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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안유 Jul 14. 2021

입 역량 강화-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 발등 찧는다

화를 내면 생기는 일들     

 

회의하면서 화를 냈더니 마음이 영 좋지 않다. 화(火)에 섞여서 나간 가시 돋친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후회막급이다. 장자(莊子)는 “개가 짖는다고 해서 용하다고 볼 수 없고, 사람이 떠들썩하게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영리하다고 볼 수 없다” 했다. 화가 난 상태로 회의를 하면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한다. 내 딴에는 어긋나고 있는 일머리를 조목조목 짚어주려고 시작한 거지만 초장부터 본질은 어디로 가고 비난이 앞선다. 그러다 보니 걸러지지 않은 이 말 저 말이 모두 쏟아져 나온다. 한 번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고 한 번 쏟은 물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결국 후회는 내 몫이다.  

    

크건 작건 잘 나가건 그렇지 않건 회사를 운영한다는 건 살얼음판을 걷는 거다. 호사마다(好事多魔)라고 좋은 일 끝에 고난이 찾아오는 올 때가 있고 또 반대로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계속 죽을 쑤다가 확 풀려 웃음이 절로 날 때가 있다. 경영을 하는 사람은 이 둘 중 어느 경우든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가 없다. 언제 어느 때 판세가 뒤바뀔지 한 치 앞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나갈 때는 자만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죽을 쑬 때는 반전의 기회를 찾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에너지를 끌어올리는데 엉뚱한 곳에서 구멍이 생기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결국 독이 묻은 말 화살을 쏜다.   

   

옛사람이 사람의 품성을 상(上) 중(中) 하(下)로 구분했다. 상(上)에 해당하는 사람은 속상해도 웃는 사람이고, 중(中)에 해당하는 사람은 기쁠 때만 웃는 사람이며, 하(下)에 해당하는 사람은 좋은 일도 나쁘게 생각하고 항상 짜증 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회의하면서 좋은 말로 해도 통했을 텐데 화를 낸 나는 과연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언불진의(言不盡意  

   

서불진언(書不盡言) 글로서는 말을 다 표현할 수 없고, 

언불진의(言不盡意) 말로서는 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말하기와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정곡을 찌른다. 제안서. 보고서 등을 쓸 때 글로서 말을 다 표현할 수 없는 한계를 크게 절감한다. 또 PT, 시행 보고, 결과 보고 등을 할 때 말로서 뜻을 다 표현할 수 없어 절박할 때가 많다. 제안서 보고서 기획안 등은 내 역량이 부족하면 전문가를 초빙해서 수정 보완해가면서 함량을 맞춰가기도 하니 서불진언(書不盡言)의 어려움은 때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해소된다. 문제는 언불진의(言不盡意)다. 말로서 제안서 보고서 기획안에 담긴 뜻을 전할 수 없을 때 오금이 저린다. 특히 예상하지 않은 질문이 훅 들어올 때 더 그렇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말을 좀 잘하기’ 위한 공부를 나름대로 하고 있다. 책에서 좋은 글을 보면 필사를 해뒀다가 인용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분위기에 맞지 않게 사용했다가는 안 하는 것만 못하다. 그래서 유명하지 않지만 유능한 강사의 화법과 태도를 배우려고 노력한다. 고수가 되는 길은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배우는 거다. 좋은 강사님을 모시려고 찾다 보면 재야의 고수들이 많다. 전화를 드려 몇 말씀 여쭤보고 내공의 깊이를 짐작해본 후에 직접 찾아뵙고 말씀을 나누다 보면 언불진의(言不盡意)의 한계를 넘어선 분이 더러 계신다. 영화 매트릭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라고! 언불진의(言不盡意)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꾸준히 <좋은 말>을 연습하는 것. 좋은 말이 몸에 배면 화나 났을 때도 독이 묻은 말을 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말도 안 돼재갈을 물라니   

    

정치의 계절이 돌아온 게 맞긴 맞나 보다. 연일 여기저기서 말(言語) 화살을 쏘는데 어떤 화살은 정확히 명중해서 본래의 소임을 다하고 어떤 말은 빗나가 쏜 사람을 맞힌다. 이럴 때 상처는 상대방이 쏜 화살에 맞는 것보다 훨씬 크다. 날아간 화살을 주워 담을 수 없고 자책 골은 다시 꺼낼 수 없으니 자기 가슴을 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입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널리 회자되는 입 역량 강화의 하나로 잠언에 나오는 “입에 재갈을 물리면 목숨을 지키지만 입을 함부로 놀리면 목숨을 잃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터키 남부, 키프러스 섬 북쪽에 타우라스 산에 서식하는 독수리와 이 산을 넘어가는 두루미와의 관계에서 생긴 이야기다. 철새인 두루미는 철이 바뀌면 험준한 타우라스 산을 넘어 새로운 서식지로 향하는데 이때 독수리가 두루미 떼를 공격해 배를 채운다. 그런데 독수리의 먹잇감이 되는 두루미가 따로 있다. 시끄럽게 우는 두루미다. 자꾸 외쳐대다가 독수리 눈에 걸려서 밥이 되는데 반면에 끝까지 살아서 목적지까지 가는 두루미도 있다. 살아남는 두루미는 시끄럽게 떠들지 않은 두루미로 자신의 입을 다물기 위해 출발할 때 돌, 재갈을 입에 물고 난다. 

     

말을 해야 할 때 설화(舌禍)를 걱정해서 입을 다무는 것도 비겁한 일이지만 말을 삼가야 할 때 쓸데없이 아무 말이나 쏘아대는 건 위험한 일이다. 이는 비단 정치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말을 많이 하는 것도 말을 잘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말을 많이 하지 않고도 내 생각이 충분히 전달되도록 입 역량 강화를 하는 것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해졌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접촉이 많아지면서 “서불진언(書不盡言) 글로서는 말을 다 표현할 수 없고, 언불진의(言不盡意) 말로서는 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백 마디 말을 했더라도 한 마디가 어긋나면 모든 말이 다 어그러지니 그럴 수밖에. 이 순간부터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게 말의 근본”이라고 했던 옛 성현의 말을 잘 챙겨서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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