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끝나다
이스탄불,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고 동서양이 공존하는 세계의 도시. 많은 사람이 한번 가보기를 꿈꾸는 곳이며, 경험한 사람들은 가슴에 품어두고 때때로 떠올려 보는 도시이다. 유럽 대륙을 관통하여 런던까지 향하던 오리엔트특급의 시발역이 있는 곳이며, 저 멀리 중국으로부터 상인들이 터벅터벅 힘겨운 걸음으로 찾아오던 실크로드의 종착점이기도 하다.
5일간의 지방 순력(巡歷)을 마치고 카이세리 공항을 거쳐 고향을 찾듯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불과 1주일 전에 처음 왔던 곳이지만 생면부지의 곳들에 비하면 그것도 한번 거친 자리라고 빠져나오는 아타튀르크공항이 이제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될 만큼 낯설지 않다.
숙소는 바뀌어 새로 든 호텔은 전에 상공회의소로 쓰였던 곳이라는데 육중하고 고급 분위기를 풍긴다. 여행사 측의 앞을 내다보는 전략인지는 모르지만, 매끼 먹여주는 것이나 잠자리가 날이 갈수록 대체로 질과 격이 높아지는 것을 은연중 느끼겠다.
이번 터키 일주여행(정확히는 터키서부 일주)은 이스탄불 신시가지를 둘러보고 가까이 돌마바흐체 궁을 관람한 후 보스포러스해협을 유람선 타고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해협을 사이에 두고 나뉜 유럽 지구와 아시아 지구를 보스포러스대교와 제2의 대교, 파티흐 술탄 아흐메트 다리가 연결하고 있다. 골든 혼(金角灣;Golden horn)으로 구분되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는 아타튀르크 다리와 갈라타 다리를 통하여 넘나들게 된다.
신시가지의 중심 탁심광장에 내려 이스탄불의 명동이라는 이스티크랄 거리 일대를 걸으며 눈요기하도록 1시간여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는 터키여행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돌마바흐체 궁전 관람을 위한 일종의 몸풀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편안하게 유유자적하는 기분으로 시간이 되는 데까지 물 흐르듯이 걸어본다.
광장 중앙에는 이탈리아 조각가 카노니카의 1928년 작품이라는 기념비적인 동상 조형물이 있다. 조각품의 중심인물은 이 나라가 가장 존숭하는 케말 파샤 아타튀르크다. 독립과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동지자들과 함께 앞을 향하여 당당하게 걸어 나가는 모습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거리에는 고풍스런 노면전차가 짧은 구간을 왕래하며 명물 행세를 하고 있었다. 중심가 상점주인들 시선 속에는 한 번 들어와 보라는 간절함이 역력하지만, 노골적 호객은 삼가며 품위를 지키는 태도들이었다.
돌마바흐체궁전 관람은 1일 1,500명이라는 인원 제한이 있다. 통제가 엄격하여 입장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 기다려야 했다. 궁전답게 정문 앞에는 근위병이 지켜 섰고 근무를 마치고 물러날 때는 볼만한 교대식이 있는 모양이지만 우리에겐 그것까지 볼 운은 없었다. 근위병은 마네킹인가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철저한 부동자세로 있다. 그래도 살아 숨 쉬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은 눈동자 움직임이었다. 오랫동안 미동 않고 서 있어야 하는 긴장과 그로 인한 몸의 경색을 가끔 눈동자 굴림으로 푸는 게 아닌가 싶다.
돌마바흐체란 ‘정원으로 가득 찬 곳’이라는 뜻으로 이곳에 아흐메드 1세 황제(1607~1617)가 작은 정자를 지은 이후, 주변에 목재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정원도 잘 가꾸게 되면서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압둘 메지드 황제(1839~1861)가 이탈리아 건축가 발얀의 설계로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지어놓은 것이다. 국가재정은 고려하지 않고 사치스런 유럽식 궁전을 1843년에 시작하여 장장 13년 걸려 1856년에 완공한 것이 돌마바흐체 궁전이다.
