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깔깔 웃어봤던가

정식 음반, TOEIC 975점, 그리고 무기력 탁구 2회차 인생의 기록

by 오늘도 약간 웃김

아이들은 술래잡기 하나에도 배꼽을 쥐고 웃는다.
종이비행기 하나로도 지구 반 바퀴를 도는 듯한 환희를 느낀다.
그런데 나는?
나는 50대다.
최근 몇 년간 웃은 기억은 없다.

웃을 시간이 없었다기보다, 웃을 거리가 없었다.

텔레비전은 웃기지 않았고, 내 삶은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한때 영화광이었다.
충무로에서 자랐고, 영화는 곧 나의 성장기였다.
그랬던 내가 요즘엔 멀티플렉스 코앞에 두고도 누워서 유튜브 압축본으로 영화 전체를 8분에 소비한다.
넷플릭스도 구독하고, 디즈니플러스도 구독하고, 구독하다가 눕고, 눕다 보니 잠든다.
아마 내가 요즘 가장 자주 보는 장르는 “계속 시청하시겠습니까”일 것이다.

음악?
나는 음반도 낸 사람이다.
정식 프로 음반이었다. 망했지만.
그래도 열정만큼은 방탄소년단 못지않았다.
교회에서 드럼도 치고, 작곡 프로그램도 독학하고, 아침엔 음악, 저녁엔 편곡, 밤엔 망상.
지금은? 노트북을 켜다 말고 다시 덮는다. 배터리가 아니라 나 자신이 방전됐다.

영어?
30대에 영어학원 아침반에 출석 도장 찍으며 열심히 했다.
TOEIC 975점.
이쯤이면 공인된 영어 실력자다.
하지만 지금은 ‘Can I help you?’란 말만 들어도 '도망쳐!' 하고 싶어진다.
이게 다 지방도시 탓이다.
...라고 믿고 싶다.

운동?
스쿼시, 라켓볼, 수영, 복싱, 골프.
이 정도면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위한 예선 준비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 2회 탁구를 친다.
탁구대 앞에서 나는 공이 아니라 삶을 받아치고 있다.
재미는? 없다.
그나마 상대편도 재미없어 하는 눈치다.

남은 낙은 맛집 탐방인데, 가족들이 점점 분화되고 있다.
아들은 햄버거만 찾고, 아내는 글루텐프리를 주장하고, 나는 조용히 곱창을 검색한다.
“그걸 먹으러 그렇게 멀리 가야 해?”라는 말이 나온 순간, 나의 입맛은 자동 종료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골프 어때요? 잔디밭 걷는 재미에 빠져요.”
그래서 나는 그 말을 곱씹는다.
골프를 하면 잔디밭도 걷고, 비용도 지출되고, 시간도 없고, 아이도 돌봐야 하고…
결국 다시 탁구장으로 간다.
그나마 거긴 지붕이라도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배가 나온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더 이상 나를 가운데서 중심으로 접을 수 없는 구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하자.
이대로 가다간
구부정하게 걷고, 구부정하게 앉고, 구부정하게 잊혀지게 생겼다.

다만 무엇을 시작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지금 당장은 딱히 재미있는 것도 없고, 딱히 에너지도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아니, 지금 탁구 시간이다.
늦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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