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캠퍼스를 거닐며
컨디션 조절에는 적당한 양의 운동이 제일일 것이다. 여행자가 규칙적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이야 걷기 아닌 다른 무엇이 있을까. 아침 일찍 잠이 깨면 혼자 방을 쓰지 않고는 책을 볼 수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곤히 자고 있는데 불을 켤 수도 소란스럽게 왔다 갔다 할 수도, TV를 켜 놓을 수도 없다. 될 수 있으면 나가 주는 것이 상책이다. 나가서 주변을 걸으며 둘러봐야 내가 머무르고 있는 곳의 위치도 윤곽이 잡힌다. 찌뿌드드함도 가시고 기분도 상쾌하다.
지수에게 온 다음 날 아침부터인가 매일 나가다시피 했다. 한 번은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돌면, 다음날은 반대 방향을 시도한다. 며칠 지나며 얻은 결론이 가까이 있는 밴더빌트 대학 캠퍼스를 산책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이다.
주변의 식물들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들이 많다. 양잔디이지만 그 속에 박혀 자라는 잡초 중에 가장 흔한 것이 클로버이고 질경이 민들레 뱀딸기도 자주 눈에 띈다. 맥문동을 무더기무더기 모 심듯이 박아놓은 모양은 우리의 것과 너무나 흡사하고 아이비는 건물 벽으로 올리는 대신 잔디처럼 땅에 저희끼리 엉켜서 자라게 한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다.
새들도 신선한 아침 공기가 썩 맘에 드는지, 티 없이 맑은 소리로 노래한다. 간혹 얼찐거리는 참새를 모를 리 없지만, 참새보다 두 배정도 크기 새들의 종류가 너무나 많다. 잘은 몰라도 우리가 울새라고 부르는 로빈(robin) 종류들이 아닐까 싶다. 숲 속을 건너 다니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것도 이들이다. 꾀꼬리나 뻐꾸기와는 다르게 리듬과 멜로디가 다양하다. 한 때 오클런드 야구선수들 모자처럼 노란 부리에 다리는 붉은빛이지만 온몸이 까마귀처럼 검은색의 것이 있는가 하면 깃털이 불에 달군 것 같이 분홍 색조를 띄고 있는 놈도 가끔 보인다. 이들이 종류에 따라 어떻게 다른 소리를 내는지 나는 모른다. 자주 옮겨 앉고 숲 속에서 우니 어느 놈의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참새와 비슷한 색조이나 가냘프고 유독 꼬리가 길며 날개를 펼쳤을 때 가슴과 깃 사이에 흰색이 들어있는 것이, 가까이서 노래하고 있었다. 수수하게 생긴 새가 매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을 직접 듣게 되었다.
주변에 새들과 섞여 노니는 동물은 대부분 다람쥐 종류다. 우리가 말하는 청설모인데 여기 것들은 색깔이 엷고 꼬리털이 덜 치렁치렁하다. 저 앞에 생쥐같이 작은 것이 발발발발 가로지르는 것, 가까이 가서 봤더니 우리나라의 다람쥐다. 어쩌다 드물게 보이는 것이지만 반갑다. 왠지 왜소한 우리나라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애처로운 기분이다.
캠퍼스 안의 수목들은 대부분 수백 년은 되었음 직하게 4, 50미터 크기의 큰 나무로 자라 있다. 이 나무들에 대하여는 대학이 자랑하는 바이다. 학교에서 발행한 팸플릿을 보면 64개의 나무는 특별히 뽑아 친절한 설명을 달아놨다.
가장 눈길을 끄는 나무는 맥놀리어(magnolia)이다. 사전에는 목련이라고 번역되지만, 우리의 목련과는 전혀 다르다. 잎은 사철나무처럼 번들거리고 무성한 잎 사이에 탐스럽고 하얀 꽃이 피었다가 갈잎처럼 마르며 낙엽처럼 지고 있다. 다만 탐스러운 흰 꽃잎이 목련과 흡사하다.
30여 미터의 크기, 이리도 큰 당단풍나무는 처음 본다. 그리고 여기 오기 전까지 당단풍은 당나라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짐작하고 있었다. 영문 명칭 「슈가 메이플(sugar maple)」에서 알 수 있듯이 옛날부터 수액을 뽑아 설탕과 시럽의 원료로 썼다고 한다. 이로써 설탕 당(糖) 자를 넣어 당단풍이라 함이 틀림없다.
그밖에 버들참나무(willow oak)도 특이하다. 좁고 긴 모양의 잎이 꼭 버드나무처럼 되어있으나 자세히 보면 도토리 등속이 매달리는 참나무다. 맥놀리어와 함께 요즈음 꽃을 피우는 식물이 또 하나 있다. 포도송이처럼 뭉쳐 피는 하얀 꽃이 예쁘고 잎은 오동나무인데 언제 시들었는지 아직도 매달려 있는 열매 깍지는 국수 가닥 같은 콩과에 속하는 것처럼 보여 그 이름이 몹시 궁금하던 것이다. 나중에 커탤퍼(catalpa)라는 이름표가 붙은 것을 발견하여 찾아보니 우리 이름으로는 개오동나무다.
하나하나의 나무들도 친근감이 들지만, 이들이 고풍의 건물들을 감싸고 있는 숲에 더한 정감이 간다. 그래서 이곳에 머물며 시간이 허락하는 한 딸이 다니던 교정이라는 정리(情理)도 있고 하니 틈틈이 구석구석 찾아보려고 한다. 그래서 나무들과 눈길을 맞추고, 때로는 어루만지며 친교를 맺겠다. 물론 내가 먼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지만 살아있는 그날까지, 한국에 돌아가서도 오래오래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