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남에서 북으로
내시빌이 남부라고는 하지만 지도를 펴놓고 보면 동서로는 동부에 속하고 남북으로는 중앙쯤에 위치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려고 하는 미시간주의 세인트 조셉(St. Joseph)은 시카고보다 조금 더 위쪽에 있어 북쪽으로 5백 마일 정도를 달려야 하니 부산에서 서울보다 1.6배나 되는 멀고도 먼 곳이다. 규정 속도 시속 65마일로 쉬지 않고 내달아도 8시간이 걸려, 중간중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한 끼 때우기 위하여 머무르는 시간 등을 합하면 9,10시간이 소요되는 하루에 해치우기에는 만만찮은 여정이다.
이곳을 내가 용감하게도 렌터카로 구경 삼아 운전해 가겠다고 계획했었다. 지수가 도저히 불안하다고, 미국운전을 한 번도 안 해보고 그렇게 가게 하기에는 도저히 맘이 안 놓인다고, 차라리 제가 드라이브해 다녀오겠다고 우겨서 무산되고 말았지만.
아직도 못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것을 위해 국제면허증을 돈 들여 발급받아 왔으니 자격요건은 갖추었고, 따라서 차는 빌려줄 것이니 지도를 보고 미심쩍으면 물어가며 하면 될 것이다. 시간에 쫓기는 여정이 아니니 늦어지면 중간 어디에서든 묵을 생각을 하면 될 일이다. 도움 될 만한 사람 없이 처음 시도하는 것이어서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등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고, 시간이 더 걸릴 것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런 것이 여행의 이야깃거리가 아니겠는가.
아침 10시(5월 20일)가 조금 지난 시각 우리는 출발 시동을 걸었다. 꼬박 열흘간 지내며 그런대로 정든 땅을 이제 떠나면 다시 찾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클 터인데 생각하며, 끌고 와서 펼쳐놨던 보따리를 다시 싸 떠나려니 남다른 감회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그런 곳이 여기뿐이겠는가. 앞으로 가는 곳곳에서 그런 감상들이 일어났다가 스러지고 또 새롭게 피어나고 하겠지. 단 한 번 만나고 마는 것이라도, 한번 밟아보는 것만이라도 보통 인연이 아닌 것을.
북으로, 세인트 조셉으로 향하는 길은 복잡하지도 않다. 거리 대부분을 I-65를 타고 달리다가 I-94로 갈아들면 거의 큰처남 가족이 사는 집 가까이 다가간다. I-94를 빠져나간 뒤가 좀 복잡할 것이나 거기부터는 집 근처이므로 물어보면 잘 가르쳐줄 것이다. 이상은 내 책임으로 몰아갈 때의 이야기이고 핸들을 잡은 지수는 두어 번 와본 길이어서 문제없을 것이다.
이참에 고속도로에 대한 소감을 적어보자.
특별히 명시한 경우를 제외하고 제한속도가 시속 65마일이라니 대체로 우리나라와 같은 정도다. 주마다 다를지는 모르지만, 통행료를 받지 않으니 기름 넣기 위하여 또는 밥 먹으러 마음 내키는 대로 드나들 수 있다. 주유소나 레스토랑, 인(inn) 등이 후리웨이를 살짝 벗어난 인근에 있어 우리나라의 휴게소와 구분하기가 모호하기는 하다. 그러나 「레스트 에어리어(rest area)」라는 간이휴게소가 있다.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간단한 음료나 초콜릿, 화장실, 공중전화와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여행정보 팸플릿, 소책자가 비치되어 있다. 피크닉 에어리어에는 간단한 포장 식사를 할 수 있는 의자 겸용 테이블이 적당한 간격으로 있다.
우리가 몇 시간이고 달리고 또 달려도 끝이 없을 것 같던 I-65는 처음부터 끝까지 크고 작은 강 몇 개를 건넜을 뿐 평평한 땅이었다. 교각을 높이 세우고 연결하거나 터널을 뚫을 필요가 전혀 없으니 멀고 길기는 해도 도로건설 자체는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출발하여 처음 얼마간은 울창한 숲이 많은 지역이었던데 비하여 북으로 올라갈수록 농토로 변하는 것이 달랐을 뿐이다. 귀한 땅을 이용하지 않고 방치한 것도 부지기수다. 농지도 한해 해 먹으면 다음 해는 묵히는 경우도 많다던가?
5백여 마일을 운행하는 동안 루이빌, 인디애나폴리스 등 몇 군데만 도시로서의 건물 군(群)이 형성되어 있을 뿐 거의 모든 지역이 인가가 드물고 한적한 벌판이다. 켄터키주를 통과하는 도중에 링컨의 생가 표시가 있었지만, 시간 관계상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쉽다. 시카고 부근을 지나며 주변 나무에 구름처럼 핀 흰 꽃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아카시아란다. 남부에 있을 때 이 나라에는 아카시아가 없나 보지, 혼자 생각했던 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주요 수종이 아카시아다.
우리는 쉬던 시간까지 합하여 8시간을 숨 가쁘게 달려왔고 이제 1시간 후에는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지내던 가족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설레는 가슴을 진정하기 어렵고 마지막 1시간이 몹시 길게 느껴진다.
우리가 자두나무 가족으로는 세인트 조셉 소정네 집을 방문하는 최초의 서울 식구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