우리가 처음에 톱카프궁을 보고 대제국의 황제가 거처하던 궁전이 이렇게 검소할 수 있는가 의아스러웠는데, 그 생각을 완전히 불식할 만큼 호화롭기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뺨칠 만하다. 1만5천 평방미터의 터에 18개의 홀과 332개의 방, 6개의 목욕탕, 68개의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내부 장식에 금 14톤, 은 40톤을 투입했을 정도로 웅대하고 화려하다. 많은 고급스런 내부 장식 가운데 넓은 홀에 깔린 최상급의 수직(手織) 4,455평방미터 크기 헤레케산 카펫과 36미터 높이의 천장에 매달린 750개의 등이 달린 4.5톤 무게의 거대한 샹들리에는 특별한 볼거리였다.
이 궁전을 짓고 국운이 크게 쇠퇴하여 오스만제국 멸망에 박차를 가했다고 하는데, 후손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관광객으로부터 입장료를 한없이 긁어모으고 있으니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 순환하는 인간사의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이스탄불을 정교하게 다듬어진 듯한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오래된 문화와 역사가 잘 농축되어있는 도시라고 한다. 또는 신과 인간, 자연과 예술이 함께 어우러진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창출된 곳이라고도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것이, 인간이 쌓아온 문화와 예술의 역사유물이었다면 전용 유람선을 타고 보스포러스해협을 둘러보는 것은 신과 자연이 빚은 커다란 밑그림에 수천 년간 인간이 조화롭게 꾸미고 여러 가지 색깔로 덧칠한 풍경을 완상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빌려 탄 유람선 큐츄크 프렌스(Kucuk Prens)호는 그리 큰 배는 아니었다. 그래도 일행 16명만이 누리기는 아까운 생각이 들 정도로 넉넉했다. 연안에 길게 자리 잡은 돌마바흐체를 멀리 밀어내며 보스포러스대교를 지나 제2의 보스포러스 다리까지 다녀오는 크루즈이었다.
연안은 유럽 쪽이나 아시아지구가 다 같이 알맞은 높이의 구릉으로 형성되었다. 가장 높은 곳이 위스크다르의 참르자로 해발 267미터에 불과하다. 여기에 숲과 각양의 건축물이 각색으로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우러져 있다. 숲에는 갓 피어난 연록 속에 도화색(桃花色) 꽃들이 점점홍으로 수 놓여 화사함이 돋보인다. 사이사이 붉은 지붕 집 중에는 유명 연예인 소유가 많다고 한다.
양쪽 해안 가까이 또는 좀 떨어져 포진한 굵직한 건물이나 아름다운 축조(築造)들은 오르타쾨이 사원, 루멜리 성, 베일레르베이 궁전, 리비아술탄 사원, 칼렐리군사학교, 아나돌루 성 등일 것이다. 물론 더 멀리 성 소피아 성당이나 톱카프 궁전, 블루 모스크 등도 멋진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며 내려다보고 있다.
코발트 빛 맑은 바다, 그 위로 물길을 따라 수십 마리 작은 새들이 떼를 이뤄 낮게 떠 지나간다. 마치 저희 영역임을 우리에게 알리고 과시라도 하는 듯하다.
보스포러스 크루즈를 이번 터키여행의 마지막 장에 넣은 것은 토인비의 말처럼 인류문명의 살아있는 거대한 옥외박물관인 이스탄불의 포괄적인 모습을 거시적인 안목으로 거두라는 뜻으로 새겨진다. 그래서 마음과 머릿속에 담아두고 길이길이 되돌아보라는 뜻일 것이다.
8박 9일의 일정으로 우리는 터키의 많은 것을 본다고 보았지만, 그것은 이 나라에 있는 무수히 많은 것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일정상 어쩔 수 없이 주마간산에 수박 겉핥기였다. 그러나 피상적인 관찰일지라도 지금의 터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이모저모 직접 보았다. 그들이 이 시점에 존재하며 그동안 만들어놓은 것들의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를 앞으로 깊이 알려는데 충분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여행에서 거둔 큰 수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