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다워지는 것이 가능할까.
어제 한 조가 오에 겐자부로의
<세븐틴>을 발표했다.
작품의 내용은 이러하다.
"주인공 '나'는 열일곱 살의
평범한 고등학생이지만,
극심한 자기혐오와 무력감에 빠져 있음.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가족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성적 억압과 분노를 내면에 쌓아두고 있음"
이 작품을 이 조에서 택한 이유는
한 학생이 일본어학과인 데다가
그 학생의 지극히 개인적 경험이
이 작품의 화자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처음에는 선생으로서 대단한 염려와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다.
이 작품을 60명 앞에서 발표함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면 어떡하지?
그 학생의 개인적 경험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비치는데 그래도 되는 것일까.
<세븐틴>의 주인공은 극우파인 황도파 본부에 입회한 후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면서, 데모대 학생들을 향해 증오의 곤봉을 휘두르고 여러 차례 체포되기를 반복한다.
자신이 당한 폭력을 다시 사회로 환원시킨다.
이 작품은 『세븐틴』의 주인공 소년을 통해 오늘날 극우화된 젊은 남성 문제, 특히 ‘인셀’ 현상을 구조적으로 조명한다. 이들은 외모나 능력 부족이 아닌, 사회적 관계자본의 부재, 즉 ‘환대받지 못함’에서 오는 소외감 속에 극우 이념에 쉽게 포섭된다. 정치·사회적 이해 없이 누군가의 언어를 기계처럼 반복하는 이들은 결국 타자에 대한 혐오로 분노를 표출한다. 이런 문제를 단순히 개인 책임으로 환원해선 안 되며, 사회는 이들에게 자원을 투여하고 재사회화를 고민해야 한다.
‘악’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면죄부가 아닌,
공동의 책임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학생의 글)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 학생은 자신의 관계의 불능을
사회의 공동의 책임, 기성세대의 책임으로 돌린다.
자신이 폭력적이고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은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때문이 아니라,
이 어머니 아버지를 일반화시킴으로
사회의 공동의 책임이라고. 아니다!
이렇게 풀어버리면 자신의 혐오와 분노는 당연하다는 것인가.
아버지를 똑같이 폭행함으로 되갚아주는 것은
사회의 책임인가.
그 학생이 행하고 있는 폭력의 대물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