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R 명반 소개
가을이나 겨울에 더 어울리는 수사이지만 여름이 깊어가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가 7월 말이니 그야말로 여름의 한복판이다. 음악에 관해 글을 쓰고 있지만 요즘같이 더워도 너무 더울 때에는 "음악감상은 커녕 더워서 죽겠다" 하는 사람들도 많을 듯싶다. 그래서 준비했다. 듣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AOR Music을 다뤄볼까 한다. 사실 생소한 장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듣고 보면 낯설지만은 않은 음악들일 것이다. 곡이나 앨범 자체는 모르더라도 특유의 음악스타일과 양식미는 아시아 음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핫한 장르인 일본발 시티팝 열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AOR Music이다. 가히 시티팝의 원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간단하게 AOR 음악이란 무엇인지 알아보고 가자.
AOR은 "Album Oriented Rock" 혹은 "Adult Oriented Rock'의 줄임말로서 70년대, 80년대를 걸쳐서 미국의 FM 라디오 방송에서 주로 송출되었던 성인 취향의 소프트 록이나 R&B, 소울뮤직, 스무드 재에 영향을 받은 대중적인 팝뮤직을 뜻한다. 곡들이 주로 다루는 주제들도 대도시의 외로움, 그 속에서의 사랑,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고픈 욕망 같은 도회적이고 세련된 주제들을 주로 다뤄진다. 응? 뭔가 어디서 듣던 장르 소개 같지 않은가? 그렇다. 시티팝이 주로 다루고 있는 주제들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실 AOR은 당대의 음악적 시류였고 대세였다. 주류 팝뮤직의 기본형이었다고 할까? 그렇기 때문에 70, 80년대를 걸쳐 정말이지 무수하게 많은 (아마 하나로 묶이는 장르 분류들 중 가장 많은 음반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음악과 음반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표적으로 70년대의 슈퍼스타들인 엘튼 존이나 빌리 조엘 같은 거장들도 AOR 성향의 곡들을 많이 발표했다. 특히 빌리 조엘은 전형적인 스무드 재즈에 기반한 AOR 성향의 곡들과 앨범을 많이 발표했고, 엘튼 존은 AOR 성향의 훌륭한 곡들을 많이 작곡하고 불렀지만 워낙에 다양한 장르를 다루었기 때문에 AOR 적인 성향은 빌리 조엘이 조금 더 농후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지리스닝 팝의 대명사와 같은 ABBA나 카펜터즈 같은 밴드들 역시 70년대 AOR의 영향하에 있는 많은 앨범과 곡들을 발표했다. 80년대는 AOR의 전성기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 같은 주류 대중음악의 꼭대기에 위치한 아티스트들은 물론 록밴드들 역시도 AOR에 경도된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던 시기였다.
미리 밝혔듯 이 모호하고 광범위한 시대와 음악스타일들을 포괄하는 AOR이라는 장르는 70, 80년대 주류 팝음악의 스탠더드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속된 말로 발로 차이는 게 AOR 음반이라고 할 만큼 수많은 곡들과 앨범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AOR이라는 광대한 바다를 향해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도움이 될만한 스타트라인을 제시할까 한다. 이후의 디깅은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몪이다. 가장 즐거운 시간은 여러분들의 몪이라는 말이다.
1. Billy Joel - Stranger (1977)
영원한 피아노맨 빌리 조엘의 1977년 대표적인 명반 The Stranger. 스무드 재즈팝의 마스터피스 "Just The Way You Are"가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Vienna", "Everybody Has a Dream" 같은 명발라드와 파워풀한 록과 재즈, 극상의 멜로디가 만난 대곡 "Scenes from an Italian Restaurant" 등 버릴곡이 단 한곡도 없는 명반이다.
2. Boz Scaggs - Silk Degrees (1976)
시티팝의 본고장 일본에서는 Boz Scaggs를 "Mr. AOR"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80년대 일본의 시티팝 무브먼트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 아티스트. 그중에서도 보즈 스켁스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앨범이 바로 본 작 Silk Degrees이다. 풍부한 브라스가 돋보이는 축제 같은 곡 "Georgia" , Funky 한 스무드팝 "Lowdown" , 도시의 밤을 감싸는 감미로운 발라드 "Harbor Lights", 앨범의 클로징을 담당하는 또 하나의 명발라드 "We're All Alone"까지, 명곡의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명반이다.
3. Carpenters - Gold: Greatest Hits (2000)
2000에 발표된 카펜터즈의 베스트 컴필레이션. 카펜터즈의 음반들 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는 앨범이다. 카펜터즈의 주옥같은 명곡들이 즐비한 최고의 컴필레이션이다. 혹자는 카펜터즈를 과연 AOR로 보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띄울 거라고 생각한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분명한 AOR 사운드를 들려주는 곡들도 있고 또한 AOR 자체를 70, 80년대 팝뮤직의 스탠더드로 본다면 카펜터즈의 음악이야말로 가장 AOR 스럽다고 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지리스닝 팝과 70, 80년대 팝음악의 이상향이 바로 이 앨범 안에 있다.
