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티모시 리어리와 히피문화의 시작
1950년대가 저물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1960년대로 가기 이전에 먼저 60년대 카운터컬처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티모시 리어리 박사 (Dr. Timothy Leary)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1960년대가 밝아오기 2년 전인 1958년, 미국 하버드 대학의 임상심리학 교수로 재직했던 티모시 리어리 박사는 멕시코 출장기간 중 우연한 기회에 Magic Mushroom (일명 마법버섯. 독버섯으로 환각을 일으키는 매스칼린이 함유되어 있다.)을 경험하게 된 티모시 리어리는 환각이 일으키는 변성의식 속에서 심리학과 인간정신에 대한 연구의 획기적인 물질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멕시코에서 돌아온 티모시 리어리는 하버드의 동료 심리학 박사들과 함께 환각물질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1930년대에 스위스의 알버트 호프만 박사가 보리의 맥각균에서 합성한 강력한 환각제인 LSD의 존재를 알게 된다. 화학명 리세르그산 디에틸아미드, LSD라는 물질은 매우 강력한 환각제로 60년대 카운터컬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물질이다. 이 LSD는 앞서 밝혔듯 보리에 자생하는 맥각균에서 화학적으로 우연히 합성된 마약이다. 복용하게 되면 30분 정도 후에 그 효과가 시작되고 짧게는 6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 가까이 매우 강력한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효과로는 시각, 촉각, 청각 등 모든 감각기관을 왜곡시켜 보이는 것이 들리고, 들리는 것이 보이는 이상한 체험을 하고, 기하학적인 패턴의 환시들을 본다던가, 신과 우주, 자연 같은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감수성이 발달하는 등 여러 가지 경험들이 알려져 있는데, 문제의 물질 LSD. 그 시작은 1943년 스위스의 한 화학실험실에서 신약을 연구 중이던 앨버트 호프만 박사에 의해서 우연히 시작된다. 신약 임상실험 중 우연히 LSD를 합성하게 되고 본인이 직접 임상복용을 해보게 되면서 이 약물의 효과가 알려지게 되는데, 1943년 4월 19일 LSD를 복용한 앨버트 호프만 박사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엄청난 환시를 보게 된다. 이 경험을 했던 1943년 4월 19일을 히피들은 자전거를 타고 처음 LSD체험을 한 날이라 바이시클 데이로 기념을 한다고. 훗날 호프만 박사는 형형색색의 기하학무늬와 신과 우주,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합일되는 압도적인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이런 압도적인 환시 가운데서도 지금 존재하는 현재를 확실히 인식할 수 있었고, 자신의 몸에서 잠시 빠져나오는 일종의 유체이탈과 비슷한 경험을 하며 자기 자신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고도 말했다.
1960년, 티모시 리어리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식으로 LSD와 매직 머시룸을 통한 임상심리실험을 하기 위해 Harvard Psilocybin Project를 동료 교수 리처드 알퍼트와 함께 정식 출범시킨다. 1960년부터 63년까지 티모시 리어리와 리처드 알퍼트는 하버드 학생들을 대상으로 Marsh Chapel Experiment와 Concord Prison Experiment라는 두 가지 중요한 임상실험을 행하게 된다.
Concord Prison Experiment는 미국 메사추세주에 위치한 콩코드 교도소의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행한 실험으로 LSD와 실로시빈으로 인해 생성된 환각경험과 심리치료가 병행되었을 때, 상습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의 반사회성을 줄여줄 수 있는지, 또 이 실험으로 인해 다른 교도소와 비교했을 때 재범률이 얼마나 감소하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이 실험결과는 당대에 꽤나 파장을 몰고 왔다. 그때까지 콩코드 교도소의 기록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30명을 기준으로 잡았을 때 64%의 수감자들이 석방 이후 6개월 이내에 추가적인 범죄로 다시 교도소로 돌아온다고 기록되어 있었는데, 실험의 피험자들은 25%만이 교도소로 돌아왔다. 장기적인 효과는 장담할 수없지만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재범률을 절반 이상으로 줄인 것이 된다.
콩코드 교도소 실험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낸 티모시 리어리의 연구팀은 보스턴 대학교 내에 위치한 Marsh Chapel에서 두 번째 실험을 행하게 된다. 이 실험은 50명의 자원봉사자 (주로 신학 대학생들) 들에게 절반에게는 일반적 비타민제를, 나머지 절반에게는 매직 머시룸을 투약했다. 실험의 목적은 종교적인 신념이 투철한 신학대학의 학생들에게 환각물질이 신뢰할만한 Entheogen (엔테오겐. 영적 발달을 일으키거나 종교적인 맥락에서 인지, 지각, 기분의 변화를 유도하는 향정신성 물질. 상술했던 미국 인디언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한 페요테 선인장이나 동서고금의 고대 샤먼들이 사용했던 대마초 등이 있다.)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이 실험 역시 상당히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내었다. 실험 후 참가자 전원이 심오한 종교적 경험을 했다고 증언을 한 것이다.
두 번에 걸친 실험의 고무적인 결과에 흥분한 티모시 리어리는 다른 실험으로 환각제의 가능성을 타진하려고 했지만 이 마쉬 성당에서의 실험이 화근이 되어 티모시 리어리는 하버드 대학에서 재적을 당하게 된다. 실험 당시 일부 피험자가 학교 당국에 강제성이 있었다는 제보를 했고, 티모시 리어리 역시 실험의 위험성 때문에 학교 당국에 적법한 절차로서 실험 허가를 받지 않고 실험을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963년 티모시 리어리는 교수직을 박탈당하게 된다. 이 사건은 티모시 리어리의 개인사로 보았을 때 그에게는 불운으로 작용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티모시 리어리는 학계를 떠나서 사회와 문화계에 전방위적으로 LSD와 환각제의 효과와 이 물질들을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게 된다.
이 사건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까지 문화계 저명인사들이나 학자들이나 연구자들 같은 식자층들만의 연구대상이었던 LSD가 사회와 문화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는 계기가 된다. 티모시 리어리의 활발한 TV출연과 사회활동으로 인해 급속도로 LSD와 매직 머시룸 같은 환각물질들에 대한 소문이 미국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히피문화라는 막 타오르려는 불에 환각제라는 기름이 부어졌다. 발화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