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미워하다가 책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임신, 출산, 육아로 무너져 내리던 시절,
남편을 정말 많이 미워했었어요.
육아가 힘든 것보다 남편이 미운 마음을 어쩌지 못해
쩔쩔 매던 시간이었지요.
인내가 미덕인 줄 알고 살아오던 저는
인내하며 남편을 이해해보려 엄청난 노력을 하다가
이해가 잘되지 않자 그냥 미워하기를 선택했어요.
왜 그렇게 미워했냐고 묻는다면
결혼 생활하면서 겪었던 이런저런 갈등들을 말하겠지만
사실 미움이 그렇게까지 감당 못할 원망으로 커진 것은
제대로 한 번 화를 표현해보지 못하고
삭히고 또 삭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속상하고 화가 나면 풀릴 때까지 몇 날 며칠이고 싸워도 보고, 소리도 쳐보면서
갈등을 풀어나갔어야 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화 찔끔 내고, 황급히 덮고, 화해하고, 괜찮은 척 하면서 살았어요.
그랬더니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이 안에서 곪아 원망, 분노, 화로 뒤엉켰던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어요.
다들 남편 흉을 보면서도 사실은 알콩달콩 잘 사는 것 같았기에
나만, 내 결혼만 망한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곧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새빨간 마음을 안고 살다가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되었어요.
책을 읽고 떠오르는 마음을 글로 적어보는 수업이었지요.
남편만 떠올랐어요.
꽉 막아두었던 마음이 글 속에 슬며시, 조금씩 새어 나왔어요.
글을 쓸 때마다 용감해졌어요.
하루 종일 나만 바라보는 아기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숨막히게 힘든 일인지,
지금 이 순간 남편이 얼마나 미운지
감추고 살았던 원망과 분노를 쏟아부었어요.
줌으로 이루어지는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줌 화면 너머에 있는 사람들 앞에 글을 꺼내어 놓자
줄줄이 공감이 이어졌고 위로가 오갔어요.
눈물을 나누면서요.
눈물, 공감, 치유.
그 많은 감정을 글로 흘려보낸 후 그때서야 남편의 진짜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주말마다 부지런히 밥상을 차리던 모습,
말하지 않아도 내가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던 모습,
스치듯 말한 것들을 기억하고 건네던 모습,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모습.
남편도 무던히 애쓰고 있었던 거였어요.
함께 결혼이라는 높은 산을 넘어보기 위해서 말이에요.
글로 표현하지 않고 미워하는 마음을 마음 안에만 품고 살았더라면 도착하지 못했을 곳이었어요.
이해와 사랑이라는 끈끈하고 따뜻한 곳이요.
다 글쓰기 덕분이었지요.
그렇게 글쓰기가 주는 엄청난 힘을 삶으로 경험한 후
제 앞에 가로막힌 것들을 하나하나 글로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써온 글들을 모아 투고했고,
제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어주는 출판사와 출간계약을 하게 되었어요.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글쓰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쓰면서 나를 마주할 수 있고,
쓴 글을 공유하고 나면,
나만 가장 불행하고 힘들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위로와 공감으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글을 쌓아나가다보면
책으로 출간까지 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요.
제 원고는 얼마 전 마지막 퇴고까지 완료하고
이제 표지 작업만 앞두고 있어요.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이렇게 설렘으로 바뀌는 경험도 하게 되네요.
책 제목은 <순종과 해방 사이>입니다.
앞으로 진행되어가는 과정도 이곳에 공유하겠습니다.
이곳, 브런치라는 공간에 모인 분들은 어쩌면
제가 그랬던 것처럼
살면서 마주하는
기쁨과 슬픔, 열정과 권태, 행복과 불행을
글로 풀어나가는 분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곳에서 만난 분들과는 더 깊이, 더 빨리 연결되는 기분이 듭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며, 글을 읽고, 글로 만나기를 바라게 되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