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어제는 엄청나게 설레는 일이 있었어. 첫사랑한테 연락이 왔거든! 카카오톡에 메시지가 와있는 걸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엄마는 결혼한 딸이 첫사랑이랑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하지? 큰일 날 짓 하지 말라고 당장 전화가 올 것만 같아.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말한 첫사랑은 내 교직 생활에서 만난 첫 아이들을 말한 거였어. 헤헤.
겁도 없고 요령도 없던 막무가내 신규 교사 시절, 그때 만났던 아이들에게 가장 순도 높은 사랑을 줬던 것 같아. 사랑은 보이지는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거잖아. 순도 높은 그 사랑을 잘 전해 받았는지 아이들도 철없이 사랑만 넘치는 앳된 담임 선생님을 잘 따랐어. 그때 가르쳤던 아이 중 한 명이 어제 연락이 온 거야.
“선생님, 저 승환이에요. 건강하시죠? 안부 전하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어머나, 보는 순간 ‘풉’하고 웃음이 터졌어.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혼이 나던 장난꾸러기 녀석이 갑자기 멋있는 척하며 연락이 왔으니까 말이야. 너무 반가웠지.
(중략)
출간 예정입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 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내가 의심 없이 당연히 붙들고 살아온 것들로부터 걸어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준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한 구절이야. 이 책의 말처럼 학교의 자(ruler)로 아이들을 판단하는 것은 어쩌면 아이들의 자기다운 모습을 실현하지 못하도록 막는 족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을 잘 흡수하는 것, 힘들어도 노력하는 것, 가기 싫어도 매일 아침 학교로 가는 것. 그런 모든 것들이 아이의 삶에 지식, 인내, 성실이라는 단단한 무기가 되어준다는 것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지만,
학교라는 공간에서 꼭 찬사를 받는 학생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어제 이웃집 아이 엄마가 고민하더라구.
“우리 애는 너무 질문이 많고 호기심이 많아서 학교 수업에 방해될까 봐 걱정이에요. 선생님이 묻는 잘문에도 정해진 답을 하는 게 아니라 심하게 창의적인 답을 한다는데... 답답하네요.”
걱정할 일도, 답답해야 할 일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어. 아이는 자기가 가진 모습대로 너무 잘 크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야.
학교의 찬사를 받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아이의 보석을 깎아버리는 실수는 모두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학교라는 공간의 큰 축을 맡고 있는 교사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교사라서 더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기도 해. 1등 한 번 못하더라도 반짝반짝 빛을 내뿜는 아이들을 매일 만나고 사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첫사랑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나 봐. 조잘조잘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 다음에 또 편지할게,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