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여백 24
눈 내리는 날엔 기차를 타고. 침묵의 영토 설원을 가로지르는 야행 열차에 마음을 싣는다. 차창에는 벌떼처럼 달려드는 나비 떼, 혹은 기억의 끝단에 흩날리는 백야白夜의 숨결. 덜컹이는 차창에 이마를 기대고 나는 시간을 건너 회억의 늪으로 간다. 깊고 차가운 슬픔의 영점零點을 향해 푹, 푹 너에게 침잠한다
그날도 함박눈 무진무진 내리고, 이름도 모르는 간이역, 밤이 없는 간이역 우리의 달뜬 열차가 자작나무 숲에서 사라질 때, 너는 함박눈 머플러 속으로 현기 하듯 지워졌다. 나는 궤도를 이탈한 방랑자. 철길에 비문非文 한 줄 떨구고 간 시간의 미아
눈 내리는 날엔 기차를 타고, 그 외딴 여인숙 붉은 벽난로 옆에 앉아 죽음보다 고요한 짐승처럼 몸을 접고 편지를 쓴다. 늑대 울음 같은 바람이 밤새 문고리를 흔들어도, 우리의 문장은 접지 못한다. 오직 너의 온기만이 나의 유일한 성소聖所이기를. 가슴에 젖어 있는 너의 머리칼을 말리며 또 쓴다. 기차는 끊어지고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