기운을 타고 한껏 물올라 싱그러운 모습으로 풋풋한 수향(樹香)을 발하고 있었다. 저편 앙상한 갈잎나무 군(群)이 서 있는 곳은 자욱한 안개가 삭막함을 덜어주고 있었다.
30분쯤 오른 지점 평평한 곳에 인동 장 씨 묘소가 나타났으며, 여기서 숨을 돌리고 20분쯤 더 가니 강선사 쪽에서 오르는 길과 마주치는 삼거리였다. 이후 정상까지 평탄한 길의 연속이다. 햇빛이 나고 인근의 안개는 걷혔으나 멀리 첩첩한 산과 산 사이는 모두 구름 같은 안개가 꽉 차게 뒤덮고 높은 봉우리들만 여기저기 띄엄띄엄 솟아올라 마치 바닷속의 작은 섬들 같다. 정상의 높이 불과 530미터의 산을 오르는 우리가 대단한 산세 속에 묻힌 느낌이다.
검봉산은 건너편의 삼악산보다도 그 사이를 흐르는 북한강을 조망하기 좋은 산이라 하는데 오늘은 농무(濃霧) 때문에 주변에 강이 있는 것조차 분간할 수 없다. 그러나 안개가 만들어내는 일망무제의 경관을 감상할 자리에 마침 우리가 서 있는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싶다. 안개가 아무 때나 헤프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은 늘 거기 있지만 산이 보여주는 모습은 시시때때로 다르다. 그중의 어느 특별한 것 하나를 보여줄 때 운 좋게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한다.
이 산에는 대체로 소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가 많고 산길은 우리가 늘 다니는 인근의 청계산이나 부산에 있을 때 종종 찾던 대운산처럼 부드러워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이다. 산을 좋아하는 다른 친지들에게도 소개해주고 함께 와보고 싶다.
정상에 이르는 데는 2시간 정도 소요되었으며 하산 길은 한동안 내려오다 구곡폭포와 봉화산 방향으로 갈라졌다. 우리가 중식 시간을 갖게 될 문배마을은 어느 방향을 택하든 빠질 수 있게 되어있었다. 문배마을은 산속에 자리하는 작은 마을이다. 그래서 듣기 좋은 말로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부르기도 한단다. 산행 중에 산속 먹거리 집에서 매식하고 다시 1 시간여라는 꽤 긴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아마 산행경력 40년에 처음 해보는 짓인 것 같다. 등 하산을 마치고 점심시간을 갖거나, 아니면 싸 짊어지고 올라가 적당한 시간 적당한 장소에 죽치고 앉아 까먹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해봤지만.
문배마을이라 해서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라 친근하게 여겼더니 도수가 높은 독주의 이름으로 문배주가 떠올랐으며 그렇다면 그것을 여기서 만든 것인가 했는데, 그 술을 제조하는 곳은 전라도 어디라고 우리가 들어간 ‘촌집’ 남자 주인이 정직하게 가르쳐 주었다. 내가 그의 처지라면 여기가 바로 거기라고 속일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그냥 모르는 척하고 그 이름 덕을 보려 했을지 모른다. 어쨌든 이 집에서 먹은 김장김치와 동동주가 참 맛있다고 느꼈다. 여기 와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산행을 곁들이지 않더라도 먹거리만을 찾아 서울에서 차를 몰고 많이들 온다는 것이다. 내 아는 사람 중에도 그래서 이 마을을 익히 알고 있는 이가 몇 명 된다는 것 또한 후에 알았다.
거나하게 먹고 나서 이 쑤실 사람 쑤시고, 막걸리 마시고 트림 나오는 사람은 또 알게 모르게 그것도 시원하게 하고 우리는 구불구불 완만하게 돌아가는 임도(林道)를 따라 무리 지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 길은 원래 벌목한 나무들을 실어 나르는 차도였지만 지금은 마을을 드나드는 차들이 요긴하게 이용하는 것 같았다. 그래봤자 그런 차들이 많지가 않아, 언제 내렸던 눈인지는 모르지만 지나다니는 차바퀴에 눌리고 그것이 또한 얼어붙어 응달 구간에는 아직도 꽉 차게 빙판으로 남아있었다. 잠시라도 방심하거나, 주의를 기울여도 벌러덩 넘어지며 ‘어이쿠!’할 형편이었다. 하찮은 곳에서도 운 나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 불상사가 우리 일행에게 발생하는 것을 보고 새삼 깨달았다.
우리는 우회하여 내려오느라 지나쳤는데 이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구곡폭포인 듯하다. 아홉 구비 돌아 흘러내린다 해서 구곡폭포라 한다. 폭포의 길이 5,60미터라고 하면 우리나라에 있는 것 치고는 꽤 길게 떨어지는 편에 속할 것이다. 전에 보았을 때는 빙폭이 형성되어 그런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암벽등반을 하듯 매달려 떠들썩하게 오르거나 내리고 있었는데 아마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시기여서, 사람은 옛사람이 아니어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란 짐작이다.
그밖에 검봉산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해본다면 수도권에서 멀지 않으면서 멀리 떠나온 기분을 낼 수 있으니 경제적이어서 좋고, 높지 않은 산을 오르며 큰 산을 찾은 느낌이니 산행 뒷맛이 심정적으로 뿌듯하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