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장애와 공존할 힘
걱정이 있거나 생각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멜라토닌이나 영양제를 먹어보아도 효과가 없었다.
수면용 백색소음이 입면을 도왔지만, 2-3시간 자다가 깼다.
6년 전에 시작된 갱년기 증상 1호는 수면장애였다. 갓 40세를 넘긴 좋은(!) 시절이라 갱년기는 생각도 못했다. 코로나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철저했다. 활동량이 부족한 줄 알고 시작했던 게 걷기였다.
무작정 걸으면 흥이 없고, 그러면 지속할 수 없으니 목표를 정했다. 마침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창문 너머로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높은 산이 보였다.
"우리 가족, 한라산 가자"
라면이라면 눈이 번쩍거리는 아들을 쉽게 꼬셨다. 자전거 몇 번 아빠랑 타면 튼튼해질 다리로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백록담을 여러 번 보았던 남편도 좋다고 했다. 나중에 고백하기는, 아내든 아들이든 중간 즈음에서 하산하자고 하면 못 이기는 척하며 흑돼지를 먹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제안하자마자 5주 뒤의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였다.
한라산 정상에 갔다가 하산을 하는 길은 18km가 넘는다. 8-9시간 동안 걸어야 한다. 경사가 있는 산에서는 평지 걷기보다 더 피로해질 테니, 하루 누적 거리를 20~24km를 걷고 뛸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마라톤처럼 시작하면 안 쉬는 것이 아니라, 컨디션에 따라 새벽과 밤, 또는 하루 세 번으로 나누어서 연습했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해 왔는가? No. 이제부터 하면 된다. 등산화는 있는가? No. 장비는 사면 된다.
몸이 적응하도록, 무리가 되지 않도록 가볍게 2km로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첫 주부터 물집이 여러 개 잡혔다. 어떤 발톱은 옆 발가락을 눌렀다. 양말에 피가 묻어났다. 발가락 양말을 신어 마찰을 줄였다. 물집이 심할 때는 온전히 쉬었다. 첫 주를 제외하고, 주마다 5일 이상 빠르게 걷고 천천히 뛰었다. 2주 차부터 주당 5km씩 누적 거리를 늘렸다. 대체로 전날보다 조금 더 걸었다. 마지막 5주 차에는 매일 20km를 넘게 거리를 등산 시뮬레이션 하듯 양말을 두 겹 신고, 가방에 넣어갈 짐들과 비슷한 무게의 페트병을 담아 매고 훈련했다. 5주 동안 걷고 뛴 누적 거리는 총 300km가 넘었다. 그렇게 한라산을 오르고 내리기까지 흘린 피(!)와 땀으로 둔부의 군살이 빠지고 종아리가 튼튼해졌다.
무엇보다도 뇌가 변했다. 그동안 취미 삼아했던 운동으로는 맛볼 수 없었던 성취감이 컸기 때문이었을까. 이후 다양한 홈트레이닝과 유산소를 조합하며 근육을 채워갔다.
쉬지 않고 스쾃 200개 하기
복근 운동 유튜브 보며 따라 하기
밴드 도움 받으며 풀업 30개 누적하기
니-푸시업 100개 누적하기
지하 주차장에서 집까지(26층) 걸어 올라가기
13km 떨어진 교회, 걸어서 왕복하기
여유될 때 등산 가기
수면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운동을 격하게 한 날은 대체로 입면이 수월했다. 그런데 수면장애를 극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갱년기 증상들은 일정 기간 심했다가 잠잠해지는 주기성이 있다. 몇 가지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수면장애가 동반되기도 한다. 잠을 설치는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처방약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혈액 검사로 내 호르몬 수치가 동년배 하위 5 퍼센트임을 확인하고서야, 운동을 열심히 해도 증상이 심해질 수 있음을 이해하였다.
운동은,
갱년기 증상 극복 비법은 아니지만
불편함과 공존할 수 있는 힘의 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