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갑산 봄기운 속으로
입춘이 지나고 3월도 말경으로 치달으며 내가 기거(起居)하는 주변에도 산수유꽃망울이 노랗게 피어나고 진달래 꽃눈은 붉은빛을 머금고 곧 터질 듯 탱탱하다. 그러하니 우리가 새벽길을 가르며 찾아가는 머나먼 남쪽 땅은 더욱 따뜻하고 봄은 더 가까이 와있을 것이란 짐작이었다. 그러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더니 불갑산을 찾아가는 나그네 옷깃으로 스며드는 바람결은 실제보다 훨씬 낮게 체감된다. 봄기운에 어쩔 수 없이 밀려 물러가야 하는 겨울의 마지막 시샘 때문이리라.
봄기운. 기운(氣運)이라면 ‘사세(事勢) 또는 대세(大勢)가 어떤 방향으로 향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국어사전의 정의로서 여름 기운, 가을 기운 하듯이 4계절에 두루 써도 무방하리라 생각되지만 유독 봄과 조합될 때만 궁합이 맞는 것 같은 것은 무슨 이유인가? 아마도 어서 겨울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봄을 맞고 싶은 잠재적 심정 탓일 것이다.
도로 사정 등 교통이 좋아져 전국이 1일생활권화하여 어디를 가더라도 현지에서 3,4시간 소요되는 산행까지 해치우고 당일로 돌아올 시간적 여유가 있다. 편도 4시간, 그러니까 왕복 8시간 이상 걸리는 곳은 차 타는 시간이 지루해지고 그러다 보니 즐거워야 할 여행길이 고행길로 변하기 쉬워 자주 할 일은 아니다. 그래도 새로운 것은 생활의 양념이자 활력소 같은 것이어서 가끔은 먼 곳을 찾아 떠나게 된다.
불갑산(佛甲山 515.9m)이 위치하는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는 서해안 고속도로와 비교적 인접한 곳이지만 아침 7시 반에 분당을 출발하여 11시 반 경 산행기점에서 하차하였으니 꼬박 4시간 거리였다. 아름드리 통나무기둥을 사용하여 세워놓은 불갑사 일주문 앞 주차장 부근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650년의 느티나무 2그루가 멋있는 모습으로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제멋대로 자라는 나무도 어느 것은 이처럼 기품과 품위가 어려 있어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국내 유일하게 지평선을 본다는 김제평야 너른 들을 거쳐서인지 우리 앞에 펼쳐있는 불갑산 줄기는 최고봉이 5백 미터 남짓해도 꽤 높고 깊어 보였다.
불갑산은 백제 불교가 비롯한 곳이라 한다. 이곳에서 19킬로 떨어진 서해안 법성포구가 인도 승 마라난타가 백제 침류왕 원년(384) 남중국 동진을 거쳐 이 땅에 상륙한 곳이며 모악산 자락에 백제 최초의 절 불갑사를 창건, 불법을 전파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도 불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산을 찾는 사람에겐 최우선의 관심사가 주변 유적보다 산세다. 산의 생김, 산이 끼고 있는 나무와 바위, 산 위에서 바라보이는 전망이 시원스럽고 마음에 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불갑산은 우리가 늘 다니는 수도권의 청계산보다 낮다. 그러나 산이 낮다고 해서 좋은 산이 아닌 것이 결코 아니듯이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라 해서 힘들지 않고 얕볼 것도 아니다.
주최 측이 나누어준 팸플릿에 의하면 오늘 우리가 거쳐 갈 등산코스는 불갑산장 앞을 출발하여 수도암을 지나 원래 이 산의 이름이지만 이제는 작은 봉우리로 전락한 모악산을 거쳐 구수재 부처바위 불갑산 장군봉 노적봉 경유 덕구재에서 불갑사로 하산하는 것이다. 중간에 점심 드는 시간 포함 4시간 반 소요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불갑사를 껴안듯이 포용하는 산등성이를 한 바퀴 도는 만만찮은 거리이다.
