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을 새기며 묻는 안부

사랑, 그 여백 23

by 김백



비문을 새기며 묻는 안부




손바닥 묘지에 비문을 새기며 안부를 묻는다


액정의 검은 영점零點 아래 화석으로 발굴되는 얼굴들


강물은 프레임 밖으로 넘치지 못한 채 무성無聲의 그림자로 고여 있다


목록을 내릴 때마다 수직의 숫자들이 툭, 툭 꺾여 나간다


어떤 번호는 고립된 주파수가 되어 손바닥 안 좁은 묘지에 숫자의 비석으로 섰다


캄캄한 숫자의 방광傍光이 손등의 정맥을 비추고 있다 연이란 도마뱀 꼬리처럼 자를 수 없는 문장


그래도 액정 너머 우뚝 서 있는

얼굴들


생사生死를 확인하듯 끔벅이는 발광다이오드


나는 번호와 번호의 경계에 서서 0과 1이 교차하는 비문(碑文)의 행간마다 당신의 안녕이 덧나지 않기를 전송한다


이것은

부서진 일 년의 잔해 위로 쏘아 올리는 간절한 생존 신호


새해라는 거대한 전압 앞에 부디 당신의 회로가 타버리지 않기를


당신이라는 주파수가 휘발되지 않기를


검은 비석의 떨림이 심장 박동처럼 묻는다


연결을 갈구한 것은 당신인가, 묘지에 갇혀 있는 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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