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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기행(9)

by 김헌삼


이슬람 신비주의의 고장, 곤야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도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도다

모든 것이 꿈이요, 또는 하나의 망상임을

우리는 이 악몽 속에서 고투하고 있도다

만일 자고 있는 이가 자신이 잠자는 곳을 알고 있다면

그는 악몽으로 시달리지 않을 것을

-메블라나 제라루딘 레미 시집 『입술 없는 꽃』중에서

안탈야에서 카파도키아까지 600킬로가 넘는 구간은, 가도 가도 산간과 고원으로 이어지는 풍경에 눈길을 주면서 지루하게 달려야 한다. 그 중간쯤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곤야(Konya)가 있었다. 여행사에서 나눠준 일정표에 의하면 곤야는 안탈야에서 365킬로 떨어져 6시간 정도 걸리고, 여기서 카파도키아까지는 250킬로로 4시간쯤 소요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곤야는 2000년도 인구 76만으로 매년 관광객 2백만이 찾는, 옛 셀주크 투르크 왕조의 수도였으며 아나톨리아의 예술 정치 학문 등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곤야는 이슬람 신비주의의 한 종파인 메블라나 종단의 발상지로 널리 알려졌으며 그 중심인물이 메블라나 제라르딘 레미(Mevlana Celaleddin Rumi, 1207~1273)이다.

메블라나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인 발흐(Balkh)에서 1207년 9월 30일 태어났다. 바그다드 메카를 거쳐 곤야로 이주하여 메블라나 종단을 만들고 활동하다가 1273년 12월 17일에 죽어 이곳에 묻혔다.

이슬람교는 마호메트에 의해 창시되어 불교 그리스도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610년경 마호메트는 알라의 첫 계시를 받고 메카에서 포교를 개시하였으며 622년 박해를 피하여 신자들과 함께 북쪽 메디나로 옮겼다. 이것을 헤지라[성천(聖遷)]라고 하며 이슬람력의 기원(紀元)으로 삼는다.

이슬람교는 정통파인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뉜다. 마호메트의 언행을 뜻하는 ‘수나’를 중요시하여 이상으로 삼는 사람들을 수니파라고 하며 이슬람교도의 대부분이 수니파에 속한다. 시아파의 ‘시아’란 분파라는 뜻으로 수니파 이외의 분파를 총칭한다.

어느 종교나 시간이 흐르고 널리 전파되면서 분파가 생기게 마련이다. 아라비아의 원시 이슬람은 다른 여러 민족을 정복함에 따라 많은 종교와 사상에 부딪쳐, 이들을 받아들이거나 동화시키는 과정에서 이단적 유파(流派)가 생겨났다. 시아파든 수니파든 고답적으로 일반 민중이 접하기는 난해한 문제가 있어서 알라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알라와의 합일을 체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수피즘이 등장한다.

수피즘은 이슬람 신비주의를 가리키는데 이슬람 신앙의 형식주의, 즉 행위의 겉모습만 보고 심판하는 이슬람법 등에 대한 반동으로 발생하였다. 고전 정통 이슬람이 성법(聖法)의 준수를 통하여 신과 교제하는 공동체적 이슬람인 반면, 수피즘은 각자가 자기의 내면에서 직접 신과 교제하는 개인형의 이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세마 즉 ‘탁발승의 선회무용’(Whirling dervishes)으로 알려진 곤야의 메블라나 종단도 그중 하나이다.

갈색의 버킷처럼 생긴 원통모자와 둥글고 흰 치마 위에 검은 망토를 걸친 수도자들이 나와 망토 겉옷을 벗어던지고 두 손을 펼쳐 오른손은 하늘로 왼손은 땅으로 향하게 하고 고개를 23.5도 지구 자전축만큼 오른쪽으로 기울여 회전 춤을 춘다. 자전을 상징하듯이 자신이 돌고, 공전을 하듯 수도자들이 함께 돌면서 엑스타시 상태를 경험한다. 그러면서 신과 일체감을 이룬다는 것이다.

세마 춤 장면은 곤야를 소개하는 팸플릿이나 책자에서 또는 곤야 인근의 조형물이나 대형 그림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 춤이 관객을 위하여 개최되는 것은 메블라나가 죽은 12월의 며칠간이라니 나로서는 설명이나 영상으로 이미지를 추상해볼 뿐이다.

부근 칠타스(Ciltas)레스토랑에서 오픈뷔페로 허기를 해결하고 곤야 중심가에 위치한 메블라나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원래 이 건물과 일대(一帶)는 13세기 말 메블라나의 영묘(靈廟)로 조성된 것이었다. 1925년 아타튀르크에 의하여 종단이 해산되며 1927년 이후 박물관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는 것이다.

박물관 안에서 셀주크 왕조와 오스만 시대의 공예품, 악기, 메블라나의 관(棺), 아랍어로 쓰인 각종 서적,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라는 고가의 실크카펫, 풍속 및 시대상을 반영하는 그림들, 수도자들이 둘러앉은 모형 등 진열품을 보았다. 하나하나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상세히 알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만 메블라나 젤라루딘 레미라는 인물이 한 종단의 창시자요 영혼을 읊는 시인이자 철학자로서, 무엇보다도 명상가로서 70년도 안 되는 세월을 살면서 역사에 길이길이 새겨둘 족적을 남겼다는 데는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음침한 박물관에서 나오니 밝은 햇볕 속에 화사하게 만개한 튤립들이 돋보였다. 이제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 행선지 카파도키아를 향하여 4시간 정도 또 달려야 할 여정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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