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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기행(8)

by 김헌삼

음식, 세계 3대 요리라는데

여행에는 먹는 즐거움도 큰 한몫을 차지한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볼거리 못지않게 맛 거리가 관심사이다. 터키에는 케밥이라는 대표적인 음식이 있으며 주식인 양고기를 이번 기회에 정식으로 먹어보게 될 것이 사전 지식이요 기대였다.

그런데 이번 여행으로 새롭게 안 사실은 터키 음식이 다양성과 맛 면에서 중국, 프랑스와 더불어 세계 3대 요리로 꼽힌다는 것이다. 오스만 제국 왕들의 식탁에는 끼니마다 이름 다른 요리를 진상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서 음식문화가 다채롭게 발전하여 예술의 경지에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우리가 여행 중 맛보는 터키 음식들이 이곳 요리의 진수(珍羞)나 성찬(盛饌)이길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현지식(現地食)’이라 이름 붙은 메뉴는 이 사람들이 즐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우리 행사일정표에는 현지에서의 첫날과 마지막 날 만찬이 한국식당을 찾아 갖는 한정식이고 나머지 끼니는 현지식이었다.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갖는 식사를 따로 호텔식이라 하고 아침의 조식뷔페와 석식(夕食)은 오픈뷔페라는 이름이었다. 대체로 이동 중에 때우게 되는 오찬은 오픈뷔페와 케밥을 메인으로 하고 스프, 빵, 샐러드, 후식 등이 곁들여지는 특별 메뉴였다.

케밥은 원래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운 고기’를 뜻하는 것이라는데 소, 양, 닭고기를 쓰며 종류가 2,3백가지나 된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거리에서 흔히 보는 되네르케밥과 쉬시케밥이다. 되네르케밥은 잘게 다지고 뭉친 고기 반죽 덩어리를 쇠기둥에 끼워 불에 돌려가며 구운 후 칼로 얇게 썰어서 먹는 숯불 회전 구이를 말하고, 쉬시케밥은 꼬챙이에 고기를 끼워 구운 꼬치구이를 말한다. 접시에 담겨 나올 때 우리는 그것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잘 모른다. 다만 첩약 풀어놓은 것처럼 종이에 따로 담아 접시에 올려 내온 것을 ‘종이케밥’이라 하였고 조그마한 항아리에 덥혔는지 익혔는지 거기서 퍼주는 고기요리 내용물을 ‘항아리케밥’이라고 불렀다.

첫날 이스탄불 히포드럼 부근 ‘부하라 레스토랑’에서 종이케밥을 들었고, 카파도키아 갔을 때 동굴식당에서 항아리케밥을 맛볼 수 있었다. 얼떨결에 먹은 것이라 그때 맛이 닭고기로 한 것은 닭고기 맛이라는 것 외에 어떻더라고 말할 형편은 못 된다. 다만 선입감에서처럼 느끼하거나 역겨워 적응하느라 애쓰는 일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먹을 만한 음식이었다.

케밥이나 쉬린제에서 먹은 양갈비에는 밥이 따랐는데 바이락타로울루라는 사람의 책에서 필라브는 쌀에 물을 붓고 버터를 듬뿍 넣어 익힌 것으로 밥알이 서로 들러붙지 않는다. 때로 야채와 고기를 잘게 썰어 넣어 요리하기도 하는 이 필라브는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주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기요리에 곁들여 먹는 부차적인 음식이 되었다고 소개하는 필라브란 것이 바로 이 쌀밥으로 짐작되는데 조리방법과 생김은 우리의 볶음밥과 비슷하나 맛이 고소하고 먹기에도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터키는 대표적인 농업국가로서 풍부한 식재를 바탕으로 한 야채요리가 발달하여 가지요리만 해도 5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가지를 비롯하여 애호박 고추를 재료로 사용한 음식이 자주 눈에 띄었다. 고추는 10여 센티가 넘는 크기지만 맵지 않고 흐물흐물하게 삶아 힘없이 늘어진 모양으로 다른 야채들 속에 섞여있는가 하면, 간장에 절인 것 같은 포도 크기의 탱글탱글한 작은 고추들은 적당한 매운맛으로 식욕을 돋우기도 하였다.

터키 음식을 말할 때 우리 김치처럼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올리브이다. 지금은 올리브나무가 6대주 모두에서 재배되어 전 세계에 약 8억 주(株)가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중 90퍼센트가 지중해 연안에 집중되어 있으며 스페인이 가장 많은 생산을 한다지만 터키가 원산이란다.

호텔의 조식뷔페이든 오픈뷔페이든 초록색 또는 진초록이나 까만 올리브 열매가 서넛 또는 그 이상의 다양한 종류로 식탁에 항상 풍부하게 올라왔다. 올리브가 건강이나 미용에 얼마나 좋은가에 대하여는 대부분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데다가 가이드가 틈만 나면 그 효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식사에 임하여 우리는 늘 무엇보다 올리브 열매를 욕심부려 담아오고는 했다. 그렇지만 맛은 쓰고 짜거나 무미에 가깝고 게다가 과육에 비하여 큰 씨가 잘못하면 이를 상할 정도로 딱딱하게 씹히는 통에 가져온 것을 반 정도만 소화해도 많이 드는 편이었다.

칼슘 철분 비타민A가 듬뿍 들어있고 동맥경화를 막아주고 피부미용에 좋다는 등 만병통치약 같은 올리브 열매를 기간 내내 꾸준히 섭취할 수 있었다. 아마도 보신 강장에 꽤 도움이 되었을 것이니 이것 또한 이번 여행의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할 것이다.

참, 술 이야기가 빠질 뻔했다. 우리의 소주와 같이 국민주 격인 라크(Raki)라는 이 지역 전통 술이 있다. 45도로 매우 독하며 통상 물을 타 마시는데 물이 들어가면 안개처럼 뿌연 빛깔로 변하고 진한 산초 향이 난다. 그래서 이를 ‘라이언의 밀크’라 한단다. 너무 독하여 과음하면 아마 마시는 사람의 정신도 안갯속을 헤매듯이 몽롱해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첫날 저녁 반주로 한 병(70 cle)을 주문하여 맛보며 일행 전원에게 돌렸다. 그러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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