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스러운 김정놀음?!
마음이 스산할 때가 있다. 이렇게 애쓴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보이지 않는 수면 밑에서 끊임없이 헤엄치는 오리발처럼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일까. 대학교를 세 개를 뛰어도 세 강좌(60명씩 총 180명)는 미어지게 많아 걱정이고 두 강좌는 폐강 위기에 놓여 걱정이다. 매일 같이 보잘것없는 사소한 일에 서운하네, 죽네사네, 너보다 내가 힘들어 등등... 신랑이 쌓아놓은 빚으로 어떻게 갚아가며 살아야 하나 막막할 때가 많다. 고3, 고2 두 아이들을 데리고 말이다. 만일 내가 공부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좋았을까. 막노동이라도 닥치는 대로 할 수 있었을까. 내가 공부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내 마음은 말고 내 몸만 괴롭히면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어려운 때에 다사이 오사무의 <마음의 왕자>라는 에세이를 읽고 감동받는 것이 맞는 것일까.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사치스러운 감정놀음은 아닐까. 문학이나 인문학을 하면 돈은 못 벌어요, 하나도 삶에 쓸모가 없어요.. 등등의 말들을 한다. 내가 매일같이 사랑한다고 자처하며, 강의를 들어갈 때마다 기도한다. 그 젊은 친구들을 위해. 그런데 정작 그 친구들은 문학에, 인생에, 인간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난 항상 그런 그들에게 매 학기마다 원맨쇼를 한다. 나름 진정성을 담아.. 때로는 이런 나의 퍼포먼스가 스스로에게 지리멸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만해야 하나.
다사이 오사무는 자신의 글쓰기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감사를 위해, 나는 어쩌면 돈을 위해, 어쩌면 자식을 위해, 어쩌면 유서를 위해 고생스레 쓰고 있는 데에 불과하다. 남을 비웃지 못하고 자신만을, 이따금 비웃는다. 머지않아, 나쁜 문학은 덜컥 잃히지 않게 된다. 민중이라는 혼돈의 괴물은, 그런 면에서 정확하다..."(마음의 왕자, 43) 나는 무엇을 위해 쓰며 무엇을 위해 공부하지? 단지 좋아서, 이들의 작품을 읽고 나만의 것으로 소화하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때문에? 이것만으로 이유가 될까. 돈이 안 되는 것만으로도 때려치우는 것이 맞을까.
어제 고3인 아들에게 고백을 했다. 아빠의 사고로 인해 이 집으로 이사를 오고 3년쯤 지나니 이 집이 너무 싫어 무조건 벗어나고 싶었다고. 그냥 이 집이 싫어서 나가고 싶었다고. 아들은 오히려 자신은 정말 좋다고 했다. 갑작스레 20년간 같이 살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편이 나빠져 처음으로 빌라에 살아보고.. 이런 경험들이 나쁘지 않다고 말이다. 아들에게 고마웠다. 곧 있으면 대학이라는 장에 나와 더불어 들어설 아들에게 밉살스러운 존재로 남고 싶지 않다. 나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