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가본 적 없지만 평양냉면은 익숙한 인생
서울 중구 필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러다 어느 시점엔가, 아주 자연스럽게 앞 동네인 인현동에서 살게 되었다.
(동네를 옮겼다고 하기엔, 그냥 학교 끝나고 놀러 다니던 범위 안이었다.)
요즘은 연예인들이 평양냉면을 먹는 모습이 방송을 타고,
‘평양냉면 매니아’라는 표현도 생겼다.
이젠 유튜브에서 평양냉면을 먹기만 해도 콘텐츠가 되고,
사람들은 그걸 보며 감동하고 배고파진다.
나는 그런 걸 보면 살짝 웃음이 난다.
왜냐하면 내가 자란 동네는, 어쩌다 보니 평양냉면 명가들이 무심하게 흩뿌려져 있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조금만 걸어가면 오장동, 거긴 또 함흥냉면 본진.
그러니까 한 블록 차이로 평양과 함흥이 나란히 있었던 셈이다.
냉면으로 남북통일이 가능하다는 말도 틀린 소리는 아니다.
우리 집은 냉면에 대해선 의외로 꽤나 진지한 집안이었다.
외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어머니는 늘 선언처럼 말씀하셨다.
“배불러도 냉면으로 마무리!!”
그러면 아버지는 의심 없이 차를 돌렸다.
그건 대화가 아니었다. 선언 → 복종 → 면 흡입,
이건 거의 식후의 의식이었고,
우리는 평양냉면 교단의 충직한 신도들이었다.
그때 자주 가던 집이 인현동의 강서면옥이었다.
지금은 사라졌다.
(며느리 되시는 분이 보은에서 다시 시작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속리산있는 보은까지 다녀왔었다.
냉면가의 전설들은 늘 이런 전승이 붙기 마련이다.)
신기하게도, 나는 필동에 살면서도 필동면옥에는 잘 가지 않았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을지로의 우래옥을 자주 갔고,
가끔은 장충동의 평양면옥까지 진출했다.
우리 집 냉면판의 노선은 ‘필동-을지-장충’ 라인이 아니라,
‘을지-장충-간혹 강서’ 노선이었다.
지금은 좋아한다. 필동면옥도. 을지면옥도. 의정부 평양냉면도.
나이가 드니 입맛도 원만해졌달까.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냉면 취향에도 정치가 있었다.
요즘은 냉면이 유행이라고 한다.
유행이란 말이 살짝 서글픈 이유는,
내게 냉면은 언제나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