처음 오르면서 혼동되어 잠시 멈칫거렸던 것은 팸플릿 상 안내도에 조그마한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지 상황은 물론이고 뒤에 찾아본 다른 산행 지도에 의하면 내원암골을 깊숙하게 들어와 수도암 앞에서 급경사를 오른 첫 봉우리(335m)는 모악산이 아닌 도솔봉이었다. 다음의 347.8고지는 용출봉이고 굳이 모악산을 거치려면 용출봉에서 서쪽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든지 처음부터 다른 코스를 택해야 우리의 다음 행선지 구수재로 향할 수 있게, 요소요소에 설치된 이정표는 가리키고 있었다. 아마도 불갑사보다 후에 건립되었지만, 규모는 더 큰 용천사는 용출봉과 구수재 사이의 용봉에서 서남쪽으로 벗어난 지점에 있다. 이 절 주변은 상사화와 유사한 꽃무릇의 자생지로서 가을쯤 꽃이 만개할 무렵은 장관을 이룬다는 사실을 뒤에 자료를 찾아보며 알게 되었다. 꽃무릇은 석산(石蒜)이라고도 하며 수선화과 식물로 수도암 근처에 새싹이 군락을 이뤄 뭉텅이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보는 사람의 관점과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구수재에서 이 산의 정상 연실봉을 바라보며 완만하게 오르는 길을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라고 여긴다. 급하지 않아 편안하게 오르는 숲속 오솔길, 기묘한 바위들이 화려함보다 어머니의 품 안 같은 아늑함을 안기는 부드러운 흙길이 좋다.
중간중간 큰 나무들 우듬지를 휩쓸며 지나가는 꽃샘바람이 차가워 식사 시 한기를 우려했지만 2시간 만에 도착한 전망 좋은 정상, 연꽃 열매를 닮아 그렇게 부른다는 연실봉(蓮實峰) 바위 마당은 봄기운 속에 오히려 더 따스하여 화기애애한 가운데 요기를 끝낼 수 있었다.
장군봉 투구봉 법성봉 노적봉을 거쳐 가는 하산 길은 이름이 풍기듯이 오른편은 ‘위험한 길’로 분류되는 암벽벼랑인 듯하여 모험을 즐기지 않는 우리 일행들은 ‘안전한 길’이라 표시된 왼쪽 길을 따랐다. 기나긴 능선 막바지 덕구재에 이르러서는 직진하며 더 길게 도는 길이 있었지만, 역사가 있는 불갑사를 대강이라도 둘러보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하산 길로 접어들어야 했다.
내려오기에 급급하여 여기서 유의해 보아야 할 중요한 것을 놓쳤다. 불갑사 뒤편 일대는 참식나무들이 모여 서식하는 곳으로 이 생소한 이름의 나무는 상록활엽교목으로서 목질이 단단하여 요긴한 가구재이며 특히 타원형 열매는 염주를 만드는 데 쓰이는 천연기념물 112호란다. 이 사실을 하산을 끝내기 직전 불갑사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고서야 뒤늦게 알았다. 표지판 뒤 표본처럼 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았는데 이식이 잘못된 듯 마른 잎 몇 개만 달린 채 죽어있었다. 이를 보아서는 어떻게 생겼는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 사진 몇 컷으로 대강 생김을 짐작해볼 뿐이다.
돌아오는 길에 부근 법성포를 들렀다. 봄볕을 받으며 여기저기 흩어 앉아 졸고 있는 갈매기 떼와 줄지어 정박한 배들이 아니었더라면 포구라는 느낌이 안들 정도로 해안에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한없이 아늑했으며 쭉 늘어있는 낮은 건물들은 거의 굴비가게들이었다. 이곳이 굴비로 유명하게 된 것은 인근 칠산바다에서 잡은 참조기를 영광 일대 특히 염산면(塩山面)의 질 좋은 천일염으로 말려 맛이 특히 좋으며 고려 인종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진상품으로 쓰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산지의 특산물들은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 많으며 값은 오히려 비싸면 비쌌지 싸지 않다는 속설(俗說) 때문에 사 들고 가봤자 돈은 돈대로 들고 안식구들에게 환대는커녕 돌아오는 것은 핀잔뿐이라고 구경만 하고 마는 일행들이 많았다.
불갑산의 낙조는 경주 토함산의 일출과 버금가게 일품이라지만, 이제 해도 많이 길어졌거니와 그것을 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에 하산하여 법성포에 가서 싱그러운 갯 냄새를 맡으며 40여 분 머물다가 귀갓길 대천쯤에 이르러서야 서해로 떨어지며 붉게 물드는 노을을 보았다.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