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소유 중인 예음사 라이센스반. 링웨어가 있지만 관리를 잘했는지 커버나 판이나 깨끗하다. 굉장히 저렴하게 구했던 기억이.... ^^
Jimi Hendrix - Band of Gypsys (1970)
1969년,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에 이변이 발생한다. 베이시스트였던 노엘 레딩이 팀을 이탈한 것이다. 지미는 고민했다. 밴드를 해산할 것 인가, 새 멤버를 영입할 것인가. 노엘의 빈자리는 일단 지미의 고향친구이자 뛰어난 베이스 플레이어 빌리 콕스가 메꾸게 된다. 1969년 이미 3장의 앨범으로 대스타가 된 지미 헨드릭스는 당연하게도 전설적인 페스티벌인 우드스탁 록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에 서게 된다. 당시 사회자가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라고 소개하자 지미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잠시 기타를 튜닝하다가 우리는 익스피리언스가 아니라 Gypsy Sun & Rainbows라고 정정하는 장면은 꽤나 상징적인 장면이다. 한편, 1968년의 대히트작 Electric Ladyland의 후속앨범을 내라는 독촉에 시달리던 지미는 라이브 앨범 한 장을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이 그의 생전 마지막 앨범이 될 줄은 그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지미 본인조차도.
우드스탁 무대에서의 지미 헨드릭스.
밴드가 뒤숭숭한 상황에서도 앨범은 새로 나와야만 했다. 지미 헨드릭스는 프로 뮤지션이었고, 소속사와의 계약의 당사자이자, 밴드의 결정권자였다. 1969년 드러머 미치 미첼이 잠시 개인 스케줄로 밴드에서 이탈하게 되고, 지미는 옛 전우였던 드러머 버디 마일스를 호출한다. 버디 마일스 역시 빌리 콕스처럼 지미와 예전부터 인연이 깊었고, 굉장히 뛰어난 드러머였고, 흑인이었다.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데뷔 초부터 밴드 구성부터 화제에 올랐었다. 흑인 프런트맨에 백인 두 명의 리듬섹션으로 구성된 밴드 구성은 굉장히 독특한 것이었고, 존재자체가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과 다름없었다. 탈퇴한 노엘 레딩과 잠시 밴드를 이탈한 미치 미첼 대신 빌리 콕스와 버디 마일스가 가세한 밴드는 1970년 1월 미국의 전설적인 공연장 필모어 이스트에서 공연을 가지게 된다. 밴드의 리더 지미는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바뀐 이 밴드를 과연 익스피리언스로 부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다가 우드스탁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내뱉었던 이름인 집시 선 & 레인보우스라는 이름에서 착안해 밴드 오브 집시즈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지미 이외에는 전부 굴러들어 온 돌이었던 빌리 콕스와 버디 마일스를 생각해 보면 적절하고 유머러스한 네이밍 센스이지 않나 싶다.
좌측부터 지미 헨드릭스, 빌리 콕스, 버디 마일스
앨범은 총 6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A면의 두 곡은 세 번째 공연의 연주를 담아내었고, B면의 네 곡은 네 번째이자 마지막 공연의 연주를 담아내었다. 이 앨범은 지미의 유작이라는 의미 외에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앨범이 발매된 해인 1970년 9월에 세상을 등지게 될 지미 헨드릭스가 만약 죽지 않고 살아서 계속 음악을 했다면 어떤 식으로 음악이 변해 갔을지에 대해 유추해 볼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바로 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앨범은 지미의 단독작곡이 한 곡 밖에 (B면 세 번째 곡 Message of Love) 없지만, 지미를 대스타이자 기타의 거장으로 만들어 준 세장의 앨범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연주를 들려준다. 앨범의 가장 중요한 곡이자 지미 헨드릭스 최고의 연주 중 하나로 칭송받는 A면 두 번째 트랙 "Machine Gun"을 들어보자. 혁신적인 와우 이펙터의 사용이나 피드백을 사용한 사이키델릭 한 연주는 여전하지만 복잡하고 기나긴 임프로비제이션 (Improvisation : 즉흥연주)을 들려주고 있는데, Electric Ladyland 앨범의 Voodoo Chile 같은 곡을 제외하면 리프가 강조된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하드록과 사이키델릭 블루스를 주로 연주했던 지미 헨드릭스의 곡들 중 재즈의 영향력까지도 느껴볼 수 있는 트랙이다. 또한, 일렉트릭 기타의 영원한 파이오니어인 지미 헨드릭스의 곡답게, 디스토션 잔뜩 걸린 강렬한 연주와 속주는 훗날의 하드록과 헤비메탈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앨범의 전체적인 인상은 여태까지의 지미 헨드릭스의 앨범들과 비교해 봤을 때, 유난히 Funky 하다. 이는 익스피리언스와 다르게 전부 흑인들로 구성된 밴드 오브 집시즈의 음악적 뿌리는 흑인음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엘 레딩과 미치 미첼의 공격적이면서도 스트레이트한 리듬파트와 다르게 빌리 콕스와 버디 마일스는 그루브가 넘실거리는 Funky 한 연주를 들려준다. 상상해 보자. 지미 헨드릭스가 사망하지 않고 계속 음악활동을 이어갔다면, 아마 재즈에 경도된 좀 더 복잡하고 실험적인 연주와 함께 흑인음악의 루츠를 탐구하면서 점점 더 Funky 해지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역사에 IF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거장의 마지막 발자취를 음미하며 "만약에"를 상상해 보는 것은 덕후에게 언제나 달콤하고 매력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