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횡단여행(5)

by 김헌삼

5.로스쿨 졸업식


딸아이가 처음에 밴더빌트 로스쿨 입학 허가 통지가 왔다고 했을 때 이런 학교도 있나 했다. 테네시 하면 아주 오래전에 패티 페이지인가 하는 여가수가 부른 감미로운 노래 『테네시 월츠』 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듯이 밴더빌트 하면 뉴욕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그곳에 거주하는 친구가 데려가 준 밴더빌트 맨션만 떠오를 뿐이었다. 밴더빌트 대학이 테네시주 내시빌에 있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어쨌든 지수가 3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이 대학 로스쿨을 졸업한다. 그 졸업식을 참관하기 위하여 우리 내외도 우여곡절 끝에 힘들게 여기 내시빌에 왔다. 막내 녀석도 견문을 넓히라고 제 매형이 여비를 대줘 함께 오게 되었다.

그것이 관례인 듯 졸업식 하루 전에 학생 학교관계자 학부모가 모여 서로 인사하고 친분을 나누는 리셉션이 있었고, 대강이나마 학교를 둘러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학장과 교수 취업 알선 담당자 등 학교관계자 지수가 가까이 지내는 친구와 그 부모, 동고동락한 한인 동료 등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두루두루 만나 단편적인 대화들을 나눴다.

내가 만나 첫인사를 나눈 사람 중에 학장이 있다 하는데, 그러면 분명히 학장이라고 소개를 받았을 터인데도 누가 그인지 기억에 없다. 그만큼 만남의 실제 내용은 건성 건성으로 하고 겉치레만 번드르르하게 하려다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이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과의 만남이 너무 소홀했던 게 아닌가 싶다.

지수가 친하다는, 그래서 만나면 둘이 수다를 한없이 늘어놓는 미국 친구 중 하나인 크리스티나는 전날도 봐서 확실하게 안다. 많은 말은 교환하지 못하지만 웃음 띤 얼굴로 서로 친분 표시는 충분히 할만한 정도에 이르렀다.

학교는, 다른 명문들을 볼 기회가 없어서 직접적인 비교는 안 되지만 교정도 꽤 넓고 아름드리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진 사이에 고풍스런 건물들이 들어찬 아늑한 분위기로 그만하면 되었다 싶다.

졸업식 날 아침 아내와 나는 이날 입기 위하여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가져온 정장을 차려입으며 정갈하고 남에게 빠지지 않는 모습으로 보이려고 애썼다. 넥타이도 두 개만 가져왔지만, 번갈아 매어보며 신중히 선택했다. 좀 밝은 것으로 할까 하다가 색이 너무 튀는 것 같아 결국 작은딸 결혼식 때 맸던 것으로 바꿨다.

식은 대학 전체적으로는 9시에 시작하고 로스쿨은 따로 10시 반부터 학교건물 옆 잔디밭에 쳐놓은 대형차일 속에서 한다고, 10시에서 반 사이에 그리로 가면 된단다. 아들 녀석은 사진 찍사로 발탁되어 누나를 따라 꽤 일찍이 나갔지만, 아내와 나는 조금은 이른 듯해도 넉넉하게 10시 무렵 식장으로 찾아간다. 어제 예행했던 기억을 더듬어. 이른 것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이 많이 와 있어 일찍 서두르기를 잘했다 싶다.

로스쿨 본관 건물과 윌슨 홀 사이 넓은 커리휠드 잔디 위에 쳐진 백색 차일(遮日)은 엄청난 크기여서 한번 설치하는데도 건물 세우기만큼이나 힘들었을 것 같다. 비교적 앞자리를 찾아 앉으려 기웃거리니 친절한 미국인이 비어있는 두 자리를 알려 주었다.

10시 반경 거추장스러워 보이지만 위엄을 세워주는 가운을 입고 학장을 비롯한 교수단, 그리고 뒤를 이어 졸업생들이 행진해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객들은 모두 일어서 맞고 나는 가까이서 사진도 찍을 겸 길목까지 다가갔다.

뒤를 이어 따라오는 학생들 사이에 딸이 끼어있다. 지수를 보는 순간 가라앉아 있던 감정에 울컥 물기가 동하며 온몸에 소용돌이친다. 이러한 감정의 북받침은 아들 녀석이 4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치고 군가를 부르며 행진해 퇴소하는 날도, 결혼식에서 작은딸을 사위 될 고서방에게 인계할 때도 그랬다.

졸업생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국가 대신 미국찬가 『America the Beautiful』을 일제히 부르는 것으로 식이 시작되었다. 이 노래를 나는 잘 부를 수는 없지만, 나라의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멜로디는 언젠가도 들어 귀에 설지 않은 것이다. 국가(國歌) 대신 이 노래를 택한 것은, 나라 사랑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겠지만 아마도 가사 중에 「Thy liberty in law!」가 있어서 아닐까.

학장의 식사가 이어졌다. 그의 발음은 명쾌해서 단어 하나하나는 꽤 알아듣겠는데 아무리 집중해도 문장으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또 그의 스피치는 오래 계속되었지만 중간중간 대여섯 차례 사람들을 ‘와아!’ 하고 웃게 했다. 무엇으로 웃겼는지 모르지만 재치 넘치는 발언을 하나 짐작할 수는 있었다.

계속하여 동창회장의 축사가 있었고 수석졸업생과 부문별 수상자가 호명될 때마다 당사자는 일어서서 박수를 받았다. 이어서 8명의 1년 과정 석사학위(LLM) 수여자와 183명의 졸업생을 일일이 호명하여 이름과 함께 그가 이미 취득한 다른 학위, 출신학교 및 출신지까지 친절하게 모두 불러주며 법학박사(Doctor of Jurisprudence) 학위를 수여했다. 그때마다 박수가 따랐던 것은 물론이며 때때로 환호의 소리가 높았다. 흑인 학생의 경우 더욱 왁자한 함성이 이어졌다. 이래저래 시간이 많이 흘렀다.

공식적인 식이 끝나자 음료와 다과가 마련된 리셉션이 있었지만, 졸업생들은 친구끼리 또는 가족과 함께 이리 붙고 저리 옮겨 다니며 기념촬영 하기에 바빴다. 그리고는 서서히 썰물처럼 하나둘 빠져나가며 졸업식은 끝났다.

뒤풀이는 저녁때 한인들끼리, 석사과정 2명을 포함하여 졸업생 5명과 축하하러 멀리서 날아온 가족들이 한인 운영 식당에 모여 조촐하지만 화기애애하게 밤늦도록 벌어졌다. 마치고 귀가하니 식전을 망칠까 봐 오래 참았던 비가 쏟아졌다. 다른 과정의 시작(commencement)(*)을 위한 한 과정 마침(graduation)의 밤은 이렇게 깊어갔다.

(*)학교에서는 졸업식을 굳이‘commencement’라고 했고 사람들이 축하 말을 할 때는 언제나‘graduation’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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