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초에 비트 세대가 있었다.
형들이 모이면
술 마시며 밤새도록 하던 얘기
되풀이해도 싫증이 나질 않는데
형들도 듣기만 했다는
먼 얘기도 아닌 바로 10여 년 전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안에 어떤 곳에
많은 사람들이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꽂았다고
거리에 비둘기 날고 노래가 날고
사람들이 머리에 꽃을
그건 정말 멋진 얘기야
그러나 지금은 지난 얘기일 뿐이라고
지금은 달라 될 수가 없다고
왜 지금은 왜 지금은 난 보고 싶은데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머리에 꽃을
- 전인권, 허성욱 "머리에 꽃을" (1987)
1960년대의 미국은 문자 그대로 각종 이념과 사상, 문화와 예술이 한대 버물어진 용광로나 다름없었다. 이념과 사상에 영향을 받은 음악과 문학, 영화, 예술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왔고, 그런 작품들에 영향을 받은 새롭고 급진적인 이념과 사상이 생겨났다. 그 중심에는 베트남 전쟁이 있었고, 히피 (Hippie) 들이 있었다. 이념과 사상, 문화와 예술이 한데 뒤엉킨 길고 이상한 여행 (Long Strange Trip. 그레이트풀 데드의 곡이자 밴드의 일대기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의 제목.)을 시작해 볼까 한다.
태초에 히피들 이전에 비트 세대(Beat Generation)가 있었다.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을 겪었다. 하지만 정부의 성공적인 시장 개입 사례로 손꼽히는 뉴딜 (New Deal) 정책 등을 통한 해결책으로 대공황 문제를 해결하였고, 미국은 유래 없는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된다. 비트 세대는 주로 대공황을 끝낸 후 태어난 세대들이 주축이 되어 1950년대에 크게 대두된 세대 개념이다. 경제적 풍요와 그로 인해 번진 지나친 낙관주의는 청년들의 반감을 불러왔다. 지나친 세속주의와 대공황을 성공적으로 이겨낸 기성세대들의 권위주의에 대항한 젊은이들은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전의 전원적인 생활상을 지향했고, 세속에 대한 관심보단, 내면과 인간정신의 탐구를 주 테마로 했다. 이들은 클럽이나 카페 등에 모여서 비밥 재즈 (찰리 파커나 디지 길레스피 같은 재즈의 거장들이 시도한 매우 빠르고 격렬한 실험적인 재즈 형태)를 즐겼고, 자작시를 낭독하거나 각자의 사상등을 이야기하며 밤을 지새웠다. 여기서 "밤을 지새웠다"라는 말이 중요하다. 비트 세대들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키포인트 중 하나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비트 세대는 대마초와 암페타민 (각성제)를 상시로 복용했다.
비트 세대들은 깨어 있기를 원했다. 그들이 보았을 때 자신의 부모세대들은 너무나 세속적이었으며 대공황을 이겨냈다는 끝 모를 자부심과 함께 멋대로 자식세대들을 끈기 없는 약한 세대로 규정해 버리는 권위주의에 찌든 세대들로 보였다. 이제는 평온하고 안온한 일상에 파묻혀 안정적이게 이 사회의 톱니바퀴 중 하나가 되어 살아가라는 부모세대의 말을 비트닉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과연 세상은 평화롭기만 한가, 이대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남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것만이 올바른 삶인가. 이것이 비트닉들을 한대 뭉친 공통된 의문이었다. 당대의 비트닉들은 기성세대와 미국사회를 "진정제를 맞은 사회"로 규정했다. 풍요와 평온한 일상에 숨겨져 있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냉전시대의 광기를 애써 모른 척하는 모습이 마치 진정제나 진통제를 맞은 환자 같은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비트닉들은 깨어있기 위하여 암페타민과 카페인을 사용했다. 밤을 새워 사회의 이면을 고발하고, 시대상을 담은 시를 낭송했다.
비트닉 운동은 후술 하겠지만 히피 운동보다 개인적이었고, 음악성이 강한 히피 운동에 비해 문학적이었다. 비트 세대의 유명한 아티스트들은 문인들이 대다수를 이룬다. 비트 세대의 정신을 시로써 대변한 미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시인 앨런 긴즈버그 (Allen Ginsberg), 대도시의 세속적이고 번화한 거리와 거짓된 평화에 안주하지 말고 젊은이들을 거리로 나서라고 종용한 소설가 잭 케루악(Jack Kerouac),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급진적인 형식의 소설로 명성을 떨친 윌리엄 S. 버로스 (William Seward Burroughs II) 등이 비트 세대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아티스트들 이였다. 긴즈버그의 시 Howl (울부짖음), 케루악의 소설 On The Road (길 위에서), 버로스의 소설 The Naked Lunch (네이키드 런치)는 당대를 대표하고 비트 세대를 대표하는 문학작품으로써 미국 근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로 평가받는 걸작들이 된다. 이 세작품들은 공교롭게도 전부 향정신성 약물에 강한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자 비트 세대 정신의 근간에 위치한 작품이다. 앨런 긴즈버그의 시 Howl은 긴즈버그가 여자친구와 함께 페요테 선인장(북미의 원주민 인디언들이 5000년간 전통적으로 사용했던 환각물질. 인디언 샤먼들의 신비체험과 의식에서 사용되어 왔다.)을 먹고 본 무시무시한 환각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었다.
잭 케루악의 소설 On The Road는 케루악이 암페타민을 복용하고 3주 동안 거의 잠도 안 자고 36미터에 달하는 종이띠를 타자기에 걸고 구두점도 없이 단숨에 써낸 작품이었다.
윌리엄 버로스의 소설 The Naked Lunch 역시 작가 윌리엄 버로스의 약물사용경험이 직접적인 영감으로 작용한 괴랄한 스토리와 상상력으로 가득 찬 작품이다.
비트세대는 이렇게 마취된 기성세대와 자신들을 각성제와 환각제로 구분 지으려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시도는 다양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약물로 인한 폐해가 지금 만큼 알려지지 않았던 1950년대의 약물문화는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고 젊은이들을 병들게 했다. 비트세대는 점점 그 세력이 약해져 간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집단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이었고, 사회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깊은 토론을 나누지만 이렇다 할 사회운동이나 시위를 적극적으로 행하여 사회 전면에 드러나길 거부했다. 하지만 이들은 60년대 히피 운동과 인권운동, 반전운동 등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50년대의 비트 세대들의 사상과 특징들이 어떻게 다음 세대인 히피들에게 계승되었는지는 다음 글에서 적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