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아담이라는 국내 최초의 사이버 가수가 데뷔했다. 당시 필자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신선하게 다가왔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사람과 같을 수는 없었다. 당시에는 아직 기술이 미흡하여 불쾌한 골짜기를 유발하는 불완전한 그래픽도 그래픽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인간다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말하고 노래하는 그런 묘하고 낯선 경험을 대중들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국내 최초의 사이버가수 아담은 빠른 속도로 잊혀 갔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가상 가수나 텔런트들이 실험적으로 시도되어 왔지만 유의미한 행보를 보여준 경우는 없었다. 사이버가수 아담 이후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등장했다. "최초"는 아니지만 "최초"로 큰 인기와 가능성을 보여준 가상의 가수, 가상아이돌 "이세계 아이돌" 이다.
1. 이세계아이돌 Begins
이세계아이돌(이하 이세돌)은 2021년 8월에 결성 되었다. 그 시작은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에서 활동하는 인기 스트리머 우왁굳의 콘텐츠였다. 가상의 사이버공간인 "VR 챗"에서 활동하는 아이돌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사이버 아이돌 프로젝트라는 VR 오디션 프로그램을 론칭하고 멤버들을 모집했다. 약 200여 명의 버추얼 스트리머 (가상공간에서 가상의 캐릭터를 이용하여 방송이나 콘텐츠 등을 진행하는 스트리머) 들이 지원을 했고, 여러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각양각색의 개성과 매력을 갖춘 6명의 멤버들이 발탁되었고 동년 12월 1st Single Re:Wind로 데뷔하였다. 데뷔곡인 리와인드는 현재 1500만이 넘는 재생수를 기록하고 있다.
뒷라인 왼쪽부터 징버거, 아이네, 비챤. 아랫라인 왼쪽부터 주르르, 릴파, 고세구. (4) 이세계아이돌 (ISEGYE IDOL) - 리와인드 (RE:WIND) Official MV - YouTube
2. 그래서 이세돌은 뭐가 다른데?
이세돌은 이전세대의 가상가수들과 다른 마케팅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 배경에는 기술력의 발전과 인터넷방송의 대중화가 있다. 현실과 가상세계가 상호작용하는 메타버스 (Metaverse)는 지금의 MZ세대들에게는 이미 낯선 기술이 아니다. 메타버스 세상을 즐겨볼 수 있는 게임들과 VR 챗과 같은 전 세계인들이 접속하여 대화를 나누고 함께 게임도 할 수 있는 가상의 세상은 지금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이세돌은 이 메타버스 세상에서 현실의 아이돌이 활동하듯 활동한다. VR로 콘서트를 여는가 하면 사인회를 열고, 각 멤버들의 생일이벤트가 벌어진다. 이세돌의 멤버들은 이곳에서 방송도 진행하고 팬들을 직접 만난다. 직접적이고 지속적으로 팬들과 교류한다. 트위치 플랫폼에서 이루어지는 개인방송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루어진다. 각 멤버들이 개인사정이나 컨디션 난조로 돌아가면서 휴방을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 멤버도 방송을 하지 않는 날이란 없다. 기존 현실의 아이돌들은 앨범활동이 끝나면 다음 앨범 전까지 휴식기를 가진다. 팬들과의 소통이나 에피소드들이 역시 잠시 잠잠해진다. 요즘은 유튜브나 SNS를 이용하여 휴식기에도 팬들과 교류를 이어가는 아이돌이나 연예인들도 많은데, 이세돌은 하루도 빠짐없이 팬들과 교류하고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들이나 스토리가 끊이질 않는 것이다.
https://youtu.be/zZQBeKyvLO8
VR에서 벌어진 팬미팅. 가상의 세상이지만 이세계아이돌은 팬들을 적극적으로 만난다.
