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출 발
이번 미국행은 오랜만의 해외 나들이이기도 하지만 서너 차례 있었던 지난날의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때는 은행에 재직하여 직장에서 대주는 비용으로 업무 사이사이에 볼거리를 곁들였었는데 비하여 이번 여행은 내 주머니를 털어, 솔직히 말하면 조그마한 볼일을 빌미로 큰 여행을 하려는 것이 되었다. 따라서 자의적이고 또한 자유로워 우리 마음대로 여행 일정을 계획할 수 있었다.
참석해야 할 큰딸의 학교과정 졸업과 처조카의 결혼이 미국 동남부와 서부에서 약 한 달의 간격으로 있게 되었다. 이참에 좀 긴 듯하지만 아니 길기 때문에, 미국 대륙횡단이라는 거창한 계획을 세워볼 수 있었다. 그러나 졸업식 참관과 결혼식 참석이라는 명분이 없었더라면 이 여행이 가능했을까? 하고 싶어도 뒤로 미뤄지고 지지부진하지 않았을까?
긴 시간을 자동차로 횡단한다는 일이 우리 부부 만의 일이었더라면 감히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을까? 미국에서 운전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생각해볼 수야 있었겠지만, 실행까지 가기에는 더욱 신중한 고려가 필요했을 것이다. 수년 미국 생활을 해본 친구가 그 딸도 로스쿨을 졸업하는 비슷한 처지여서 주관 추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의 미국여행이 비행기로 몇몇 대도시를 이동하며 도시문화를 편력하는 것이 정형화된 것이라 한다면 이번에는 자동차로 미국 땅을 훑으며 지나가려는 것이니 설렘이 커야 마땅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기대보다 우려가 커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세 부부, 즉 여섯 명이 함께 하므로 운전을 번 갈아 할 것이며 비용도 상당히 절약될 것이다. 그리고 심각한 어려움이 닥치면 언제든지 중도에서 끝낼 수도 있다는 각오이기 때문에 크게 염려할 바는 아니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설렘이 실종된 것은 아마도 나이 탓일 것이다. 웬만큼 살아온 크기로 인생 경험은 축적되었을 것이지만, 그 대신 열정은 많이 소진된 상태로 그만큼 떨림이 덜한 것이리라. 그저 담담할 뿐이다. 설렘이 받쳐주지 않으니 준비하는 과정이 그토록 힘들었을 것이다.
2004년 5월 10일 12시 KE037 편 시카고행. 그로부터 손목시계의 시침이 꼬박 한 바퀴를 다 돌고도 12와 1 사이 4분의 3 위치에 와있을 때, 우리 부부는 오헤어 공항에 내렸다. 현지 시각은 10시 45분이었고, 이는 도착 예정 시간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KAL 승무원이 도착지에서 머무를 주소를 상세히 기재하지 않으면 입국수속에 애먹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딸이 사는 도시명과 적어 가지고 온 전화번호만으로 별 탈 없이 순조롭게 미국 땅에 발을 디밀 수 있었다. 얼마 동안 머무를 것인가에 대하여 넉넉하게 말한다고 6월 말까지로 불렀더니 더 여유 있게 8월 8일까지 찍어줬다. 입국 심사가 끝나면 기본적으로 90일은 허용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뒤에 연달아 일어났으니 딸을 보러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았다.(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