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품 모악산
먼 산을 가기로 한 날 아침에 비가 오고 있으면 난감하다. 심란하다. 하늘에 구름만 무겁게 끼어있어도 그런데 비까지 내리면 기분은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오래전부터 계획된 산행을 취소하고 집안에 박혀있으면 종일 께름칙하고 허전함을 어쩔 것인가?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천둥 번개와 뇌성벽력으로 잡아먹을 듯한 기상만 아니라면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계획대로 실행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모악산을 가기로 한 날 아침 밖을 보니 많은 것은 아니지만 비가 추적이고 있었으며 우리가 갈 전북 지역에 대한 예보도 역시 얄밉게도 ‘비가 오다 오후 늦게 갬’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맞을 각오로 달려가면 현지에 도착하여 산행할 무렵에는 오던 비도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늘이 가상히 여겨 베푸는 특별한 은전(恩典)인 것 같다. 오늘도 챙겨간 우산을 한 번도 펴들지 않았으니.
모악산은 이번이 초행은 아니다. 어느 해이었는지 조차 가늠 안 되는 일이지만 오래전에 오늘 코스와 똑같이 한 일이 있다. 출장으로 전주에 일박할 일이 있어 그 틈새를 이용하여 아침 일찍이, 간편한 복장도 준비가 안 되어 일반 구두에 신사복 바지와 와이샤스 차림으로 버스 편을 알아 홀로 찾았었다. 심한 비탈길에서는 곧잘 미끄러지기는 했지만 대체로 그런 차림으로도 무리가 아니었던 것이나, 정상부근에 노인 몇 명이 한담을 나누고 있었던 정황으로 아마 늦은 봄 아니면 초여름 무렵이었을 것이다. 어렴풋이 지금과 같은 때인 것 같기도 하다.
산행의 시발지 모악산 동편 구이(九耳)는 언제부터인지 관광단지로서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완주군에서 세워놓은 큼지막한 버섯 모양의「모악산母岳山」표지석을 지나 계곡을 끼고 오르며 본격적인 산행은 시작되었다. 길옆으로는 많은 꽃이 피어있었지만, 지난밤 비바람으로 더 많은 꽃잎이 떨어져 깔리거나 물결을 타고 흘러가고 있었다.
20여 분 걸어 나타난 대원사(大院寺)는 절은 크지 않았다. 몇백 년은 됨직한 대여섯 그루의 벚나무가 화사한 꽃들과 까마득한 키로 사찰 건물을 옹위하듯 서 있어 아늑한 모습이었다. 다시 20여 분 만에 나타난 수왕사(水王寺)는 주 능선으로 올라붙기 직전에 위치하여 1차 쉼터 구실을 했다. 능선에서 정상까지는 평탄한 길이었으며 산행을 시작하여 2시간이 채 안 되어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상부근 능선 북쪽에는 때에 걸맞지 않게 여기저기 흰 눈이 덮여있어 우리 눈을 의심케 했다. 어제 수도권에는 비 사이로 우박이 후드득 듣더니 여기는 진눈깨비가 내린 모양이다.
모악산 맨 꼭대기에는 송신탑과 이를 관장하는 부속 건물이 서 있다. 정상부근을 독차지하고 있어서가 아니고 흉물 같은 건물, 삥 둘러싼 철조망, 게다가 화물용 케이블카와 길게 늘어트린 굵은 선 등 모두 좋은 경관을 해치고 있었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만 해놓았지 자연 친화적으로 가꾸려는 기색이 전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소요소에 세워놓은 이정표도 스테인리스 강판을 뭉뚝뭉뚝 크게 잘라 쓴 것 같아 유용하기보다는 보기 싫은 감정에 치우친다.
‘징게맹개 외배미들’에 산다운 산은 여기 밖에 없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나다녔으면 주 등산로는 닳고 닳아 반질반질하고 헐벗은 모습이었다. 전에 찾았을 때도 이러한 시설들은 이런 모양으로 있었을 터인데 이번에 특별히 더 거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안목이 좀 더 성숙해졌거나 보아온 다른 주변 환경은 더 잘 정비되어 있어서일까?
그래도 산자락에서는 이미 져버려 볼 수 없던 진달래가 정상부근에는 한창때의 싱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느 산엔들 진달래가 없을까만 안내문에 유독 이 산의 진달래가 유명하다고 써놓은 것은 대구 비슬산이나 창녕 화왕산 여수의 영취산처럼 밀생하여 군락을 이루는 장관은 아니지만, 눈에 띄는 나무들은 크게 자란 가지와 듬성듬성 피어난 꽃에 고고한 기품이 서려 있어 인 것 같다.
