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일인가?
패배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안다. 다른 브런치 스토리에서 한번 언급했던 <패배를 껴안고 Embracing Defeat>라는 책이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역사학자 존 다우어가 1999년에 썼고 2000년 퓰리처상을 받은 이 책은 패전 직후 점령군 하에서 일본인이 느낀 심리적 상태와 처지들을 때로는 공적으로 때로는 사사롭게 보여준다. 저자가 외국인이지만 일본 사회를 철저하게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대단한 매력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역사서가 나에게 준 것은 내 결핍, 내 패배와 마주하는 과정이었다.
문학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자신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만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무슨 이야기이든 자신만의 히스토리와 자신의 고충과 아픔이 있다. 일본인들은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땅에 들어와 패배를 인정하라는 암묵적 압력들, 정치적이며 사회적 분위기, 천황의 위선, 찢어지는 가난, 귀족들의 어리석음과 횡포 등등을 마주하며 자신들의 자존심이 짓밟히는 과정을 목도한다. 진주만을 공격했던 일본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수순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항상 이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어렵다. 놀랍도록 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내놓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학생들 앞에서 교수자인 내가 솔직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다. 문학을 가르치는 자의 태도, 그 안에 가식과 위선만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 학생들의 이야기도 내 이야기도 시작하지 않았다. 내 취약점, 내가 만난 학생들의 패배감, 이런 것들을 고전의 이야기와 함께 풀어내고 풀어내도 모자란다. 이 공간에서 부지런히 이것을 하고 싶다. 내 취약점과 연약함은 부정적인 측면의 것들이 아님을, 나도 학생들도 분명하게 깨달아 알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