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여백 22
사랑하라, 사랑하라 인파 속 붉은 종소리가 자비를 외칩니다
눈 감으면 그날의 종소리가 하얗게 들려옵니다
눈 덮인 가로수
눈 덮인 전봇대
눈 덮인 예배당
소년의 캐럴은 어깨 위에 내리는 순백의 영혼 같아서
소리 없이 기대어 오던 눈길 같아서
그리도 설레게 한 온유였는지
이제 신성의 새벽이 다시 와서
저 첨탑의 종소리가 나를 깨우면
나는 이 낯선 도회의 창을 열고 기도드리리
오, 가난한 영혼을 위하여
푸른 밤이 차갑습니다
또 한 번의 계절이 첫사랑처럼 떠나가는
겨울밤이 차갑습니다
먼 곳의 안부는 문풍지 밖에서 떨고 있고
대지의 섭리는 엄동설한嚴冬雪寒입니다
다시, 눈 내리는 계절입니다
가난도 감사인 양
숨 쉬는 모든 것들의 목숨 위에 겹겹이 쌓이는 지극한 온정입니다
그것은 홀로 연주할 수 없는 노래
인간의 힘으로는 연탄할 수 없는 아득한 은총입니다
세상의 사위四圍를 덮은
장식과 사치의 눈을 감기고
권좌의 오만과 끝없는 욕망마저 가두어 버리는
고결하고도 가난한 탄식의 계절
온기가 그리운 이 땅의 낮은 곳을 향해
오직 사랑의 사자使者처럼 달려드는 폭설 펑펑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시린 발 동동거리는 세상의 매질이 살갗을 아프게 때릴지라도
오! 하늘이여
이 거룩한 적멸寂滅거두어 가지 마십시오
무진무진 눈 속에 갇혀
이 엄동 다 견디어
그대를 기다리는 마음 지워가지 마십시오
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