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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퍼레논 Jul 20. 2023

21세기를 살아가는 평범한 비틀매니아의 크로니클

나는 비틀즈를 좋아한다. 누군가가 "음악 좋아하신다고요? 어떤 노래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본다면 상당히 곤란한 표정으로 한참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아티스트를 가장 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이 온다면 일말의 주저함 없이 "비틀즈요" 라고 대답할 만큼 좋아한다. 처음 나에게 비틀즈는 경외의 존재였다.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천재들로 평가받는 인물들이 모인 밴드라는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들의 음악은 눈부셨다. 거진 20년 가까이 비틀즈를 흠모하며 음악을 들어온 지금은 경외의 존재라기 보단 내 인생에 있어서 당연한 존재가 되었다. 생각나면 항상 술 한잔 함께 기울이며 인생의 시름을 잠시간 놓을 수 있게 해주는 옛 친구 같다고나 할까. 


돌이켜보면 내가 비틀즈를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확실하지는 않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어릴 때 학교에서, TV에서, 길거리 어딘가에서 BGM으로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곡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비틀즈를에 본격적으로 빠져든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물론 고등학생이 되기 한참 전부터 국내한정 비틀즈 삼신기(?)인 Yesterday, Let It Be, Hey Jude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 옛날에 인기 많았던 밴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인식이 전부였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충성스러운 메탈헤드로 지낸 나에게 비틀즈는 그냥 올드팝밴드였다. 하지만 그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만남은 2005년 봄의 한 음반가게에서 이루어졌다. 


원체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던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여전히 음악삼매경이었다. 그도 그럴게 매일의 일과가 동네 CD가게 (당시만 해도 동네에 음반점이 꽤나 남아있었다. 요새는 번화가에나 나가야 조금 보일까 말까 한다.) 투어를 돌며 사장님들과 잡담을 나누고 새로 들어온 음반들 구경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다섯 군데의 동네단골 CD가게가 있었는데, 그중 4곳의 사장님들이 진성메탈헤드들 이셨기 때문에 내 손에 들리는 CD들은 항상 Judas Priest, Iron Maiden, Metallica 같은 헤비니스와 메탈의 바이블들 이였다. 그런데 다섯 군데 중 한 곳의 사장님은 좀 달랐다. 유일한 여자분이 셨는데, 메탈 이외에도 다방면으로 넓게 음악적으로 조예가 깊다는 인상을 주는 분이셨다. 여느 때와 같이 그날도 뭐 새로 들어온 거 있나 하면서 CD들을 뒤지고 있었는데 굉장히 눈에 띄는 형형색색으로 화려한 앨범커버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화려한 색감에만 눈을 빼앗겨서 그랬는지 중앙하단에 빨간 꽃들로 수놓아진 "Beatles"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었다. 바로 비틀즈의 명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였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카운터로 가져가서 "사장님 이거는 못 보던 건데 앨범커버가 눈에 엄청 띄네요 누구 거예요?"라고 물어봤는데 사장님이 슬쩍 웃으시더니 "한 장 공짜로 줄게. 집에 가서 들어봐. 음악의 세계는 참 넓은 거야."라고 말하며 CD를 공짜로(!) 주시는 게 아닌가... 매일 같이 와서는 메탈에 대한 얘기만 쫑알쫑알하다가 메탈앨범들만 훑고 가는 것을 그 사장님도 잘 알고 있었고 항상 들어주시기는 했었지만 다른 음악을 추천해 주거나 그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사장님도 굉장한 비틀매니아였다. 물론 그때의 내가 그런 것을 알리는 없었고 그저 돈 없는 학생신분으로 공짜 CD가 생겼다는 게 기쁘기만 했다.

당시에 나는 용돈 이외에도 급식비나 교통비 등을 전문용어로 "삥땅"을 쳐가며 CD들을 사모으고 있었다. 서너 정거장 떨어져 있는 학교까지 매일매일 걸어서 통학하면서 교통비로 CD를 사모았고, 급식비도 부모님께는 잘 먹고 있다고 말했지만 500원짜리 크림빵과 우유로 대충 때우고 또 CD를 사모았다. 무슨 어디 어디 유명 뮤지션의 학창 시절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그랬다. 지금은 뮤지션은커녕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지만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순수한 열정이 넘쳤던 시기였던 것 같다. 여하튼 이렇게 CD를 사고 음악을 듣던 고등학생에게 공짜 CD는 장르를 떠나서 그저 좋았다. 집에 걸어가는 길에 자세히 보니 빨간색 꽃으로 수 놓인 Beatles라는 글자가 보였고 "아 비틀즈 앨범이구나" 정도의 감흥이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그동안 못 들은 CD들이나 메탈음악들 듣기에 바빴고 한동안 이 CD의 존재도 잊어버리고 살았다. 하지만 며칠뒤 그 CD가게에 갈 일이 생겼고 그제야 공짜로 받았던 비틀즈의 CD가 생각났다. 그래도 선물 받은 건데 들어보는 게 예의인 것 같고 왠지 사장님이 어땠는지 물어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생각난 그날 집에 돌아와서 CD를 오디오에 넣고 들었다. 아마 그날부터였을 거다 비틀매니아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게. 


앨범을 들어보고 그동안 구닥다리 올드팝 가수인 줄로만 알았던 비틀즈가 맞나 싶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첫곡인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부터 강렬한 하드록 리프와(당시에는 하드록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게 예스터데이나 렛잇비를 부른 사람이 부른 게 맞나 싶은 샤우팅으로 혼을 빼놓더니 두말할 것 없는 멜로디의 성찬과 신기한 소리들이 펼쳐졌다. 그 후로 나의 용돈과 교통비, 급식비는 죄다 비틀즈에 쓰기 시작했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시작으로 1집부터 CD를 사 모으기 시작했고 앤솔로지에 싱글 CD, 평전, 자서전, 화보 등등 비틀즈에 관한 것이라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아낌없이 돈을 썼다. 비틀즈에 대해 더 알기 위해서 종일 국내 웹사이트나 해외 사이트들을 헤집고 다녔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비틀즈 커뮤니티인 네이버 비틀즈팬카페에도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도 했다. 비틀즈에 관련된 행사란 행사는 다 참여했다. 중간중간 폴 매카트니의 내한 공연과 링고 스타의 내한 공연을 관람하면서 비틀매니아로서 생존해 있는 멤버들을 전부 만나보는 평생의 자랑이자 영광도 누려가며 20년 가까이 비틀매니아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저렇게 까지 순수하게 전심전력을 다해 무언가를 좋아하고 그걸 위해서 열정을 쏟은 일이 내 인생에 몇 개나 있었나 싶기도 하다. 돈도 많이 썼고 시간도 많이 투자했다. 누군가는 그 돈과 시간을 다른 쪽에 썼으면 벌써 성공했겠다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물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년간의 비틀매니아로서 살아온 것을 후회하냐고 물어보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No"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에 비틀즈가 있어 주었던 것에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오랜 친구처럼 그저 고맙다. 후회의 마음도 들지 않고 후회해서도 안된다. 앞으로도 나는 40대가 되고 50대가 되어서도 비틀즈를 들으면서 살아갈 것이다. 사람 인생에 확실한 건 몇 없다. "앞으로도 가족을 소중히 여길 거야" , "앞으로도 밥은 먹으면서 살 거야 당연하잖아 안 먹으면 죽는데" 나에겐 "앞으로도 비틀즈의 음악을 들으면서 살아갈 거야" 도 비슷한 범주에 속해 있다. 


Thank You! John, Paul, George, R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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