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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퍼레논 Jun 29. 2023

진보적인(Progressive) 음악이란?

1.

진보적인(Progressive) 음악이란 무엇일까?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거나 그때그때 유행하는 대중음악만을 소비하는 청자라면,”정치성향 얘기가 아니고 음악이라고? “라는 물음표를 먼저 띄울 것이다. 아니라면 이름만 듣고서 어렵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그 무엇인가를 상상하거나. 사실 진보적인 음악, 프로그레시브 뮤직은 꽤나 대중친화적이고 범대중적으로 인기를 구가하던 시기가 있었던, 어엿한 주류문화의 한 종류였었다. 때는 1969년. 수많은 이데올로기가 새로이 등장하고 엎치락뒤치락하던, 격동의 60년대의 끝자락 대중음악의 맹주 비틀스가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던 1969년 10월. 지극히 불쾌한 첫인상을 주는 새 시대의 새 음악이 등장했다. 바로 최초의, 마땅히 대중음악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될 문제작, King Crimson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1969)이었다.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1969)


아티스트의 이름이나, 앨범의 제목 같은 기존의 앨범커버아트의 관례를 비웃기나 하듯, 이 위악스럽기 그지없는 커버아트의 앨범은 1969년에 등장했다. 앨범의 커버아트만 보아도 뭔가 아름다운 것, 60년대의 슬로건이었던 Love & Peace의 그림자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커버아트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서구사회가 긴 전쟁의 폐해, 신구세대의 충돌, 기성의 가치관을 전복하려 한 신시대의 젊은이들과 구시대의 가치관을 관철하려던 기성세대들 간의 충돌에 카오스상태였던 당대의 시대상을 정확하게 포착한 회화로써 접근해야 그 맨얼굴을 조금이나마 추정해 볼 수 있다.


2.

이 범상치 않은 겉표지를 가진 앨범은 과연 무엇에 대해 노래했기에 진보적(Progressive)이라고 칭해졌을까? 앨범에는 총 5곡이 수록되어 있다.


1. 21st Century Schizoid Man (Including "Mirrors")


2. I Talk To The Wind


3. Epitaph (Including "March For No Reason" and "Tommorow and Tommorow")


4. Moonchild (Including "The Dream" and "The Illusion")


5.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Including "The Return of The Fire Witch" and "The Dance of the Puppets")


각각의 제목 역시 범상치가 않다. 우선 풀렝스 앨범에 5곡만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앨범이 기존 대중음악과는 달리 긴 대곡지향의 앨범이라는 것을 뜻한다. 먼저 첫 번째 곡인 21st Schizoid Man은 앨범의 커버아트와 연관이 깊은 곡인데, 그림을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재즈의 형식미를 채용한 곡은 지극히 혼란스러운 조현병(Schizoid)의 병증을 매우 변칙적인 박자의 프리재즈 연주로 표현했다. 여기서 프로그레시브 뮤직(진보적인 음악) 이 탄생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기존 기성의 록음악에 프리재즈를 블렌딩 한 하이브리드 뮤직. 그것이 프로그레시브 뮤직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곡 I Talk To The Wind는 세 번째 트랙인 Epitaph와 함께 앨범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포크 발라드 트랙이다. 처연한 플루트연주가 인상적인 이 곡은 록음악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관악기를 사용한 곡으로, 아름다운 멜로디를 앞세워 국내에서도 애청되었던 트랙이다. 앞서 밝혔듯 앨범에서 가장 사랑받은 트랙 중 하나인 Epitaph는 "묘비명"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묵시적이고 암울한, 장중한 멜로트론의 음색이 지배하는 곡으로 시적인 가사로도 유명하다. 킹 크림슨은 피터 신필드라는 전문 작사가가 멤버의 한 명으로 인정받을 만큼 가사에 신경을 많이 쓴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곡에서 그의 시적인 가사가 빛을 발한다. 네 번째 곡인 Moonchild는 첫 번째 곡인 21st Century Schizoid Man처럼 프리재즈에 경도된 곡이지만, 소란스럽지 않고 정적인 진행을 들려준다. 12분에 달하는 앨범에서 가장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는 대곡이지만 잔잔하고 정적인 곡이다. 훗날 전자음악인 앰비언트 뮤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곡으로 꼽히는 역사적인 곡이기도 하다. 앨범의 대단원인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은 앨범의 오랜 별칭이기도 한 "멜로트론의 홍수"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곡이다. (멜로트론이라는 악기는 건반악기인데 일종의 초기 신시사이저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각 건반에 누르면 녹음된 소리가 재생되는 방식으로 연주하는데, 비틀스가 60년대 중반 사이키델릭 시기에 주로 사용하다가 초기 프로그레시브 뮤직 아티스트들이 애용하게 된 악기이다. 이 전자악기의 등장으로 값비싸고 녹음이 번거로운 오케스트라 연주를 비슷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3.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진보적인 (Progressive) 한 음악이란 무엇일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와 필자는 함께 최초의 프로그레시브 뮤직으로 불리는 앨범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최초의 프로그레시브 뮤직,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은 기존의 대중음악과 무엇이 달랐을까?


1) 앨범, 혹은 수록곡을 형상화한 회화, 또는 사진으로 이루어진 예술적인 커버아트


2) 기존 대중음악에서 주로 사용되지 않는 악기의 사용


3) 한 장르 이상의 음악장르의 융합


4) 기존 대중음악에서 주로 사용되지 않는 변칙적인 박자의 사용



정도를 들어 볼 수 있겠다. 이 앨범이 프로그레시브 뮤직이라는 장르의 역사적인 작품으로 대접받는 이유는 이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의 몫으로 남았다. 음악이라는 분야는 백번의 설명보다는 단 한 번의 청취가 주는 경험이 압도적임을 안다. 이 앨범으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프로그레시브 뮤직 필드의 아티스트들과 음악들이 이 앨범을 어떻게 해석하고 자기화하여 작품들을 발표했는지, 이 앨범의 포맷이 얼마나 선구적이었는지는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뮤직의 중흥기를 함께 이끌어간 씬의 명장들의 음악들이 증명해 준다. 이제는 듣고 느낄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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