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미 May 24. 2022

엄마의 섹슈얼리티란

내가 꿈꿔 온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 중 한 조각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아기에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치지 않는 엄마.  

그래서 부모라는 사실이 다른 역할까지 잠식하지 않는 엄마.  

엄마가 된 후에도 ‘나’로 잘 살아가는 엄마.


<프랑스 아이처럼>이라는 책에는 아이가 태어나 엄마가 된 후에도 변함없이 자신의 삶을 똑같이 이어 나가는 멋있는 프랑스 엄마들이 등장한다.


      

 ‘그래, 이거지. 이렇게 살아야지. 내 목표는 프랑스 엄마야.’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덜컥 엄마로서의 목표를 정했다. 아기가 태어난다고 바뀔 것은 없었다. 그저 엄마로서의 역할이 하나 더 늘어날 뿐. 나는 늘 그랬듯 노력과 요령으로 멋진 엄마의 배경음악에 맞추어 완벽하게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임신 소식을 알리자 축하와 함께 ‘아이고, 우리 지미도 이제 좋은 시절 다 갔네.’ 중얼거리던 어른들의 탄식을 보기 좋게 한 방 먹여주고 싶었다. 아니거든요. 제 좋은 시절이 왜 다 갔나요? 아기 태어나도 달라지는 건 없을걸요. 전 다 잘할 거예요.     


 



그리고 아기와 함께 집에 온 날부터 프랑스 아이처럼, 프랑스 엄마처럼 살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아이처럼 키우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수면교육이었다. 수시로 잠에서 깨는 신생아에게 푹 자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 엄마 품 없이도 스스로 잠드는 방법을 익히는 것. 신생아 육아의 고충은 팔 할이 잠이라고 하던데 수면교육만 성공한다면 엄마로서의 꽃길이 펼쳐질 것 같았다. 프랑스 엄마처럼.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수면 교육과 관련된 책들을 더 찾아서 읽었다. 똑게 육아, 베이비 위스퍼 등등 모두 한 목소리로 수면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외치고 있었다. 수면 교육의 방법은 간단했다. 아기가 잠이 온다고 울어도 바로 달려가지 말고 잠깐 멈추라는 것, 잠깐 멈춤의 시간 동안 아기는 스스로 자는 법을 익혀나갈 것이고, 멈춤의 시간을 점점 늘려나가 결국에는 스스로 푹 잘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수면교육의 논리였다.

      

 좋아, 할 수 있어.     


아기가 울었다.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아기에게 다가가자 아기는 왜 바로 오지 않았냐는 듯 더 크게 울었다. 아기 울음소리에 내 가슴도 아려왔지만 하루 만에 성공할 수는 없다고 했으니 며칠 더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몇 번을 수면교육 방법대로 해보아도 아기는 스스로 울음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더 거센 울음으로 엄마를 맞았다. 작고 연약한 아기가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우는 모습에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괴로웠다. 수면교육은 며칠 만에 없던 일이 되었다.      


작디작은 아기가 몇 분을 울어도 일부러 모른 척해야 하는 이놈의 수면교육은 너무 잔인하고 혹독한 것이었다. 활자로 이해한 수면 교육과 내 아이와 함께 직접 부딪힌 수면교육의 간극은 너무나도 컸다.      


프랑스 엄마처럼 되고 싶었지만 내 안에는 한국 엄마가 살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에 초연하고 우아하게 대응하고 싶었건만, 그러는 건 어쩐지 나쁜 엄마가 되는 것만 같았다. 삼십 년 간 한국에서 내가 체득해 온 좋은 엄마의 모습은 아기의 필요를 채워주고, 무엇이든 아낌없이 내어주는 자애로운 모습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면교육은 실패.

하지만 프랑스 엄마가 지닌 멋진 모습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질끈 묶은 머리와 대충 입은 옷 대신 프랑스 엄마들은 향수를 뿌리고 완벽한 단장을 하고 나온다. 갓난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스키니진에 하이힐을 신은 엄마는 프랑스에서 너무도 당연한 모습이다. 엄마는 여자로서 자기 자신을 가꾼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변함없이 완벽한 여자의 우아한 선율에 맞추어 아름다운 춤을 추는 프랑스 엄마들. 자신의 여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프랑스 엄마들.      

프랑스 엄마처럼 나를 가꾸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고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으나 아기와 함께인 나는 수면 부족에 시달려 다크 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온 퀭한 얼굴에, 절대 유모차를 타지 않는 아기를 아기띠에 안고 끙끙대며 생기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 엄마였다.


      

 책 속에서 묘사한 대로 머리를 질끈 묶고 대충 입은 옷으로 걸어 다니는 엄마, 초라하고 여성성을 잃어버린 엄마가 된 것 같은 비참함에 오래 괴로웠다. 여기저기서 요구하는 여자로서의 조건, 엄마로서의 조건에 이리저리 휘둘리던 그때의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여성성이란 날씬한 몸, 완벽하게 다듬어진 옷맵시, 향수로 만들어진 향기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그것은 신비화되고 피상적인 여성성이라는 것을.

 진짜 여성성이란 친밀감이나 연결성,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감정들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인생의 가장 특별했던 "안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