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성 소화기 장애
"어머나, 그렇게 조금 먹으니까 날씬하구나. 나도 조금 먹고 살을 빼야 하는데"
"요즘 소화가 너무 안되서 조금씩 먹어요. 저는 이따 집에 가서 또 먹어요"
갱년기 증상 2호는 소화기 장애였다. 뭐든 너무 맛있어서 식욕 조절이 힘들다는 갱년기 선배님들은 실루엣이며 적게 먹을 수 있는 제어력이 부러우셨던 것 같다. 너는 날씬한데 왜 나는 살이 찌냐는 사공들과 올라야만 했던 ' 뱃살'이라는 산은 다음편에 다루려한다. 지금은 갱년기 소화기 장애라는 생리학의 바다로 갈 것이다. 호르몬과 수용체를 설명하는 구역은 멀머 주의.
야구 수비수들을 떠올려보자. 포수부터 외야수까지 글로브를 끼고 각자의 위치에서 공을 잡는다. 누구의 글로브에 잡히느냐로 전개가 달라진다.
호르몬도, 어디에 있는 수용체에 붙들렸느냐에 따라서 기능적 결과가 달라진다. 영어 이름이 세로토닌(serotonin)인 호르몬은, 행복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전체 생산량의 90%는 장에서 만들어진다. 많이 만들어지는 곳에는 수용체도 많이 있다. 여기에 호르몬이 붙으면 위장관 운동을 촉진한다.
논외 정보인데, 장에서 세로토닌이 많이 만들어지면 행복해지는 것일지 궁금할 수 있어서 부연 한다. 장에서 만들어진 세로토닌이 장벽을 통과하고 혈류를 타서 뇌까지 이동하지 않는다. 더불어 뇌에는 뇌혈관장벽(Blood-Brain-Barrier, BBB)가 있고 아무 것이나 통과시키지 않는다. 비유가 찰떡은 아니지만, 코리안 리그 경기중 홈런된 공이 미국 MLB 경기장으로 날아가서 수비수에게 잡히지는 않는 것으로 호환 안되는 구역이라고 여기면 이해가 편하다.
여성호르몬의 대표주자인 에스트로겐은, 세로토닌의 합성과 그 수용체의 민감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갱년기에 여성호르몬이 줄면 장에서 세로토닌도 덜 만들어진다. 수용체도 이전과 달리 또릿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음식물의 위 배출 속도가 느려져서 이상 소견이 없어도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되는 느낌을 준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심해지고, 변비나 설사같은 장의 불편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조금을 먹어도 더부룩한 불편감이 오래갔다. 변비는 더욱 심해졌다. 식욕을 제어하는 의지가 뛰어나서 적게 먹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 감소를 섬세하게 느낄 뿐이었다. 약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알아가려고 적게 먹었는데, 점차 강박으로 몰아갔다. 양을 줄이는 대신 좋을 채우고 싶어서 식사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한끼 분량을 저울질 하고, 그날 물은 얼마나 먹었는지 숫자에 집착했다. 계량은 성실인가, 그 숫자를 잘 지키나 안 지키나 감시인가. 모호했다. 자유해질 때 다시 써야지 싶어 덮었다가 최근에 그 앱을 열어보았다. 5년 사이에 회사가 망했다. 그 시절의 자료를 더 못 본다.
식사(食事)는 한자 직역상 먹는 노동이다. 갱년기가 되기 전엔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가족과 이웃을 살피는 것만 일로 여겼다. 즐거움, 만족, 관계의 유대감을 얻을 수 있고, 자아를 살필 수 있는 귀한 노동 기회인데, 대충, 뚝딱, 휘리릭 하곤 했다. 갱년기에 소화기 기능성 장애를 경험하면서 식습관 뿐만 아니라 욕망도 점검해보았다.
지금까지 누렸던 양을 다 못 먹어서 아쉬운가?
이유가 뭔가?
갱년기의 불편감을 쉽게 없애려고 약을 찾을지, 노년기를 적극적으로 준비해볼지 선택해보라는 창조의 logic은 아닐까 싶었다.
하라하치부: 오키나와 장수 노인들은 위의 80퍼센트만 채우고 숫가락을 놓는다.
이과적 사고에 익숙해서 이해가 안되었다. 위는 눈에 보이는 계량컵이 아닌데 어떻게 80 퍼센트를 맞출까. 나중에서야 핵심은 숫자가 아님을 알았다. 과하게 배부르지 않지만, 부족해서 허기가 금방 찾아오지 않을 만큼을 알아낸 시간과
원초적인 탐욕과 연결되는 식욕을 다스리려는 지혜가 함의된 표현이었다.
소식은 유익하다.
결혼식 뷔페에서나, 기념일을 소중한 사람들과 축하할 때는 식탁에 흐르는 과한 전류에 몸을 맡기기도 한다. 비록 과식을 해서 약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속이 비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에서 후회를 하더라도 자유롭게 소식하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기능 저하를 돕는 약은 대게 효과가 빠르다. 위장관 조절제는 항생제처럼 내성이 있지 않고, 향정신계제처럼 의존성이 있지 않다. 약물 복용을 꺼릴만한 이유가 약 자체에는 없다.
그렇지만 약을 먹는 행동과 빠른 편안함의 관계를 뇌가 기억하면, 불편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약물에 기대려는 게 사람 심리이다. 그런 편리함을 굳이 저항해서 스스로를 힘써 알아가려 했다.
먹어서 불편해? 그럼 덜 먹어 봐.
배가 빨리 고파져? 그럼 아까보다 조금 더 먹어 봐.
다만 노년기의 약 복용은 갱년기의 그것과 다른 각도로 본다. 노화로 호르몬을 만드는 세포수가 감소하고 호르몬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줄어든다. 수용체의 밀도도 감소한다. 마치 검은 머리가 흰색이 되는 것이 속상한데, 그 흰머리마저 빠져서 휑해지는 것처럼. 젊어서는 기능을 잘 했던 수용체가 갱년기에 태업을 하여도 참을만 했는데, 그마저도 사라지면 불편은 심해진다. 그 불편감 때문에 식사의 규칙성을 손상시킨다면 근손실이 더욱 가속된다. 노년기에 식욕이 없으면 식욕 촉진제를 먹고, 소화 효소가 덜 만들어지면 소화제를 먹어야 햐다. 노인성 소화기 장애를 겪을 때에는 위장관 조젤제나 변비약 같이 기능을 돕는 약으로 적극 관리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점점 배가 나와서 출산이 임박해보이는 남편에게 관리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도 자기를 알게 되면 언젠가는 아내를 따라하고 싶어지겠거니 기다렸다. 가끔 청국장을 그만 먹고 싶다는 가족들의 원성을 받기도 했지만, 대게는 맛깔나는 메뉴로 가정식을 준비했고, 홀로 꿋꿋이 닭가슴살과 두부를 먹었다. 그런데 반전이...
다음편은 체형관리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