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1900년 꿈꾸는 예술가들(3)
논문 쓸 준비 중 하나로 <패배를 껴안고>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에서 <인간 실격>의 저자인
다자이 오사무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패전 후 일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언급한다. 그 작품의 등장인물 중에서
현실의 다자이과 같은 인물은 예술가적 기질을 지녔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남동생이 아니라, 누나 가즈코다.
남동생과 달리 그녀는 죽음보다 삶을 선택하면서 자신이 '세상을 향한 투쟁'에
헌신해야 한다는 의미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혁명을 동경한 적도 없었고 사랑도 몰랐어. 지금까지 세간의 어른들은 혁명과 사랑
이 두 가지를 가장 어리석고 저열한 것이라고
가르쳤고, 전쟁 전에도 전쟁 중에도 우린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전쟁에서 지고 난 뒤에 세간의 어른들을 신뢰하지 않게 되면서 그게 뭐든지 간에
그들이 말하는 내용의 정반대가 정말로 제대로 살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됐어. 혁명도 사랑도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달콤한 것,
너무 좋은 것이라서 어른 들은 일부러 우리에게 그것들이 신 포도라고 가르쳐 준 게 틀림없다고 말이야. 나는 이제 확신해.
'사람은 혁명과 사랑을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
가즈코의 고백이 바로 비엔나 1900년 예술가들 중 오스카 코코슈카에도 해당되는 말. 가즈코의 고백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 오스카 코코슈카 역시 세상을 향한 투쟁의 일환으로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