이들의 방송 클립은 중고나라에 이은 두 번째로 많은 네이버카페 회원수를 자랑하는 이세돌의 소속사 사장인 우왁굳의 팬사이트 이자 이세돌의 팬커뮤니티의 역할도 하는 "왁물원"에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방송 중인 멤버들은 실시간으로 각멤버들의 클립에 반응을 한다. 그러면 이 클립을 또 따서 왁물원에 올리는 방식으로 팬들과 멤버들끼리의 케미가 만들어진다. 이때 멤버들 각자의 개성과 각 팬덤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각자 가상의 세계에서 만난 아이돌과 팬들이지만 이 과정에서 개성이 드러나면서 가상의 캐릭터들에게 인간미가 부여된다. 또한 왁물원의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멤버들이 분기마다 비정기적으로 선보이는 솔로커버곡의 인력구인 또한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퀄리티 높은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능숙하게 그래픽툴을 다룰 줄 아는 아마추어들이나 실제 업계종사자들이 커리어를 위해 지원하기도 한다. 멤버들의 뮤직비디오 제작이 곧 포트폴리오가 되는 것이다. 또한 오리지널 곡일 경우 작곡자들이 자발적으로 곡을 투고하기도 하고, 기존의 커버곡이라면 전문 연주자들이 편곡과 연주, 리코딩 등에 지원하여 작업을 함께 하기도 한다. 이는 현재 대기업의 거대자본으로 운영되는 아이돌산업의 완벽한 안티테제이자 매우 얼터너티브 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자주제작과 자체배급. 현대의 기술인 메타버스 안에서 구현된 완벽한 인디문화인 것이다. 이것이 이전 세대의 가상가수들과 이세돌이 가장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가상의 캐릭터이지만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고, 주기적이고 잦은 교류를 통해 "아 내가 좋아하는 저 스타는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이구나"라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들게 된다.
3.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존재하는 진입장벽
하지만 이세계아이돌에게는 확실한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먼저 이들의 팬사이트 왁물원이나 유튜브영상들, 트위치 방송들을 챙겨보지 않고 음악만 소비하기에는 이전세대의 가상가수들과 같이 인간성과 개성을 느끼기 힘들다. 일반적인 아이돌가수에 입덕하는 것보다 챙겨봐야 할 것도 많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캐릭터가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에 이입이 안 되는 대중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https://youtu.be/hF0fKj1TC8A
영상을 보면 어르신들에게 이세계아이돌의 뮤직비디오와 노래들을 들려주지만 대부분 만화캐릭터가 춤추고 노래하네 정도의 반응이다. 하지만 이세계아이돌의 멤버 고세구가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보자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기 시작한다. 이세계아이돌의 인간성과 개성을 느끼기 위해서 트위치방송 시청, 최소한 유튜브영상의 시청 정도는 필수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확실한 진입장벽일 수밖에 없다. 또한 방송이나 영상에서 일본에서 유래한 서브컬처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다. 커버곡들도 일본서브컬처에서 유명한 곡들을 커버하기도 한다.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순간들이 많이 연출된다. 이 역시 진입장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
4. 하지만, 그럼에도 이세계아이돌은 주목해야 할 아이돌 그룹이다
이런 진입장벽들에도 불구하고, 이세계아이돌은 이 시대에 주목해야만 하는 문화현상이라고 생각한다. VR에서, 개인방송에서 주로 활동하는 아이돌, 연예인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이 생겨날 것이다. 메타버스와 가상현실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신기술이다. 가상현실기술이 더욱 고도화되고 대중들의 일상에 있어서 당연한 기술이 될 때 이세계아이돌의 활동은 메타버스 시대의 Pioneer로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기존의 아이돌들과도 다르고, 기존의 가상가수들과도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고,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활동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곧 결성 2주년을 맞는 이세계아이돌은 올여름 굉장히 적극적인 활동계획을 발표했다. 젊은 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오리지널 웹툰 연재를 발표했고, 3집, 4집 발표와 웹툰 OST 발매까지 알려왔다. 지난달 론칭된 웹툰 "마법소녀 이세계아이돌" 은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웹툰에서 인기차트 1위를 기록했고 웹툰의 OST로 발매된 "Lockdown"은 2주 만에 뮤직비디오 조회수 300만 회를 달성하고 멜론 메인차트에서 29위까지 올라가며 큰 인기 몰이를 했다. 2년 남짓한 활동으로 많은 것을 이루어내고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은 이세계아이돌이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행보를 보여줄지 기대해 본다.
https://youtu.be/QgMFpuos4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