4. Steely Dan - Aja (1977)
말이 필요 없는 AOR, 요트록, 재즈록의 정점과 같은 명반이다. 앨범명인 "AJA"는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이야기이지만, 멤버 도널드 페이건의 고등학교 시절 절친한 친구의 동생 아내가 한국인이었고 이름이 "애자"였다고. 굉장히 매력적이고 유머러스한 여성으로 페이건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고 앨범 타이틀로까지 쓰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스티브 개드나 래리 칼튼, 척 레이니 같은 초호화 세션진에 웨인 쇼터 같은 재즈의 거장까지 한몫 거든 그야말로 귀가 호강하는 연주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거기에 스틸리 댄 멤버들의 사운드 완벽주의 프로듀싱까지 더해져 최고의 소리를 들려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 세계의 오디오파일들이 새로운 오디오기기를 장만하면 테스트용으로 가장 많이 애용되는 앨범이 이 작품이라는 것은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 까다로운 마니아들의 귀까지 사로잡는 최고의 사운드를 들려준다는 방증이다.
5. TOTO - TOTO (1978)
70, 80년대 세션계의 본좌들이 모인 최강의 테크니션 집단 토토의 데뷔작이다. 7, 80년대 팝음반의 대부분에서 스티브 루카서와 제프 포카로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들이 바로 토토의 주력멤버들이다. 재즈와 록, 어떨 때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기운마저 감돌 정도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플레이가 마치 묘기를 부리듯 펼쳐진다. 스무드 재즈록 "Georgy Porgy" 나 경쾌한 'I'll Supply the Love"는 이미 AOR의 클래식이 되었고, 앨범의 최대 히트곡 "Hold The Line" 역시 밴드를 넘어 70년대 AOR의 클래식이자 80년대의 청사진으로써 명곡의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챕터에서는 원히트원더 내지는 AOR씬에서 인지도는 높으나 아티스트 자체는 인지도가 높지 않은 그런 아티스트와 앨범들을 소개할까 한다. AOR 심화과정이라고 봐야겠다. 거듭 말하지만 70,80년대 팝음악의 스탠더드였던 장르이다 보니 수많은 별들이 20여 년간 수많은 별들이 명멸해 갔다. 깊은 디깅을 하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AOR의 숨겨진 걸작들을 만나보자.
1. Rickie Lee Jones - Rickie Lee Jones (1979)
앨범커버의 맛깔나게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여성이 이 앨범의 주연인 리키 리 존스이다. 이 앨범은 그녀의 데뷔작으로 AOR장르의 명반선에 자주 오르는 작품이지만 여타의 AOR앨범들과는 다르게 재즈의 색채가 비교적 옅고 그 대신 블루지함과 포키함으로 채우고 있는 앨범이다. 그래서 그런지 AOR계열로 엮이기도 하지만 조니 미첼이나 캐럴 킹과 같은 여성 싱어송라이터 계열의 작품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작품이다. 무더운 여름밤에도 잘 어울리지만 깊은 블루지함으로 가을이나 겨울 같은 감성의 계절에도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2. Michael McDonald - If That’s What It Takes (1982)
스틸리 댄의 투어에서 백킹보컬과 몇몇 곡에서 리드보컬을 맡으면서 음악생활을 시작한 마이클 맥도널드는 1975년 미국의 록밴드 두비 브라더스의 멤버로 가입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그의 가입으로 두비 브라더스의 음악은 세련된 팝까지 아우르게 되었고 승승장구하게 된다. 하지만 1982년 두비 브라더스에서 고별공연을 마치고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 첫 앨범이 본적이다. 세련된 팝멜로디와 약간의 재지 함이 앨범에 감도는 주된 분위기이지만, 곡과 마이클 맥도널드의 보컬에서 블루아이드 소울의 느낌도 강하게 느껴진다. 진한 감성의 AOR 명반을 감상하고 싶다면 이 앨범이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3. Paul Davis - Cool Night (1981)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폴 데이비스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자 최대의 히트앨범인 Cool Night. 이 앨범은 앨범의 타이틀처럼 시원한 여름밤이 연상되는 시원스러운 사운드가 일품인 앨범이다. 폴 데이비스의 블루아이드 소울에 영향을 받은 보컬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80년대 팝의 전형적인 낭만성과 멜로디를 느껴볼 수 있는 앨범이다.
4. England Dan & John Ford Coley - Dr. Heckle and Mr. Jive (1979)
미국의 소프트록 콤비 잉글랜드 댄 & 존 포드 콜리의 마지막 앨범이자 AOR의 숨겨진 명반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토토의 초특급 세션진 스티브 루카서, 제프&스티브 포카로 형제와 리 릿나워 같은 재즈기타의 거장도 참여한 호화세션진을 자랑하는 앨범이다. 마치 여름날의 해안가도로를 드라이브하는 듯한 상쾌한 사운드가 일품인 오프닝 트랙 "Hollywood Heckle and Jive"을 시작으로 최고의 세션들과 함께 고급진 팝을 들려주는 명반이다.
5. Michael Franks - Sleeping Gypsy (1977)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겸 재즈보컬리스트 마이클 프랭스의 두 번째 작품이자 그의 대표작이다. 보사노바의 전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을 기리는 명곡 "Antonio's Song (The Rainbow)"가 유명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앨범들 중 재즈와 보사노바색이 가장 짙은 작품으로 AOR이나 팝앨범이 아니라 재즈앨범이나 재즈팝앨범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앨범이다. 세션들도 기존의 팝진영의 유명세션들이 많이 포진해 있지만, 재즈진영의 세션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어서 앨범에 더욱 진한 재즈의 향취를 더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