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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안유 Aug 18. 2024

2026년 위용을 드러낼 초평면 양촌리 완위각(宛委閣)

리뉴얼의 첫걸음, 지켜야 할 자산을 아는 힘

현장답사, 마을 활성화의 답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


지난 8월 14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말복에 진천군 초평면 양촌마을을 찾았다. 양촌마을은 진천군 최초의 ‘취약지역 생활 여건 개조 사업지’로 선정된 만큼 이 사업에 대한 기대도 컸다. 상전벽해(桑田碧海) 같은 대대적인 개조는 아니지만 고령 어르신들에게 당장 필요한 위험도로 미끄럼방지포장, 안전 가드레일 설치, 위험경사지 정비 보안 CCTV 설치 등이 진행되고 빈집 철거, 슬레이트 지붕 교체, 집수리 등으로 열악한 마을 환경이 많이 개선될 전망이다. 현장에 가 보니 다목적 커뮤니티시설을 지을 부지가 잘 정돈이 되어 있었다. 


취약지역 생활 여건 개조사업은 2개의 축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앞서 말한 H/W 시설 증개축 및 신축이고 다른 하나는 S/W 지역 역량 강화다. 지역 역량 강화의 핵심은 지역이 자립하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다. 여기엔 H/W 운영 역량 배양, 주민 공동체 활성화, 취약계층과 어르신들 돌봄, 마을의 지속 발전을 위한 미래 설계 등이 포함된다. 양촌마을은 65세 이상 어르신이 52.2% 달하는 초고령 마을로 ‘어르신 돌봄’은 필수적인 과업이다. 이와 더불어 꼭 필요한 게 미래 설계다. 주민과 함께 실현이 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실행하는 거다. 양촌마을은 이 두 가지가 모두 시급한 지역이었다. 2026년 준공을 목표로 완위각지(宛委閣址) 복원과 진천 책 마을 복합 센터 조성이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양촌마을 유래비
양촌마을 안내지도


조선 후기 4대 장서각으로 불린 완위각(宛委閣)


양촌마을에 내 마음이 닿은 건 2009년이다. 지금은 문화재청으로 이름이 바뀐 한국 문화재 보호재단에서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있는 완위각지(宛委閣址) 만권루(萬卷樓)를 복원한다는 기사를 접했던 거다. 책이 귀했던 시절 충청도 작은 마을에 책을 만권이나 소장한 장서각이 있다니 그 내력이 궁금해 진천군지(鎭川郡誌),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등을 들춰봤다. 완위각 주인 담헌(澹軒) 이시곤(李夏坤1677~1724) 선생에 대한 평가는 시대를 초월해서 한결같았다. 명문가 집안의 후손으로 과거에 급제했으나 출세나 관직에는 별로 뜻을 두지 않고 글과, 그림, 시를 쓰면서 당대 문화 예술인과 교류하였고, 서책을 사랑하여 장르 불문 책을 사모아 지방 문화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거다. 담헌 선생에 대한 기록 중 눈에 띄는 건 조선 후기의 문신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라는 사람이 편찬한 임하필기(林下筆記)라는 책 한 대목이다.    

  

초평에 만권루가 있는데

이는 담헌(澹軒이공 하곤(李公 夏坤)이 지은 것이다.

고금의 서적을 소장하고 있는데의약(醫藥), 복서(卜筮), 명필(名筆), 고화(古畫)에 이르기까지 수백 질()이나 되기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백 년을 전하여 오다가 지금에 와서는 모두 산일(散逸)되고 남은 것이라곤

단지 숙종(肅宗이전의 명현들의 문집뿐이다.


이 내용으로 담헌 선생이 세상 뜬 후 많은 책이 이리저리 흩어진 것으로 보인다. 완위각에 있던 만권의 책 중 115점은 디지털로 복원되어 진천군립도서관 누리집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그리고 이하곤의 9대 종손 이정희 선생이 기증한 몇 백 권의 서책은 진천 책 마을 복합센터와 완위각에 전시될 예정이다. 


조선 북 카페의 낭만과 문향(文香)을 마음에 담아 가게 하려면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20세기 초까지 많은 학자가 완위각을 찾아와 학문 연구에 정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산(學山) 정인표(鄭寅杓),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선생이 초평면 금곡리에 거주하며 완위각에서 공부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러니 담헌 선생이 살아계셨을 때는 얼마나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양촌마을을 찾았을까?    

  

담헌 선생이 겸재 정선의 그림에 ‘오직 아는 자만이 이를 알리라’하는 발제문을 단 걸 봐도, 또 절친이었던 공재 윤두서(1668∼1715)가 세상을 뜬 지 7년이나 지났음에도 해남까지 찾아가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고    

  

"육 척도 안 되는 몸으로 사해(四海)를 초월하려는 뜻이 있다

긴 수염 나부끼는 얼굴은 윤택하고 붉으니 바라보는 사람은 

선인이나 검객이 아닌가 의심하지만저 진실로 자신을 낮추고 양보하는 풍모는 

무릇 돈독한 군자로서 부끄러움이 없구나”라는 글을 남겼다. 


이를 보면 담헌 선생의 교류의 폭이 얼마나 깊고 넓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의 증손자였고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의 외증조부이기도 했다. 당쟁(黨爭)이 극심했던 시절, 윤두서는 진사시에 합격하고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윤두서는 정치 대신 학문과 예술에 열중했고 46세 때인 1713년 해남으로 완전히 낙향해 뜻이 맞는 벗들과 교유하며 생을 보냈다. 이런 과정에서 그린 윤두서의 자화상은 국보 제240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 리뉴얼 첫걸음지켜야 할 자산을 아는 힘      


필자는 양지마을 중앙에 복원될 완위각과 책 마을 복합센터가 양지마을 주민의 삶과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주민이 양지마을 마을회관을 바라보며 우측에 자리하고 있는 완위각을 갈무리하는 주체가 되어 조선 북 카페를 오늘의 북 카페로 생명을 불어넣어야 완위각도 살고 양촌마을과 초평면, 더 나가 진천군이 진정한 책 마을로 각인될 것이라고 본다. 


양촌마을 위성지도-구글 지도 이미지


요즘은 공간을 경험으로 소유하는 시대다. 이하곤 후손이 보관하고 있는 고서를 전시하고 인문학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책 마을 복합센터(연면적 2천㎡)가 요즘 트렌드에 맞는 ‘경험을 소유하는 공간’이 되려면 책 마을 복합센터와 더불어 양촌마을 어르신들의 삶도 공유하는 기회 제공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안동 하회 마을처럼. 그러기 위해선 우선 양촌마을 주민의 완위각에 대한 애정이 깊어져야 하고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자신들이 지켜야 할 마을의 자산을 알아야 한다. 담헌 선생이 겸재 정선의 그림에 달았던 문구 ‘오직 아는 자만이 이를 알리라’는 말은 다름 아닌 양촌마을 주민에게 전하고픈 소망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마을도 하나의 기업이다. 성공하는 기업은 ‘콘텐츠는 3%만, 연결에 97% 집중한다’는 말이 있듯이 요즘은 좋은 제품과 서비스로만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고 이들이 상호 작용하고 교류하도록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공을 더 들인다. 애플, 에어비앤비 등이 그렇다. 양촌마을 리뉴얼은 ‘완위각을 거쳐 마을에서 담헌(澹軒) 스토리를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는 도서관’처럼! 


스타필드 별마당 도서관-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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