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헤인즈 감독의 밥 딜런 전기(?) 영화 아임 낫 데어(2007)를 보면, 크리스천 베일, 케이트 블란쳇, 리처드 기어, 히스 레저 같은 대배우들이 밥 딜런의 특정 시대를 상징하는 페르소나를 연기한다. 이렇게 다양한 (심지어 케이트 블란쳇은 여배우이다.) 개성을 지닌 배우들이 각각 연기를 해야 했을 만큼 딜런은 일생을 거쳐 "안주함"이나 "익숙함"과 같은 감정들을 가장 경계했다. 오늘 소개할 본 작 Planet Waves는 딜런과 깊은 인연을 나눈 The Band와의 합작앨범이다.
딜런과 더 밴드의 인연은 딜런의 1965년 투어에 백밴드로 참여한 더 밴드의 전신 격인 The Hawks로부터 시작되었다. 1960년대 중, 후반 미국은 그야말로 각종 이념과 문화가 얽히고설키는 이념과 문화의 용광로나 마찬가지였다. 베트남 전쟁과 반전평화운동, 각종 인권, 인종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히피 문화와 사이키델릭 무브먼트가 문화와 예술에 급진적인 전위성과 새로운 미학을 제시했다. 밥 딜런은 비틀스와 롤링 스톤즈가 이끌었던 영국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로큰롤 혁명에서도 당당히 쓰러지지 않고 버텨내며 미국음악을 상징하는 존재로 남았다. 그의 가사는 시대를 대변했고 젊은 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1969년 60년대 미국문화의 역사적인 순간이었던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도 딜런이 등장한다, 안 한다로 페스티벌 내내 설왕설래가 많았다고 전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딜런과 더 밴드로 이름을 바꾼 호크스는 뉴욕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일명 "빅 핑크"라 명명된 집 지하실에 조용히 칩거했다. 사회적의 급격한 변화와 급진적인 예술과 음악이 소용돌이치는 저 시끄러운 속세를 떠나서 빅 핑크의 지하실에서 복잡해져만 가는 사이키델릭과 일렉트릭 블루스를 등지고 미국음악의 뿌리, 루츠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세상과 음악계에 조용히 반기를 든 것이다.
딜런과 더 밴드는 빅 핑크의 지하실에서 정말 수많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온 세상이 사이키델릭과 사랑과 평화로 알록달록 어지럽게 어우러지며 화학적인 분화를 이어갈 때, 딜런과 더 밴드는 아메리카나와 아메리칸 루츠, 블루스와 재즈의 오랜 전통을 탐험하는 시대를 거스르는 방식의 접근을 했다. 이 빅 핑크에서만 더 밴드 명의의 데뷔작 Music From Big Pink(1968), 딜런 명의의 본 작 Planet Waves, 딜런과 더 밴드 공동명의의 라이브 앨범 Before The Flood(1974), 역시 공동명의의 The Basement Tapes가 나왔다. 전부 아메리칸 루츠와 미국 전통음악사에서 빼놓을 수없는 중요한 앨범들이다.
딜런은 이 앨범으로 대중들을 향한 세 번째 배신을 이행하며 또다시 자신은 어디에도 속박하고 규정 지을 수 없는 Desperado(무법자)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맨 처음 포크의 촉망받는 천재 아티스트로 해성과 같이 등장했지만 곧 비틀스의 로큰롤 열풍을 흡수해서 자기화한 포크록을 선보이면서 포크씬과 포크를 사랑하는 대중을 첫 번째로 배신하지만 큰 성공을 이루어 내고, 그 성공에도 안주하지 않으며 컨트리의 본고장 내슈빌로 내려가 컨트리 뮤직을 선보이면서 또다시 새로운 팬들을 배반했으며, 이 앨범으로 아메리칸 루츠록을 선보이면서 또다시 딜런은 변화했다. 시대의 부름? 대중의 호응과 원성? 그에게는 그 무엇보다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더 중요했다. "누가 뭐래도 난 내 갈 길을 간다". 이것이 아티스트 밥 딜런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