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이 떠난 지 벌써 9년째다. 난 신해철이 죽었다는 소식을 거래처사장님까지 참석한 거나한 회식자리에서 술 먹다가 들었다. 물론 그전부터 혼수상태네 위중하네 말이 많았었지만 전혀 실감은 없었다. 하지만 현실감을 띄게 된 순간은 갑자기 찾아왔다. 술집사장님이 안주와 술을 가져 나오면서 “신해철 죽었다네?”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진 말 한마디로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번의 “상실”을 경험해 보았지만 난생처음 느껴보는 상실감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상실감의 강도나 우열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생소한 상실감이었기 때문이다. 친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슬프고 지인이 세상을 등졌을 때도 가슴 아팠지만, 신해철이 세상을 떠났을 때 느꼈던 상실감은 슬프고 가슴 아팠다기보단 “황망”했다. 난 88년 대학가요제는 물론이거니와 신해철의 솔로시절, 넥스트의 전성기는 보지 못했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하며 듣게 된 고스트 스테이션이라는 라디오 방송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던 신해철이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게 해 주었다. 그는 천재음악가, 카리스마 넘치는 락커, 마왕이라는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장난기 넘치고 정도 많은 동네형 같은 사람에 가까웠다. 하지만 때로는 카리스마 넘치는 촌철살인으로 내공을 엿볼 수 있는 유쾌한 형 같은 사람이었다. 그가 떠나고 벌써 9년. 그의 음악과 가사, 그의 라디오가 나의 10대에게 준 영향력의 거대함을 그가 가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가 떠나고도 1년, 2년 세월은 계속 흘러갔지만 이제는 그때 그 황망함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건 아마 나의 10대, 가장 푸르던 시절이 통째로 뜯겨나간 충격이었을 거다. 나는 분명 그가 남기고 간 음악들을 그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도 들을 것이다. 그렇게 상처 입은 그 시간들을 온전히 되찾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때는 참 좋았어” ,“그때는 참 행복했어” 하면서 푸르렀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것이 나의 시간들과 마왕을 추도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편히 쉬시길.
Crom, Shin Hae Chul 1968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