산의 높이 793미터 라면 낮은 산이라 할 수 없음에도 구이에서 정상을 거쳐 금산사로 넘는데 걸린 시간은 3시간 얼마로 족했다. 산에서 뒤틀린 심사는 산 밑 부도(浮屠) 앞 넓은 곳에서 식사를 마치고 들른 금산사(金山寺)에서 모두 풀렸다. 솔직히 모악산 품 안에 폭 싸여있는 것 같은 금산사는 이번으로 네 번째이니 자주 온 편이다. 올해는 한 달 전 사학과 교수 인솔하에 답사로 들러 문화유산의 이것저것을 설명 들었으므로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호남 4경 중 하나라는, 주차장에서 금산사에 이르는 길가의 벚꽃은 이제 져버렸으니 그것이 다르다면 다르고 아쉬울 뿐이다. 이 계절에 모악산행을 계획한 것도 내심은 화사하게 피어 빛날 이 벚꽃을 감상하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고많은 날 가운데 며칠 반짝하는 것에 정통으로 꿰맞추는 것이란 대단한 운이 아니고는 어려운 것이라 받아드리련다.
금산사에는 당간지주 석련대 육각다층석탑 노주석 석등 석종 오층석탑 혜덕왕사진흥탑비 등 보물이 즐비하다. 이들은 모두 국보 62호 미륵전(彌勒殿)이 거느리는 것이다. 미륵전. 두말할 것도 없이 옥내 중앙에 미륵불을 모신 건물이다. 미륵불은 물론 이 절 대적광전에 모신 다섯 여래도 석가모니불을 빼고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약사불 등이 각각 누구이며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심지어 창피한 이야기지만 실제 인물이었는지 조차도 내 지식으로 확실치 않다. 그러나 겉으로는 보기 드물게 3층의 모습을 하고 내부는 한통속인 미륵전을 바라보는 마음은 흐뭇하다. 멀리 떨어져 보면 뒤의 모악산과 조화를 이뤄 조용한 가운데 단아한 품격이 돋보이며, 가까이 다가가면 그렇게 웅장하지도 화려하지 않으면서 우아한 맛을 풍기고 있다.
보물 가운데 석련대(石蓮臺)와 육각다층석탑이 특이하다.
석련대는 석조연화대의 준말로 불상을 모셨던 대석(臺石)을 말한다는데 대적광전과 미륵전 부근 마당 한자리에 있다. 어떤 부처님이 앉아 계시던 좌대인지 지금은 대석만 남아 있으니 대적광전이나 미륵전 안의 부처님들이 서 있기 힘들거나 오래 앉아있자니 지루할 때 슬쩍슬쩍 눈치 보며 통풍 잘되는 이곳에 번갈아 나와 한동안 바람 쐬고 돌아가는 자리이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여러 크기의 기왓장을 차례대로 쌓아 올린 것 같은 육각다층석탑(六角多層石塔)은 우리나라 탑들이 화강암으로 만든 방형탑(方形塔)인데 점판암으로 조성한 육각탑인 점이 별나고 지붕돌 11매가 올려 있고 맨 위 두 층에 남아 있는 몸돌 각 면에는 불좌상이 선각(線刻)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장식적인 이미지를 품고 있다.
금산사가 마음에 드는 다른 한 가지는 주요 건물들이 사방으로 물러나 있고 가운데 절 마당이 널찍하여 여유롭고 시원한 점이다.
산행에 주력하는 우리는 아무리 이름 있는 사찰이라도 그냥 지나치거나 대강 훑어보고 나오는 것이 예사인데 여기서만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시간상 그만큼 여유도 있었고 곳곳을 관심과 흥미를 갖고 보도록 이끌리는 요소들이 많아서이기도 할 것이다. 입구인 보제루(普濟樓)를 뒤로하고 주차장까지 나오는 동안 길옆으로 늘어선 벚나무들은 꽃들이 져버려 그들의 영화는 다하였지만 걷는 이들에게 안도와 뿌듯한 마음을 전수(傳授)하고 있었다.
귀갓길 고속도로변에는 도처(到處)에 배 밭이 널려있었으며 그것들이 배 과수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은 어제의 비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싱싱한 꽃들이 가는 곳마다 만발해 있었기 때문이다. 배꽃들은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광명등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